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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살의 나이에 아기를 낳아보려고 하는데, 걱정이 앞섭니다."
게시물ID : lovestory_788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edIUm
추천 : 6
조회수 : 132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6/04 02: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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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 양산 문화예술회관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마친 후 저녁 7시에는 창원 KBS홀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7시가 가까워지자 많은 사람들로 로비가 북적거리더니 강연이 시작되기 30분 전에는 준비된 1800석이 모두 가득 찼습니다.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KBS홀을 가득 메운 청중들이 박수와 환호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스님은 중앙이 아닌 양쪽 날개에 앉아 계신 분들에게 자주 쳐다보지 못하더라도 양해를 바란다고 하면서, 예년보다 무척 더웠던 5월 한달 동안의 이상기후에 대해 얘기하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올 봄은 그 어느 해보다 많이 더웠다고 해요.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한 5월 중에 가장 더웠던 5월이였습니다. 이 외에도 지금 이상기후나 환경공해와 같은 부작용이 많이 나타나고 있지요. 그래서 우리가 발전했다고 말하는 게 정말 발전으로 가는 길인지, 공멸로 가는 길인지는 시간이 더 지나가 봐야 압니다. 

 


 

이런 것처럼 여러분들이 결혼할 때 스님한테 ‘스님, 축하해 주세요’라고 말하지만 절대로 제가 축하해 준다는 말을 안 쓰거든요. 이게 축하할 일인지 애도할 일인지, 지금은 알 수가 없고 조금 더 지나봐야 알 수 있으니까요.(모두 웃음) 

 

조금 후에 여러분들은 스님한테 이런 저런 질문을 할 건데, 대부분 처음에는 스스로 축하받을 일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불행을 자초한 거였다는 얘기일 것입니다. 축하받으며 결혼했는데 지금은 남편이나 아내 때문에 못 살겠다거나, 애 낳았다고 축하받았는데 지금은 그 애가 속을 썩인다거나, 취직했다고 축하받았는데 지금은 직장생활이 어렵다거나, 개업했다고 화환을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회사가 어렵다거나 하면서 난리일 겁니다. 

 

그러니 인생을 길게 보면, 우리가 좋다고 하는 게 반드시 좋다고 말할 수도 없고, 나쁘다고 하는 것 또한 반드시 나쁘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은 조금 더 길게 봐야 합니다. 나한테만 단기적으로 좋은 게 우리 모두에게 장기적으로 좋다는 아무런 보장이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라는 건 마약과도 같은 겁니다. 단기적으로는 좋을지 몰라도 조금 길게 보면 결국 본인 건강을 해치고, 사회적 비난을 받게 되는 등 오히려 불행을 자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행복을 추구해야 될까요? 행복이 불행으로 바뀌지 않는 행복, 즉 지금 좋은 것이 나중에도 좋고, 내가 좋은 것이 너도 좋고, 네가 좋은 것이 나에게도 좋은, 이런 행복을 찾는다면 그 행복은 지속가능 합니다. 그런 행복은 나중에 불행으로 바뀌지 않으니까요. 지금 좋은 것이 나중에도 좋다는 걸 불교용어로 열반이라고 합니다.

 

중생이라는 것은 고뇌하는 자를 뜻하는데, 부처님께서 뭐라고 하셨느냐 하면 ‘모든 고뇌하는 자는 다 부처가 될 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따져보면 불행할 이유가 하나도 없으니까 사실은 다 행복한데 뭔가 덮어씌워져서 ‘나는 불행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도 하셨어요. 그 착각을 깨면 우리가 본래 행복한 상태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고도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옛날에 썼던 말을 다시 살펴보면 부처님의 말씀은 ‘네가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승려든 아니든, 종교가 뭐든 상관없이 너는 행복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 권리를 제대로 향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누구나 행복할 수 있는 우리의 권리를 찾는 날로 합시다. 무슨 권리를 찾는다고요?” 

