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째 황제 도미티아누스
이러한 카이사르의 인상 이후 도미티아누스 시기까지 1세기 이상 봉급이 인상되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후에 페르케니우스가 일당 10아스에 불만을 가지고 반란을 일으킨것에서 추정해볼때 아우구스투스 시기까지 이러한 연봉과 지급 방식이 유지되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며 이후에 도미티아누스가 봉급을 올리기 전에 75데나리우스를 분할 지급했다는 기록에서 볼수 있듯이 일당 10아스라는 금액과 연중 3번이라는 지급방식은 도미티아누스시대까지 유지 되었다는것을 알수 있다.
이 도미티아누스는 연봉을 기존의 225데나리우스에서 300데나리우스로 인상 했다. 이 사실은 분명하나 한가지 문제가 있다, 대표적인 기록을 남긴 수에토니우스와 디오의 지급 방식에 대한 말이 서로 다른게 바로 그것이다.
수에토니우스의 기록에 따르자면 도미티아누스는 4번째 분할급으로 3아우레우스를 주었다고 한다. 1아우레우스는 25데나리우스 이므로 3아우레우스는 75데나리우스에 해당한다. 즉 기존에 75데나리우스 씩 3번 분할 지급하던 방식에서 1회를 추가한것으로 분할급의 지급 회수 증가를 이야기 하고 있다.
반면 디오는 기존에 받던 300세스테르티우스 대신 400세스테르티우스를 지급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4세스테르티우스가 1데나리우스이므로 분할급이 기존의 75데나리우스에서 100데나리우스로 증가, 즉 분할 방식은 동일하되 분할금을 증가시켰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두 사료의 기록은 서로 합의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상충되고 있어 비교 대조에 큰 어려움을 낳고 있는데 여기에 더하여 봉급 증가 이후인 기원후 84년에 작성된 제네바 파피루스가 다시 발목을 잡는다.
콰드라투스라는 이름 아래 297알렉산드리아 드리크마가 4번 기록이 되어있는데,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분할 회수가 증가되었음을 의미하는 결정적 증거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 파피루스는 워낙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지출 내역은 거의 알 수 없고, 지출액 역시 몇 개만 남아 있어서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여 재구성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거의 불가능 하다는 단점이 있다.
더불어 도미티아누스 이후로는 다시 3번 분할급을 지급하는 분할 방식이 사용되었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수에토니우스의 주장을 따른다 할지라도, 2세기초에 누군가가 분할급을 다시 세 번 지급하는 형태로 환원시켰다고 가정해야 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현재로서는 전무하다.
또 수에토니우스의 주장대로 75데나리우스씩 지급되었다면 이후에 세 번 지급하는 형태로 환원된다는 것은 봉급의 삭감을 의미한다.
이러한 봉급의 삭감은 로마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인데다, 군인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는 일이기때문에 300데나리우스를 고스란히 보전해 주어야 하지만 100데나리우스 씩 분할금이 인상되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디오의 기록이 좀 더 신빙성이 있다고 볼수 있는데 구체적인 설명은 다음편에 잇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