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 대한제국 선포이후 대한제국은 당시 수도였던 한양을 중심으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을 합니다
아시아최초로 전차개통.. 이 전차개통을 계기로 한양은 근대화된 도시로 발전하게 됩니다.
발전소를 세우고 한양거리에 전기를 공급함으로써 밤에도 한양은 과거와는 달리 깔끔한 거리로 바뀌게 됩니다.
그 다음에 고종이 한것은 사실상의 신분제도의 철폐였습니다.
과거에 관직에는 왕족 출신들이 관료로 임명되었으나
대한제국 선포이후에는 신분에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 벼슬을 내려줌으로써 조선왕조와는 다른 차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고종황제가 가장 중요시했던것 ..그것은 일본과 서구의 침략에 대비해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이였습니다.
일본의 침략에 대비해서 해군사관학교를 설립하고 당시 세계최강의 해군을 가지고 있던 영국에게 협조를 구하고
영국인 장교 두명을 교관으로 두고 해군력강화에 힘을 쏟게 됩니다.
병인양요를 시작으로 강한 군함앞에 속수무책이던 조선의모습을 본 고종은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우리나라 최초의 양무호를 구입하게 됩니다.
당시 대한제국 1년예상이 1천만원이였는대 그 10프로에 달하는 금액으로 ..고종의 군사력강화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 알수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싼돈을 들여 산 양무호였지만 제대루 써보기도 전에 러일전쟁이 일어나면서 고종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일본이 황궁을 포위하고 24시간 감시하면서 예전같이 활발한 대외할동을 할수가 없었지만 ,고종은 그에 굴하지 않고
밀사에게 당시 국제정세를 보고받고 있었습니다..
ㅜㅜ 그런 고종의 노력도 러일전쟁이 일본의 압도적이 승리로 3개월만에 끝이 나게 되고 결국 대한제국은 서서히 무너지게 됩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고종의 승인이 없어서 불법적인 조약) 만약 이때 고종황제가 겁을 먹구 일제에 굴복해서 승인했다면
일본은 지금까지도 그것을 빌미삼아 자신들의 침략을 더 노골적으루 정당화 하고 있겟죠 ?
러일전쟁이 일어난 배경에는 러시아,일본간의 한반도에서의 세력다툼도 있었지만 .
대한제국이후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에 일본은 조바심을 느낄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어디까지나 제 추측)
시간을 더 주면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조선이 병합되는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테프트밀약과 영일동맹을 발판으루
러일전쟁을 일으키고 러시아를 신속하게 굴복시키는것을 목적으루 속전속결로 전쟁을 치룰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요즘말로 일본은 러시아랑 전쟁을 치를때 모아니면 도 라는 심정으루 싸운것이라고 보면 될것입니다.
지금도 역사학자들이 이야기하는것은 당시 러시아가 몇달만 더 시간을 끌었으면 일본은 경제파탄으로 스스로 무너질수 밖에 없었다고 하네여.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 일본이 1910년까지 러시아와 전쟁을 일으키지못하고 주저했다면 우리의 치욕적인 역사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조선 역대 왕들중에서 가장 저평가받는 왕중의 하나인 고종황제 ..그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운의 왕이였습니다.
만약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나서 왕이될수 있었다면 조선 역사상 가장 성군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