 

“행복할 권리요.” 

 


 

“네. 행복할 권리를 되찾자는 게 오늘의 주제라면 주제예요. 자, 그러면 지금부터 그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사람, 그 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모두 웃음) 

 

행복할 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자는 스님의 이야기에 모두 큰 웃음을 터뜨리며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결혼 18년차에 4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아도 될지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아이를 낳고자 하는 엄마는 어떤 마음이여야 하는지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몇 년 뒤에 괴로워하면서 스님께 질문을 드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오늘 이 자리에 왔습니다. 저는 47살이고, 결혼한지는 18년 됐는데, 일부러 아이를 안 낳고 살았거든요.” 

 

“안 낳는 거예요? 못 낳는 거예요?”

 

“안 낳았습니다. (모두 웃음) 그렇게 된 이유는 첫째, 저희 결혼할 때 신랑이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돈을 벌어서 살다보니까 그렇게 됐고요. 둘째, 시어른들께서는 아이를 낳으면 키워주신다고 하셨지만 비록 시어머니라도 다른 사람이 제 아이를 키우는 것 자체가 용납이 안 돼서 그렇게 됐고요. 셋째, 그 당시 제가 애를 낳아서 키울 자질이 없는 것 같았고요. 넷째, 저는 어렸을 때부터 ‘세상에 태어나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차라리 안 태어나는 게 낫겠다. 아기를 낳는 게 그렇게 좋은 일이었다면 스님들도 다 아기를 낳고 사시겠지, 왜 안 낳고 사시겠느냐?’ 라고 생각했기 문입니다. 그래서 결혼 후 18년 동안 애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한 절에 갔더니 거기 스님께서 저한테 하시는 말씀이 ‘아기를 낳아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아기를 낳으면 훌륭한 아이가 나온다. 혹시 아기를 안 낳게 되면 나중에 나이 들어서 당신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남편이 밖에서 아기를 낳아올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당신만 혼자 불행해진다’ 라는 겁니다. 처음에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좀 그랬지만 항상 법륜 스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으로서 다시 생각해 봤어요. ‘내가 여태 신랑과 둘이서 살아왔는데, 나중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스님처럼 혼자 살면서 정토회에 가서 봉사하면 되지’ 하는 생각에 마음을 접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말쯤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지금 제가 나이는 많지만 아기를 낳아도 직접 키울 수 있을 것도 같고, 또 스님의 법문을 듣거나 책을 읽어보니까 아기를 낳아서 키우는 게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제가 남편한테 ‘예, 예’ 하면서 숙이고 살면 제 마음도 편해져서 자식을 잘 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4개월 전부터 불임클리닉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나이가 들어서 아기를 낳는 게 100% 아이를 위한 일인지 판단이 안 되는 겁니다. 아기 입장에서는 태어나보니까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라면 아기한테 너무 미안할 것 같거든요. 또 지금 쥐가 쥐약을 먹기 일보직전의 상황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여러분들이 자꾸 그런 질문을 하니까 다른 스님들이 저를 욕합니다. ‘스님이면 스님의 위상을 지켜라. 뭐하노?’ 이렇게 비난을 해요.” (모두 웃음)  

 

“스님께서는 다른 스님들과 다르시니까요.” 

 

“낳고 싶으면 낳고, 낳기 싫으면 안 낳고, 질문자가 알아서 하면 되지, 제가 그런 것까지 감 놔라, 팥 놔라 해야 돼요?” (모두 웃음) 

 


 

“제가 나이가 젊으면 모르겠는데 나이가 많으니까, 아기를 낳는 것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판단이 안 섭니다. 낳기 전에 미리 스님께 여쭤봐야 되겠다 싶어서요.”

