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일단 이 사건의 직접적인 관할기관인 해경을 살펴보자. 대략 만 명 수준의 인력을 가지고 연간 1조 정도의 예산을 집행하는 기관이다. 해양수산부 산하의 기관으로, 일반 경찰(해경들은 일반 경찰을 육경이라 부른다.)과는 전혀 다른 조직이다.
인원이 만명이다. 인건비는 얼마나 될까? 이런 저런 수당을 합쳐 전국 공무원의 평균 연봉은 5220만원 정도 된다. 즉, 만 명의 봉급만 이미 5220억이다. 년간 예산의 절반 이상이 인건비로 소모된다. 육지와 달라 해경이 쓰는 장비는 상대적으로 고가이다. 즉 육경이 경찰차 사듯이 보트를 사기 힘든 것이 해경이다. 선박의 가격대를 생각해 보면, 해경들이 왜 맨날 고무보트나 타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그런 장비들의 유지보수 비용도 매우 고가일 수 밖에 없다.
결국 만 명의 인원에게 주어진 1조의 예산은 그저 조직이나 겨우 유지할 수준이지 고가의 구난 장비들을 구매할 여력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돈으로 겨우겨우 꾸려가고 있는 것이 해경이다. 해경 출장소에 보트도 없고 기껏해야 제트스키 수준의 장비만 가지고 있다고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 와중에 정부는 해경 관련 예산을 더 줄이고 있다. 추가적인 장비확보는커녕 있는 장비 운영도 못할 판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 세월호 같은 대형 사고가 터진다.
이렇게 되면 기본적으로 해경 장비만으로는 구조작업 자체를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렇다고 다른 지역의 해경장비를 마구잡이로 동원할 수도 없다. 그랬다가 다른 지역에서 또 사고가 터지면 어쩌겠는가? 원칙적으로 일상적인 업무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 결국 민간 인력과 장비를 도입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추가적인 예산이 필요해진다. 결국 해경은 다른 부서나 상위 부처에게 예산 편성을 요구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고위층의 결재가 필요한 일이다. 결재 없이 돈을 집행했다가는 어떤 처벌을 받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 경우 관료들은 움직이지 못한다.
사고 초반에 예인선을 불러 배의 전복을 막자는 아이디어, 오징어 배 아이디어, 오징어 배보다 더 현실적인 고등어잡이 어선의 수중등 아이디어, 심지어 다이빙 벨 같은 장비들, 해경이 선뜻 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돈이다.
자원봉사자들을 모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자원봉사라고 해도 실제 경비는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사건이 끝나면 다들 현실로 돌아와 냉정해지기 마련이다. 사람이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다. 돈이 속인다.
그렇다면 대형 사고 발생시 관료들의 구조 활동은 아예 기대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건 또 아니다. 최고 결정권자의 결단이 있으면 된다. 만약 대통령이 직접, 이번 사고에 대한 구조작업에 있어서 예산이 문제가 된다면 얼마든지 해결해 줄 테니 고가의 민간 장비나 인력이라도 동원할 수 있는 만큼 다 동원하라고 언질을 주게 되면 그 때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민간 잠수사들이 요구하던 바지선 대량 투입도 가능해진다. 이런 것들 비용은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수준 보다 훨씬 더 높다. 관료들이라고 해서, 국가 예산을 집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우습게 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예산 신경 쓰지 말고 돈을 써도 된다는 언질을 주게 되면 상황은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잠시 상기해 보시라.
태안에 삼성 선박 기름 유출 사고가 났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했던 말 중에 분명히 이런 언급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실 것이다.
(하소연하는 어민에게) “정부는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총동원 할께요. “
(비용 문제로 인한 어려움을 말하는 청장에게)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청장이 모든 비용을 혼자 좌우할 수 없기 때문에 조심스러운건 알겠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나중에 비용을 받는 것은 받는 거고, 못 받는 것은 못 받는 것이니, 그것은 재판에 맡길 일이고, 필요 없는 것은 나갈 필요가 없겠지만, 필요한 만큼은 관계없이 다 동원하라는 겁니다. “
최고 권력권자가 동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동원하라는 말을 명시적으로 현장 책임자에게 얘기를 해 주고 있다. 이러면 관료는 움직인다. 돈을 얼마를 쓰던지 현직 대통령이 직접 쓰라고 했는데, 못 쓸 일이 없다. 이로 인해 자신이 짤릴 이유가 없어진다.
그러면 관료들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태안에 유출된 기름이 퍼지는 것을 막고, 해안가에 떠내려온 기름을 제거하는 것에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투입되었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방제복, 장갑, 흡착포 등은 아낌없이 관청에서 나왔고, 순식간에 기름은 제거 되었다.
이런 것이다. 관료는 마음대로 일을 할 수가 없다. 확실하게 권한이 주어져야 일을 하는 것이 관료다. 이 점은 비난해서는 안될 일이다. 공무원으로 복무하는 것도 힘든 지경인데,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라 해도 자신의 권한을 넘어 자원과 돈을 동원하지는 못한다. 이럴 때 분명히 상급 결정권자, 최고 권력자가 명확한 지시를 해 줘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박근혜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지키기 힘든 애매한 약속만을 남발하고서는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여기 있는 모든 관료들이 옷 벗을 줄 알라고 협박을 한다. 이렇게 되면 돈 쓰지 말라는 얘기이다. 아무것도 규정에 의하지 않고서는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해경은 못 움직였다. 나아가 돈하고 관계없는 자발적인 민간 구조요원들의 투입도 막게 된다. 저들이 언제 비용을 청구할지 모르는 일 아닌가.
아직 우리 정부는 이런 사고가 터졌을 때 아무런 지시나 보장 없이 자발적으로 움직여서 문제를 해결할 만한 장비와 자금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런 완벽한 시스템은 아직 우리에게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고는 터졌고 해결을 해야 한다면, 대통령이나 장관들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명확해진다.
“지금 너에게 없는 장비와 인력을 마음껏 동원해서 써라. 뒷감당은 내가 해 주겠다.”
이 한 마디면 충분하다. 이게 권력자가 해야 할 일이며, 해야 할 일의 전부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관료는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방법이 없었다. 더 분통이 터지는 것은, 그래놓고 관료들에게 온갖 비난의 화살을 돌려 버리고 자신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 피해자 가족들 앞에서 라면을 먹는 장관, 중대본에서 밤에 몰래 치킨을 시켜 먹는 것, 복지부 직원들이 앰뷸런스를 타고 다니는 것, 이런 짓들은 오히려 애교에 가까운 일이다. 오히려 지원되는 차량도 없어서 앰뷸런스를 타야 하는 공무원들에게 연민이 느껴질 정도다. 물론 절대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관료를 움직이는 방법을 모르는 대통령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게 아니라면, 진짜로 그 수많은 어린 생명들보다 몇 십억, 몇 백억 예산이 더 중요해서 아끼려 드는 대통령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양쪽 모두 마찬가지다 .
우리는 참으로 나쁜 대통령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출처 : 물뚝심송 블로그 (http://murutukus.kr/?p=6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