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기 질문하신 다른 분들처럼 개인적인 고민보다는 궁금한 점이 있어서 질문드리는데, 친구들이나 가족들한테 이런 질문을 하면 좀 이해가 안되는 질문이라서 스님께 질문 드리면 답이 나올 거 같아서 드리는 질문입니다.제가 스님 책 중에 "깨달음"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스님 말씀 중에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이 분별을 내려놓는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해주셨거든요. 그 점에 대해서 제가 되게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맞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 말씀이 진리라고 생각할 때는 '어떤 상황에 적용시켰을 때도 통해야 이것이 진리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서 계속 생각하다보니까 '선과 악이라는 것이 원래부터 선한 것, 원래부터 악한 것이 존재하는 게 아니고 사람이 어떻게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따라서 정해진다' 이렇게 이해했는데 이것이 맞는 이해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
"예."
"그러면 세상에 선과 악이라는 기준, 이게 옳은 것이다 이게 그른 것이다 하는 기준이 없다면, 예를 들어 애들이 싸우는 상황일 때 어떤 아이가 돈을 뺏기 위해서 상대방을 때리는 경우에도 그런 기준이 없다면 '니가 맞다 니가 잘못했다'라고 말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주변에 적용시켰을 때 도움이 되는 점이 많았지만 생각이 막히는 부분이 많아서 선과 악이라고 정할 수 있는 것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좀 막연한 질문이지만 스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네. 사람이 옷을 입어야 돼요, 벗어야 돼요?"
"입어야 됩니다."
"그래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세상의 상식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 기준에 맞춰서 살아야지 균형이나 조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을 지키고 사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음... 그럼 목욕탕에서는 입어야 돼요 벗어야 돼요? (청중 웃음)"
"네 벗어야죠 목욕탕에서는. (청중 웃음)"
"그럼 아까는 입어야 된다며? (청중 웃음)"
"똑같은 행동이지만 상황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은 맞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
"그럼 자기 지금 질문한거에 대해서 해결이 안 됐어요? "
"음..(청중 박수) 근데 구분이 없다는 것은 어떤 종교적인 진리와도 통하지 않습니까? 선악이 없고 분별이 없다는 것은 종교적인 진리와 통하는데 실제로 '이건 해야된다 이건 하지마라' 이런 것은 종교의 계율이 훨씬 더 강하잖아요? "
"아니 그러니까 사람이 밖에 있을 때 옷을 입으라고 얘기 해요, 입던지 벗던지 네 마음대로 하라 그래요?"
"밖에서는 입어야죠."
"목욕탕 안에 들어가면 벗으라고 말해요 아니면 입던지 벗던지 네 마음대로 하라 그래요?"
"네 벗어야죠."
"왜 입는게 좋고 벗는게 좋고 정해진게 없다면 왜 벗으라 그러고 입으라 그래요? "
"분명히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될 수 있는데, 또 모든 상황에서 다 같은 원리로 적용하면 좀 적용이 안되는... "
"왜 안 돼요? 그럼 '목욕탕 안에서는 벗고 밖에서는 입어라' 할 때 목욕탕 밖이라도 부부가 침대 속에 들어갈 때는 입어야 돼요 벗어야 돼요? "
"벗어야 돼요. (청중 웃음)"
"거봐요. 그러니까 상황에 따라서 일어나는 거지 그것이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뜻이에요? 아무때나 벗고 아무때나 입어라 이 말이에요 아니면 주어진 상황에서는 입는 게 옳고 벗는 게 그르다고 할 수도 있지만 무조건 입는게 옳고 벗는게 그르다고 할 순 없다는 거에요? (청중 박수) 해결됐으면 됐고 안 됐으면 질문하고."
"세상에 어떤 기준이 없다면 사회 정의라는 것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럼 없는 게 좋냐 있는게 좋냐 하는 기준은 어디에 있어요? "
"음...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서..."
"그러니까 그것처럼 세상도 어떤 상황에 따라서 기준이 있는 거지.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서."
"네. 더 고민하고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웃음)(청중 박수)"
"네. 아마 우리가 너무 옳고 그르다는 절대적 진리의 관점에 서있었기 때문에 아마 저런 고민이 반드시 있을거라고 생각은 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을 해 보시고 금강경도 한번 읽어 보시고 금강경 해설본도 한번 읽어 보시고.
"무유정법이다", "정함이 있음이 없다" 정함이 있음이 없다는 건 없다는 뜻이냐 아니면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뜻이냐.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아무렇게나 해도 되나? 아니면 없는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물을 이분법적으로 보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자기가 지금 분별심을 내려놓는 것마저도 분별심을 가지고 보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서울 가는 방향을 물을 때 인천 사람이 물으면 동쪽으로 가라고 하고, 춘천사람이 물으면 서쪽으로 가라고 하고,
수원사람이 물으면 북쪽으로 가라고 해요. '서울 가는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 말은 서울 가는 길이 없다는 뜻이냐? 아니에요. 그러면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아무렇게나 가도 된다는 뜻이냐? 그것도 아니에요. "정해져 있지 않다" "공(空)이다" 이 말은 상황을 무시하고 시공간을 떠난 것에는 "정함이 없다" "공(空)이다" 이렇게 표현하고, 인연에 따라 시공간이 정해지면 거기에 맞는 적절한 법이 나오게 된다, 그 시공간 안에서 절대적 진리는 없다 이 말이에요.
인천사람에게 동쪽으로 가라고 그런다고 동쪽이 서울가는 길이다 이렇게 말할 순 없어요. 그러면 인천사람에게는 동쪽이 아니냐? 그 얘기도 아니에요. 인천사람에게는 그 시공간에서는,그 인연에서는 동쪽이라는 거예요. 그러나 그것이 절대적인 동쪽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아까 4가지를 얘기하잖아요. 혼자사는게 아니고 여럿이 같이 사는 공동체라는 전제 위에서는 4가지가 지켜져야 해요.
첫째,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된다.
둘째, 뺏거나 훔쳐서는 안된다.
셋째,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안된다.
넷째, 거짓말이나 욕설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공동으로 살아가는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 안에서 그것이 깨져버리면 공동체가 파괴된다는 거예요. 그럼 자기가 공동체를 떠나서 혼자 살겠다하면 이런 것이 적용이 안돼죠. 적용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인간이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것을 가지고 선악을 말할 수 있을 까요 없을까요? 그러니까 이것은 인간의 마음이 짓는 바이다 하는 얘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