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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유신전야
게시물ID : history_155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리독터
추천 : 15
조회수 : 112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4/26 12:11:37

온갖 부정과 비리와 함께 대선과 총선이 끝나자

대학가에선 부정선거 의혹을 제시하는 시위가 벌어지는데..

뭐 박정희 정권이 그렇듯이...휴교령...징계...

그러나 이게 2학기가 되어도 그칠 줄을 모르고..

결국 10월 15일 위수령

학교마다 탱크가 들어오고...

박정희의 지시에 따라 시위학생 전원 연행...

그리고는

서울대생 5명(이중에 김근태가..)이 하숙집에서 국가전복을 모의했다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울대 내란음모 사건 발표

 

이렇게 선거에 대해서는 입을 꾹꾹 막는 동안 터진 또다른 사건

 

사법파동

사실 3공화국 때까지만 해도 사법부의 독립이 잘 유지되는 편이어서

각종 간첩 조작 사건 등에 대해서도 석방하라거나, 무죄라거나 하는 판결이 많이 나와서

64년도에서 한일회담 반대시위하는 사람들 석방시켰다고 군인들이 법원 쳐들어가기도 했었는데..

 

아무튼 이 71년도까지도

그 대선 때 말한 김대중 자택 사제폭발물 사건으로 김대중 조카 잡아간 것도 석방하라고 하고

월간 다리지 필화사건이라고 김대중 홍보원들 잡아간 것도 선거 전에 무죄판결을 내려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이게 터진 게

이중배상금지 조항에 대해서 대법원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부터죠

 

박정희 정권은 베트남에 장병들 팔아넘기면서

보상금 아깝다고 국가배상법에 돈을 적게 주도록 법을 만들어놨고

(사실 저게 30년을 가서 연평해전 때도 보상금이 적게 주어질 수 밖에 없었고,

이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서야 개정을 하면서 천안함, 연평도 때는 배상을 더 받을수 있게 된 건데..)

그게 위헌이 될까봐 법원조직법까지 개정해놨는데

 

대법원은

법원조직법을 위헌판결 내리고는

이어서 국가배상법 이중배상금지조항도 위헌판결..

사법부는 살아있다, 정권에 굴하지 않는 소신 있는 판결, '조용한 혁명'이란 소리까지 나오는 가운데..

 

이범렬 판사, 최공웅 판사, 이남영 서기관에게 뇌물을 받았다면서 구속영장을 청구...

이건 사실상 정권의 보복이었고

이에 법조계가 들끓으면서

저 37명을 시작으로 한달동안 판사 150명이 사표를 제출합니다

(당시 판사 수가 450명이니 전체 판사 1/3이 이 사건으로 사표 제출..)

 

하지만 언론은 이 사건을

뇌물 사건에 대한 제 식구 감싸기

간첩사건마다 무죄판결 내리는 빨갱이

식으로 몰아가고..

 

결국 한달만에 대법원장이 사표 철회를 호소하면서 사표들이 속속 철회되고 사법부의 독립은 흐지부지...

(이듬해 유신헌법을 만들면서 위헌심사권을 없애버리고, 대통령이 법관의 임용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하던 71년 8월 중에 재개발 정책의 문제도 또 곪아 터졌는데

당시 정부의 철거민 대책은...

서울 철거민 10만명을 전부 광주대단지에다 몰아넣기...

근데...말 그대로 허허벌판에 딸랑 집만...

상하수도며 전화선도 제대로 없고, 교통수단이라곤 10만명 넘는 도시에 버스 노선 하나, 그나마도 6대...

생계수단이 없음은 물론이요..출근도 못하고...당장 화장실도 못 가게 생긴 상황..

 

여기까지였으면 차라리 불쌍한 상황으로 끝났을 테지만..

이렇게 온 사람들에게 집값 고지서가 날아들었는데...

원래는 평당 200원이라고 했는데...