 

“질문자가 아기를 안 낳은 이유가 처음에는 경제적인 상황이 어려워서 그랬다는 것이고, 그 다음은 이 세상이 너무 험악해서 그랬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한 스님이 질문자는 훌륭한 아기를 낳을 거라고 하니까 아기를 낳고 싶어졌고, 이제는 ‘애를 낳으면 이게 좋은 일이 될까? 나쁜 일이 될까?’ 고민하고 있고요. 그래서 저한테 오늘 이렇게 묻는다는 거잖아요. 

 

질문자의 이런 사고방식은 스님 법문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고방식이에요. 그러니 어디 가서 ‘스님 법문 듣고 있다, 스님 존경한다’ 하는 말을 제발 좀 하고 다니지 마세요. 이런 사람들 때문에 제가 망신스럽다니까요.(모두 웃음) 

 

그 사고방식은 엄마의 자격이 없는 사람의 사고방식입니다. 아기를 낳을까 말까 하는 것 자체가 엄마의 사고방식이 아니에요. 아기가 없을 때는 엄마가 아니기 때문에 ‘아기를 낳을까? 말까?’, ‘낳을 때가 됐나? 안 됐나?’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어요. 그건 이해해요. 

 

그런데 짐승들을 한번 보세요. 토끼든 들고양이든 고양이든 ‘우리 형편에 지금 새끼 낳아도 되겠나?’, ‘겨울에 낳아도 되겠나?’, ‘집은 있나? 다 준비가 됐나?’ 하는 생각을 할까요? 쥐들이 ‘우리가 새끼 낳았는데 고양이가 물어 가면 어떡하지? 그러니까 새끼를 낳으면 안 되겠지?’ 이런 생각을 할까요?” (모두 웃음)

 


 

“안 해요.” 

 

“안 해요. 그냥 새끼를 낳게 되면 낳고, 낳으면 목숨 걸고 키우고, 그러다 고양이한테 물려죽으면 포기하고 또 새로 낳아서 키우고 그런단 말이에요. 이 자연생태계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닭도 병아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깃털을 세우고 사람한테 대들고, 고양이나 개도 사람이 제 새끼 낳은 데 가까이 가면 ‘으르렁’ 거리면서 덤빕니다. 새가 둥지에 알을 낳았는데, 사람이 나무에 올라가 그 둥지에 손이라도 대면 새도 죽기 살기로 사람한테 덤빕니다. 그게 어미의 본성입니다. 새끼를 보호하려는 어미의 본성이예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의 사고방식은 엄마의 사고방식은 아니고, 이웃집 아줌마의 사고방식입니다.(모두 웃음) 

 

물론 지금 엄마가 아니니까 그렇겠지만, 단지 질문자가 늙어서 문제가 되는 건 아니예요. 질문자의 사고방식이 아줌마의 사고방식이지 엄마의 사고방식은 아니라는 게 문제입니다. 엄마란 아기의 얼굴이 검든 희든 상관없어야 돼요. 누렁개가 새끼를 낳을 때도 털색깔이 까만 게 나오기도 하고, 희거나 노란 게 나오기도 하지요? 그럴 때 개가 흰 새끼만 보살피고, 까만 새끼는 물어죽이고 그러던가요? 개도 그렇게는 안 합니다. 

 

아기가 건강하든 신체장애든, 공부를 잘하든 못 하든, 그것은 그 아이의 태어난 상태일 뿐이고, 엄마라면 아기의 장애는 장애대로 보살피고, 건강하면 건강한대로 보살피고, 못났으면 못난 대로 보살피고, 그러는 게 엄마예요. 동네 사람들은 ‘저 집 아들은 없는 게 낫겠다’ 라고 말할 수 있지만 엄마는 아이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보살펴야 되고, 인물이 잘났든 못났든 상관없이 보살펴야 되고, 건강하든 장애가 있든 상관없이 보살펴야 돼요. 그런데 사람들은 장애아를 낳았을 때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장애아를 낳았나? 궁합이 안 맞아서 그런가?’ 라고들 하지요. 그건 장애를 죄값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장애아를 차별하기 때문에 자기가 장애아를 낳은 걸 죄값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옛날에는 여자를 차별하니까 여자아이를 낳으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아들을 못 낳고 딸을 낳았나?’라고 한탄을 했지요. 아들을 낳아야 대우를 받고, 딸을 낳으면 대우를 못 받으니까 딸을 낳는 게 전생의 죄라고 생각해서 울었던 것이고, 심지어 딸아이를 낳으면 죽이기도 했던 겁니다. 또 딸을 낳으면 ‘딸 낳은 년이 무슨 해산을 한다고 쉬기는 쉬느냐?’ 라고 해대서 산모가 해산한 날 호미 들고 콩밭 매러 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여자를 차별했기 때문에 그랬던 거예요. 

