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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인도에서 온 신비교단?
게시물ID : mystery_78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3
조회수 : 287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8/20 13: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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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 주대가(朱大可)

 

가장 신비스러운 철학가

 

세계철학사에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부처와 공자의 그 누구도 노자처럼 신비한 전설을 많이 남기지 않았다.

 

신비한 출생 : 전설에 의하면, 이 위인은 모친의 뱃속에서 72년을 배어있었다고 하며, 태어날 때 이미 백발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노자(老子)"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만일 이 말대로라면 그것은 생물학상의 하나의 기적이 될 것이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그는 이수(李樹, 배꽃나무)의 아래에서 태어났다는 것이고, 태어나자 마자 생각하고 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배꽃나무를 가리키며 자기의 성이 "이(李)"라고 했다는 것이며, 성인남자와 같았다고 한다; 


이런 괴기한 이야기들은 그저 신화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가장 솔깃한 주장은 지금까지 큰귀(大耳)를 보전하는 습속이 인도네시아의 대이족(大耳族)에게 남아 있는데, 아마도 이 곳이 산해경에 나오는 담이국(儋耳國)일 것이고, 그래서 노자는 아마도 인도네시아인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역사서에서 왜 노자의 귀가 크다고 강조를 하고 이름마저도 담(聃)(즉, 儋)이 되었을 것인가?

 

신비한 경력 : 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그가 커다란 업적을 남긴 것은 맞다. 전설에서는 많은 유가제자들과 불가제자들을 난감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공자가 일찌기 노자에게 가르침을 청했는데, 결과적으로 노자에게 망신만 당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유가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만들었다. 


또한 전설에 의하면 노자가 일찌기 인도의 네팔에서 전도한 적이 있는데, 이 때 석가모니를 가르켰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신도들의 마음을 편하지 않게 만든다. 그 외에 비교적 그럴듯한 주장으로는 노자가 주나라때 국가도서관 관장격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그가 주장하는 '은(隱)'의 원칙과는 다르다. 중국의 민족주의자들을 가장 곤혹하게 하는 소문은 노자는 중국에서 책을 쓰고 학파를 세우는데 관심이 없었으며, 정부의 허가없이 임의로 출국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당시의 변방을 지키던 장수가 그의 출국조건으로 노자로 하여금 기공비법을 전수하도록 핍박하여 노자는 할 수 없이 5000여자의 책을 썼다는 것이다. 이후 노자의 행적은 서역의 황량한 땅으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신비한 화신: <<신선전>>이라는 책에 의하면 노자는 죽은 적이 없고, 각각 다른 시기에 당시에 가장 뛰어난 도가의 인물로 화신하여 활동하였다는 것이다. 삼황시대의 현중법사(玄中法師)로부터 한문제 시대의 광성자(廣成子)까지 모두 18명이라는 것이다.

 

신비한 저작: 어떤 사람은 도덕경이 철학서적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기공비법을 가리키는 것이라고하고, 어떤 사람은 노예반란을 부추기는 정치선전자료라고 하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노자의 작품이 아니라, 노자는 그저 비행접시가 뿌린 선전자료를 열심히 베낀 것일 뿐이라고 한다.

 

이상한 노자가족

 

이상한 것은 노자 본인의 신세내력이 안개에 쌓여있는데, 그의 자손관계는 아주 자세히 알려져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노자의 아들은 이종(李宗, 위국장군)이고, 이종의 아들은 이주(李注)이며, 이주의 아들은 이궁(李宮)이고, 이궁의 증손자가 이가(李假, 한문제때 관리)이며, 이가의 아들은 이해(李解, 교서왕 유묘의 태부를 지냄)이다.

 

이렇게 너무나 분명한 정부측 자료는 오히려 위조의 마각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 노자는 '도'의 진리를 구하기 위하여 광야에 은거하고 해외로 망명하였으므로, 집안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기른다는 것은 그의 기본신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둘째, 그의 후예는 어떻게 일맥단전(一脈單傳, 자손이 한명씩 이어지는 것)으로 내려왔는가? 셋째, 이 자손들은 모두 외자이름인데, 글자도 '가(假)' '해(解)'와 같이 코미디같은 이름을 썼단 말인가?

