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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이 사진엔 이런 비밀이 있다
게시물ID : sisa_7916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oonbluemoon
추천 : 48
조회수 : 3742회
댓글수 : 55개
등록시간 : 2016/11/19 02: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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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학생운동을 이끌며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한 문재인,

결국 서대문 구치소에 투옥되었고 대학에서 제적 당했고,

출소 후에는 바로 군에 강제징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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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 후에 다시 전두환의 군부독재에 항거하다가 청량리 구치소에 투옥되었고,

옥중에서 경희대학교 조영식 총장의 신원보증 아래 

제22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한 후에 극적으로 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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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구치소에서 사법시험 합격 통지서를 받은 문재인은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박원순, 고승덕, 조영래 등의 걸출한 인재들 속에서 일등을 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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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 수석으로 연수원 내 최고상인 법무부장관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성적이 차석으로 밀렸고,

원하던 판사는 물론 아무런 임용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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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법연수원에서 12등이었던 고승덕은 판사로,

상위권이 아니었던 박원순도 검사로 임용되었기 때문에 불합리한 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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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문재인은 김앤장 등 대형 로펌의 영입 제의를 거절하고

부산으로 내려가 변호사 노무현을 만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오랜 시간을 '인권변호사'로 생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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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은 과다'

문재인은 그를 처음 본 순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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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권위적이고 엘리트의식이 있던 선배 법조인들과 달리

7살 많은 노무현의 소탈한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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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잘나가던 선배 변호사 노무현이,

이제 갓 들어온 신참 변호사 문재인과

수익을 배분한 것은 노무현의 성품을 여실히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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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왼쪽)과 노무현 전 대통령(오른쪽)이

부산에서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던 1980년대, 직원들과 함께 야유회를 가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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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변호사 사무실은 부산 부민동에 있었다.

수수하다 못해 조금 허름한 건물이었다. 그곳에서 그분을 처음 만났다.

차 한잔을 앞에 놓고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함께 깨끗한 변호사를 해보자고 했다. 그날 바로 같이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 만남이 내 평생의 운명으로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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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그렇게 노무현 곁에서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변호하는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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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노무현과 문재인이 이별한다.

김영삼은 당시 노무현, 김광일과 함께 문재인에게 국회의원 영입 제안을 했지만,

문재인은 3명 중 유일하게 정치입문을 거절한다.

정계입문을 결심한 노무현과 김광일은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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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정계에 입문한 뒤 청문회 스타가 된 뒤에도,

문재인은 부산에서 홀로 남아 부산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을 지내면서

'미국문화원 방화사건', '동의대학교 사건'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시국사건을 변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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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2년 12월 19일,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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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대선 후보 당시, 노무현의 연설)

 

언론은 노무현과 문재인을 가리켜 친구라고 말하지만,

문재인은 그와 친구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오히려 자신을 친구로 불러준 것을 감사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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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동업자, 인권 변호사 출신의

새천년민주당 노무현은 48.9%의 득표율로

한나라당의 이회창을 누르고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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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업무에 복귀하겠다'

대선 당시 곁에서 노무현을 도왔던 문재인은,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 후에 변호사 복귀 뜻을 여러차례 밝혔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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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면 책임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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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대통령이 된 절친한 선배의 말에

부산 출신의 인권변호사는 생애 처음으로 청와대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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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청와대 경력

2003~2004 대통령 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2004~2005 대통령 비서실 시민사회 수석비서관

2007~2008 대통령 비서실장, 청와대 정무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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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참여정부에서 초대 민정수석을 지낸 문재인은

녹내장과 고혈읍 등의 건강악화로 1년 만에 청와대를 떠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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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SBS 힐링캠프에서 그가 했던 말을 인용하면,

'청와대의 직함이 별로 영광스럽지도 않아서 사표를 내고 쉬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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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민정 수석을 그만두고 청와대의 연락을 거절한 그는,

네팔 산행 도중 노무현의 탄핵 소식을 듣고 즉시

노무현의 법정대리인으로 귀국해 변호인단을 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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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 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을 거쳐 참여정부의 마지막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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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노무현 인생 최악의 순간에,

그와 함께 했고, 허탈함과 안타까움을 뒤로한채 노무현과 청와대 생활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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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9년 5월 23일.

문재인의 30년 인생의 동반자였던

노무현이 봉하마을에서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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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봉하산에 올라갔다가 떨어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병원으로 후송 중인데 상태가 엄중하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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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벽에 봉하산에 올라갔다는 것 자체가 심상치 않은 것이었다."

"힘들어는 했지만, 굉장히 강인한 분이었다. 어렵지만 견디실거라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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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사망 직후 문재인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첫날에는 가슴이 찢어지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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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노무현의 상주로서 수많은 일들을 결정해야 했다.

그의 사인을 확인하고, 국민들에게 전 대통령의 사망 사실을 알리는 것도 모두 그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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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을 향한 그의 눈물은 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국민장 '노제'에서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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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노무현과 1982년 ‘변호사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를 개업한 이래

2009년 5월 23일 노무현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친구이자 동지로서 한 시대를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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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노무현의 유서를 항상 지니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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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노무현이 국회의원 첫 출마 때

만든 선거 명함도, 문재인은 항상 지니고 다닌다.

차마 버릴 수가 없는 것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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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죽지 않았더라면, 그는 정치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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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그가 정치에 들어선 이유는,

노무현의 뜻과 새로운 정치를 위함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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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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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 2011년 그의 저서, <문재인의 운명> 中

 


 

어제 심심해서 블로그에 써본 글인데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스크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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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ddanzi.com/index.php?mid=free&bm=hot&page=2&document_srl=14264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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