 

이렇게 세상 사람이 차별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엄마는 차별하면 안 됩니다. 만약 여러분들 자녀 중에 한 명이 동성애자이거나 양성애자라면, 천하의 사람들이 다 그를 손가락질 하더라도 엄마는 이해해야 합니다. 엄마는 자기 자식을 사랑해야 되고, 또 그런 자식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게 엄마예요. 그런데 질문자는 엄마가 될 사람이면서 지금 아기가 괜찮은 애인지 나쁜 애인지, 아들인지 딸인지, 장애인지 아닌지, 공부 잘 할 건지 못할 건지, 이렇게 잔머리를 굴리고 있단 말이에요.”

 

“꼭 그런 건 아니고요. 제가 나이가 많으니까 걱정이...”

 

“에이! 아니긴요. 그런 생각을 갖는 질문자 같은 사람은 아이를 낳으면 안돼요. 아이를 낳으려면 어떤 아이가 나오든 잘 키울 생각을 해야지요. 안 낳으려면 낳지 말고, 일단 낳으려고 한다면 어떤 아이가 나오든, 아이한테 어떤 일이 닥치든, 일단 낳은 아이는 내가 책임을 지겠다는 관점을 가져야지, 머리를 굴려서 뱃속을 들여다보며 ‘여자일까, 남자일까? 장애가 있나, 없나?’ 따지는 건 엄마 자격이 없는 거예요. 물건을 고를 때나 ‘이게 고장이 날까, 안 날까?’ 싶어서 고르는 거지, 사람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런 생각이 잘못된 생각이에요.” 

 

“저는 그런 생각은 안 했는데요.” 

 

“지금까지 그런 얘기해 놓고, 이제 와서 무슨 소리예요? 질문자가 방금 그랬잖아요. 생활이 어려워서 아기를 키울 여유가 없었다고요. 그래도 질문자의 생활이 다람쥐보다는 나았을 건데, 질문자가 직장 다니고 남편이 공부하는 거랑 애 낳는 게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스님들이 아이가 이 세상에서 고생할까봐 아기를 안 낳는 줄 알아요? 

 

하여간 질문자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법문이고 뭐고 전부 자기 식으로 듣고 있어요. 아기가 필요 없을 때는 이래서 필요 없다 해놓고, 이제 아기가 필요 있을 때는 이래서 필요하다고 하면서 전부 자기 식대로 법문을 듣는 거예요. 어떤 스님의 말씀까지도 다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요. 질문자는 오늘 야단 좀 맞아야 해요.” (모두 웃음)

 


 

“죄송합니다.” 

 

“질문자는 지금 쓸데없는 고뇌를 하고 있어요. 아기를 낳으려고 애도 쓰지 말고, 안 낳으려고 애도 쓰지 말고, 생기면 낳아서 키우고, 많이 낳아서 더 이상은 안 되겠다 하면 조처를 취하고, 그러면 되는 겁니다. 결혼한 사람들이 ‘낳을 때가 안됐다. 좀 있다가 낳자’ 라고 하는 건 별로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결혼은 했어도 아이는 안 낳고 살겠다고 생각했다면 끝까지 안 낳아야 되고, 낳겠다고 하면 생기는 대로 낳든지, 안 생기면 입양하든지 하면 됩니다.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죠. 애 낳는 걸 무슨 물건 고르는 것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부모의 나이는 크게 상관이 없습니까?” (모두 웃음) 

 

“질문자가 출산과 부모의 나이는 상관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아기 낳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죠. 왜 저한테 묻는 거예요? 또 질문자가 낳은 아이가 엄마를 할머니 같다고 생각하면 아이한테 좋은 일이 아니겠다고 생각한다면, 아기를 낳지 말아야지요.