 

필자가 보기에, 사마천이 인용한 노자에 관한 자료는 아마도 노자 본인이 일부러 만든 수수께끼일 것이고 이로써 진실을 덮어두려는 것일 것이다. 국가도서관의 주요한 책임관리인 그가 자기의 신세를 위조한 죽간을 도서관에 남겨두는 것으로 충분히 진상은 덮어질 것이다.

 

<<사기-노자열전>>은 고급 문자수수께끼인가?

 

노자의 신세내력에 대한 권위있는 기재는 <<사기-노자열전>>이다. 그러나 머리를 쓰면, 정교하게 만든 수수께끼를 발견할 수 있다.

 

"노자(老子), 초(楚), 고현(苦縣), 역향(歷鄕), 곡인리(曲仁里), 성이씨(姓李氏), 명이(名耳), 자백양(字伯陽); 시왈담(諡曰), 주수장실지사야(周守藏室之史也)"

 

"노자는 초나라, 고현, 역향, 곡인리 사람이다: 성은 이씨이고 이름은 이이며, 자는 백양이다. 시호는 담이라고 한다. 주나라 수장실의 책임관리였다"

 

좀 황당하긴 하지만, 어떤 사람은 위 글의 문자를 "팔괘"로 풀어보면 그 의미가 드러난다고 한다. 이렇게 풀어보면, 모든 <<사기-노자열전>>의 글자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그 목적은 노자의 성씨와 관적을 알리려는게 아니라 노자의 내재적인 정신활동의 궤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부(中孚)", "진(晋)", "해화(解和)" 및 "둔(遁)"의 네개의 괘이다. 이로써 우리는 한 사람의 영혼이 어떻게 위대한 경지에 이르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노자집단은 <<주역>>을 수호하였다.

 

<<노자열전>>은 본질적으로 종교수련자의 공통된 특성을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노자>>는 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선진시대에 활약했던 수행자들의 집단을 의미하며, 아주 엄밀한 조직과 규율을 갖고 있었으며, 동아시아각지에 흩어져 있었고, 상당한 기간동안 '무위(無爲)'를 주장하는 비밀사명을 띄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해야 <<사기>>의 각종 기이한 현상들이 설명된다. 왜 노자는 탄생하자마자 이미 백발이었는지, 왜 "노자"가 서역으로 숨은 뒤 또 다른 "노래자(老萊子)"가 나타났는지, 심지어 공자가 죽은 후 100여년뒤에도 주태사(周太師)중에 '담(儋)"이라는 사람이 진헌공을 만나러 갔고, 진왕조가 육국을 통일할 것이라고 정확히 예언하였는지, 왜 굴원이 축출당한 기간동안 일찌기 "정담이(鄭伊)"라는 이름을 지닌 신비로운 사람을 만났으나, 그는 굴원을 위하여 점을 쳐달라는 요구를 거절하였는지.

 

조직이 엄밀하고 활동지역이 광범위하다는 것을 제외하고, 노자집단의 또 하나의 특징은 주왕실을 포함한 각제후의 관방복괘(卜卦, 점)기구를 장악하고, <<주역>>을 이용하여 통치자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삼들이 역괘의 새로운 판본을 만들고 주석을 달았다. 이뿐아니라, <<주역>>의 숭양억음(崇陽抑陰)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노자집단은 다시 다른 일부의 숭음억양(崇陰抑陽)의 도덕경을 만든 것이고, 이것은 <<주역>>과 <<도덕경>>이 신비로우면서도 긴밀한 철학적 호응을 이루게 된 이유일 것이다.

 

"노자"는 케시미르에서 온 신비교단출신이다.

 

노자와 "서역" 즉 지금의 인도와의 관계는 학술계의 아주 민감한 주제중의 하나이다. 동한때 <<노자화호경(老子化胡經)>>이 나타난 이래, 노자와 서역의 관계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1950년대에 저명한 학자인 담개보는 중론을 물리치고, 대담하게 노자가 원래 호인(胡人, 오랑캐)이라는 가설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당시 대한족주의의 편협한 사조에 맞추어, 곽말약등 여러 권위자들로부터 거센 공격을 당한다. 이 대담하면서도 걸출한 역사적 가설은 강보에서 나와보지도 못하고 목졸려 죽게 된다.