날아든 고지서엔 8000원을 내랍니다...

 

이에 주민들이 항의를 하자

정부의 대책

그럼 평당 16000원을 내던가

 

.....

한달이 넘게 지속적으로 항의한 끝에

8월 10일, 서울시장과의 면담이 주선되고

성남출장소 앞에 6만명이 모였는데...

면담을 씹어버립니다;;;

 

주민들은 드디어 폭발

말 그대로 '폭동'을 일으키게 되죠..

(그리고 여기서 자란 게 이석기...! 후에 이 곳은 경기동부의 거점이 됩니다)

 

결국 3일동안 사방군데서 불나고 치안부재상태에..

지나가는 차를 탈취해서 서울로 진입하려는 상황

결국 정부는 한발 물러서서 요구조건을 모두 수용해주기로 하고 사건을 일단락..

(그리고 속은 타고 있었겠죠)

 

이런 여러사건들과 더불어 박정희 정권식 경제 성장의 문제가 드러나고..성장률도 떨어지고...

이듬해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 재벌연합ㅇㅇ)에서는 이것저것 벌려놓고는 갚기가 두려워서 대통령에게 사채동결을 요청하고..

 

72년 8월 2일 11시 40분,

밤중에 갑자기 대통령 긴급명령 발동, 사채동결조치

기업들은 3년간 돈 안 갚아도 되고, 이후 5년동안 나눠서 갚는다...

 

사유재산인 증권, 주식, 사채를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미친 짓이죠

금융업 종사자들 그날로 다이...

 

이런 식으로 정권이 재벌을 뒤를 봐주다보니

기업들이 버릇은 못 고치고 돈 갚을 생각 않고 계속 이것저것 벌리다보니

35년 뒤엔 대기업 줄줄이 도산하고 나라가 망하기 직전까지 가게 되는 거죠

 

아무튼 이런 식으로...

온갖 부작용들이 들어나고..민심도 잃고..

대선도 간신히, 총선에서도 개헌안 확보를 못했으니 4선개헌도 못할테고..

 

레임덕이 오기 시작합니다

공화당 김성곤 중앙위 의장, 길재호 정책위 의장, 김진만 재정위원장, 백남억 당 의장 등이..

이제 75년이면 박통 임기도 끝나니 차기권력구조를 짜보자...했다가..

 

박정희가 내무부장관을 시켜서 그쪽 계열을 숙청

그런데 저 넷이서 내무부장관 해임안을 제출하면서 개기더니

근데 통과!!!!!!!!!(10.2 항명파동)

 

공화당 의원들도 이제 박정희의 시대는 갔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고

이제 박정희가 아니라 차기의 말을 듣겠다..

 

박정희는 그대로 빡돌아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부르고

무려 여당 실세 의원들이...남산에 끌려가서 쳐맞고...

김종필이 그랬고 김형욱이 그랬듯...미국으로...ㅂㅂ..

(자기 부하들도 자기 다음을 노린다면 조져버리는 박정희...진작부터 죽을 때까지 해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죠)

 

이렇게 오만 사건으로 골치가 아프고 퇴임 후가 두려워 죽을 때까지 독재하고 싶었던 박정희에게...

구원의 손길이 내려왔으니...

바로 윗동네 독재자 김일성..!

 

참고자료:

[김대중vs김영삼] (이동형, 2011)

민주화 발자취 (정병진, 2003)

국가기록원>사법파동 http://www.archives.go.kr/next/search/listSubjectDeion.do?id=000977&pageFlag=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 (조희연, 2007)

사채 (박치경, 2012)


블로그:http://blog.naver.com/csr100/110182739534


26.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의 분신과 한국 진보의 부활:http://todayhumor.com/?humorbest_862568

27. 1971년 대통령 선거(박정희vs김대중):http://todayhumor.com/?humorbest_864635

28. 1971년 국회의원 선거:http://todayhumor.com/?history_1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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