 


 

질문자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저한테 아기를 낳을지 말지 고민이라는 질문을 하는데, 그것은 저더러 어떡하라는 거예요? 제가 '할머니 나이라서 안 된다' 라고 대답해주면, 질문자는 아기를 안 낳을 거예요? 아니면 제가 ‘할머니라도 괜찮다’라는 말을 해서 질문자를 위로해 주기를 바라는 거예요?” (모두 웃음)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질문자는 지금 뭘 깨달았는데요? 지금 스님하고 얘기해 봐야 말이 안 통한다는 거지요? (모두 웃음)

 

제 말은 세속에 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영악하게 머리를 굴릴 수도 있지만, 자식에 대해서 부모가 그렇게 영악하게 머리를 굴리면 안 된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질문자가 아기를 낳을까 말까 고민했다는 얘기, 어떤 절의 스님한테 들은 얘기에 대한 해석, 오늘 저한테 질문한 내용, 이런 모든 것이 자녀를 가지려는 엄마의 사고방식으로서는 굉장히 나쁜 사고방식이라는 겁니다. 그런 사고방식을 버리는 게 중요해요. 그런 사고방식으로는 100에 90은 나쁜 결과가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그렇게 머리를 굴렸기 때문에 기대가 크거든요. 지금 질문자는 아기를 안 낳으려다가 뒤늦게 낳으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대가 큽니다. ‘아기를 낳는 게 진짜 좋다면 아기를 낳을 것이고, 안 그렇다면 내가 이 나이에 낳을 필요가 뭐가 있느냐?’ 하는 거잖아요. 그건 기대가 크다는 얘기예요.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큽니다. 지금 질문자는 아기를 낳고, 안 낳는 게 주관심사인데, 스님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질문자가 자식에 대해서 아무런 기대도 갖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겁니다. 질문자는 지금 아이를 안 낳으려다가 늙어서 낳으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자식에 대해 엄청난 기대를 갖게 됩니다. 그렇게 낳은 자식은 아마 엄마의 등쌀을 못 이길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지금 위험한 상태예요. 그 생각을 안 바꾸면 아이를 안 낳는 게 낫고, 그 생각을 바꾸면 아이를 낳고 안 낳는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질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스님은 작심을 하고 야단을 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린 아기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스님은 말 못하는 어린 아기들의 입장을 대변해주고자 더욱더 언성을 높이곤 합니다. 오늘도 그런 것 같았습니다. 

 

질문자가 그제서야 스님의 뜻을 이해하고 환하게 웃자, 스님은 왜 이렇게 호통을 칠 수 있는지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제가 질문자에게 야단을 많이 쳤는데요. 제가 질문자한테 이렇게 야단쳐도 괜찮은 이유는 딱 한 가지 때문입니다. 그건 제가 돈을 안 받았기 때문이에요. 만약 정신과 의사가 돈 받은 환자한테 저처럼 얘기하면 장사가 안 되겠지요. 그래서 돈을 안 받으니까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그리고 제가 한 말이 질문자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해도 저는 크게 신경 안 써요. 저한테 질문자가 돈을 낸 것도 아니니까요.” (모두 웃음) 

 


 

스님은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만큼 순수한 마음으로 애정을 갖고 얘기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청중들도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출처 https://www.jungto.org/buddhist/budd8.html?sm=v&b_no=73606&page=1&p_no=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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