 

노자집단이 케시미르지역에서 왔다는 주장은 최소한 아래의 몇가지 증거들이 뒷받침한다.

 

첫째, 노자집단의 학설의 핵심인 도(道)는 바라문의 범(梵, braman)의 의미와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범의 개념이 훨씬 먼저 탄생하였다. '범'의 원래 의미는 '청정' '적정(寂靜)' '이욕(離慾)'인데, 이것은 노자집단이 극력 주장했던 것이다. '범'은 또한 수행자들이 해탈에 이르는 최후의 경지이고, 태어나지도 멸하지도 않고, 항상 존재하고, 차이가 없으며, 어디에건 없는 곳이 없는 최고의 실체이고, 우주의 최고주재자인데, 이것은 노자집단에서 말하는 '도'와 완전히 일치한다. 이로써 볼 때 '도'는 '범'의 중국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바라문은 '천군(天君, Sruti)'를 중시하는데, '천군'의 원래 의미는 '영청(聆聽, 듣는다)'는 뜻이다. 신의 계시를 듣는 것이기 때문에 바라문은 이 듣는 것을 매우 중시하고 아주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이것은 노자의 성씨에서도 잘 나타난다. 노자의 이름은 이(耳)이고, 자는 담()이다. 이것은 큰 귀를 가지고 다른 사람보다 더 잘 듣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들이 따르는 것이 바라문의 교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산해경>>이 제공하는 단서에 의하면, 노자집단은 도덕경에서 반복적으로 음양설을 언급하고 있는데, 기원전6세기 이전에 일찌기 인도 케시미르지역에서 서왕모가 사자를 보내여 황제(黃帝)에게 준 것이라고 한다.

 

둘째, 노자집단의 수행과 행위방식이 '마누법전'의 각 조항과 같다는 것이다. '마누법전'은 바라문의 법전이다. 정식으로 성문화된 것은 개략 기원전 4세기경이다. 그러나 그 안의 여러 법칙은 이미 그 이전부터 널리 사용되었다. 그 중에는 '임거자(林居者)'와 '둔거자(遁居者)'에 관한 것을 규정하고 있는데, 백발이 되면 숲으로 가서 살아야 하고, 야생과일과 걸식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노자는 태어나면서 흰 머리였고, 배꽃나무를 성으로 삼았으며, 이것은 그들이 바로 이런 '임거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이 '마누법전'이 규정한 것과 같이 침묵과 고적을 유지하며 요가를 수련함으로써 '도를 깨닫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도덕경에서 말하는 '현지우현, 중묘지문(玄之又玄 衆妙之門)'의 내용과 일치한다.

 

이외에, 토자는 청우(靑牛)와 백록(白鹿)을 탔는데, 중국에서는 모두 보기 드문 것들이다. 그러나, 인도에는 많은 것들이다. 이것은 상서로운 신수이며, 부처는 내세에 녹왕이 되었다고 하여 '녹(鹿, 사슴)'이 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노자가 이런 것들을 탔다는 것도 우리에게 그의 민족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노자집단이 활약하던 중국의 시대는 바로 인도에서 바라문운동이 흥성하던 시기이다. 당시의 인도는 수십개의 작은 나라로 갈라져서 서로 합병하고 전쟁하였다(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비슷하였다). 사람의 생명과 자유가 심히 위협받고 있었든데, 바로 이때 일부 철학자들이 사회에서 벗어나 떠돌아다니면서 삼림과 광야에서 야생과일을 채취하고 구걸하면서 살아갔다. 이로써 진리와 마음의 안정을 찾은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처음에는 각지에 산재한 무정부주의자였으나, 나중에 조직적인 정치단체가 되었다. 그들중의 소수인들은 한편으로 요가를 수행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머나먼 '중국'으로 여행한 것이다. 그들은 주왕조의 광활한 영토에 들어와서 그들의 진리를 전파하고 탐색하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중국문명의 여명기에 '노자'라고 부르는 위대한 성현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출처 http://m.blog.daum.net/shanghaicrab/11047517?categoryId=459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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