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우간다 캄팔라에 사는 22살 대학생이라고 한번 상상해 봅시다. 수업 시간에 앉아서 폰으로 몰래 페이스북을 보니 또 미국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네요. 이번엔 산 버나디노라는 곳이예요.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곳이고 미국에 가 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총기난사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고 거의 매주 발생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생각 해 봅니다. 내가 미국에 가서 더 엄격한 총기 규제를 통과 시킬 수는 없을까? 그렇게만 한다면 미국 사람들에게는 해결사, 생명을 구하는 사람, 그리고 영웅이겠지. 얼마나 어렵겠어? 어쩌면 나 같은 이상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대학 후에 사회적 기업가로 트레이닝 시켜줄 후원단체가 있을지도 몰라. 총기 난사 사건들을 종결 시킬 NGO를 시작할 수 있을거고, 어쩌면 30대에는 인권상을 받을지도 모르지.
너무 대책 없이 순진하다는 생각이 드나요? 어쩌면 조금은 망상 같기도 하나요? 그럴거예요. 하지만 많은 미국인들이 제 3 세계의 문제에 대한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22살 미국인에게 총기법에 대해 묻는다면 아마 사회적 기업에 관한 워크샵 몇 개 참석하고 NGO를 만드는 것 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라고 얘기할 거예요. 22살의 미국인은 캄팔라의 22살에게 미국 총기 문화의 긴 역사와 그 강력한 지지층의 존재, 입법 절차의 어려움이나, 정신질환과 치료의 여러 복잡함에 대해 얘기 해 줄지도 모르죠. 그리고 외부인이 이런 문제를 제기 하는 것이 더하는 복잡함에 대해서도 말할지 모르죠.
하지만 그 22살 미국인에게 다시 우간다의 가장 시급한 문제에 대해 묻는다면 (가령 기아나 여성 고등 교육이나 동성애 혐오) 아마 그 미국인은 해법이 있는 문제들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쉽게 해결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저는 요즘 이것을 타인의 문제에 대한 단순화에서 오는 끌림이라는 트렌드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악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합리화도 가능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자신은 당연히 알 수 없죠.
젊고, 특권을 누려왔고, 인생의 의미를 찾는데에 관심이 있다면 시급하고 쉽게 해결 가능한 문제에 끌리는게 당연해요. 당연히 동기들 중에서 자신을 꿈이 있는 이타주의자로 돋보이게 만들어 줄 명망있는 후원 프로그램들에도 지원 하고 싶겠죠. 또 당연히 비행기를 타고 이국적인 곳, 그리고 더 중요하게 이국적인 문제들을 접할 수 있는 곳이 끌립니다.
한 산업 전체가 이런 끌림 혹은 상상을 부추기 위해 존재합니다. 가장 먼저 미국에 등록 된 150만 개의 외국을 돕기 위한 NGO들이 있죠. 젊은 미국인의 오만은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그냥 나타나는게 아닙니다. 이런 오만함은 인턴쉽과 일 할 기회, 넘쳐나는 컨퍼런스, 그리고 문화적 프로파간다를 통해 길러집니다. "세계를 구하라"는 오만하고 위험하게도 단순한 문구에 빠져서 말이죠.
이런 단순함의 유혹은 악의는 없지만 무모하고 위험한 것일 수 있습니다.
첫째로 당신이 단순하다고 잘못 결론 내린 문제를 직접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험합니다.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문제에 얽힌 복잡함을 읽지 못하고 해결을 시도 할 때 실제 피해도 많이 생깁니다. 예는 차고 넘치죠. 데이비드 본스타인이 뉴욕 타임즈에 적었듯이 40여년 동안 우리 "서양인"들이 깨끗한 물을 공급할 목표로 했던 일들은 수억 불의 고장난 우물과 펌프가 결과였고 대부분은 2년도 채 작동 하지 않았습니다.
이 대표적인 예로 2006년에 미국 정부, 클린턴 재단, 케이스 재단, 그리고 많은 이들이 수백만 달러를 투자해 만든 "플레이 펌프"가 있죠. "플레이 펌프"는 안전한 마실 물을 제공하는, 기존의 펌프를 대체할 것이라고 홍보된 회전 놀이기구 펌프입니다. 개발도상국의 수도 문제에 대한 (재미있는) 해답으로 제시 되었던 이 프로젝트는 2007년에 이르러서 잠비아 한 곳만 봐도 1/4이 고장 나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하루에 27시간 동안 "놀아"야 플레이 펌프가 처음에 보장했던 양의 물을 생산 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는 재미있는 해법을 약속하는 프로젝트들에 쉽게 유혹 됩니다. 2011년 킥스타터에서는 "소켓"이라는 에너지 생산 축구공이 9만 2천 불을 모으며 대박을 터뜨렸죠. 3년 뒤에 회사는 후원자들에게 "여러분 대부분은 생산 과정이나 품질 관리에 있어서 문제가 있는 대단히 실망스러운 제품을 받았을 겁니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이 킥스타터 프로젝트를 완전히 말아 먹었어요."
놀랍도록 정직한 책임 인정을 보면서도 저는 기대 찼었을 전기 부족에 시달리는 지역 아이들에게의 메세지는 어디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런 문제의 유혹이 실제 피해를 낳기도 하죠. 탐스 슈즈는 초기에 "하나 사면 하나 기부"라는 비즈니스 모델로 미국에서 생산한 신발을타국에 기부했습니다. 이런 "기부"는 현지의 신발 공장들을 폐업 시키고 실업을 유발 할 수 있어서 악명을 얻게 됐죠.
심지어 개발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런 시도들을 일컫는 Swedow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들의 줄임말)라는 은어도 만들었습니다. 에이드워치라는 개발 감시 블로그는 이런 문제 때문에 공상적 사회 개량가(?)들의 "이타적 본능"을 스스로 현실 검증 할 수 있게 간단한 플로우 차트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입니까?" 같은 간단한 질문 부터 "이것이 현지에서 공급 문제를 일으키거나 다른 왜곡을 발생시킬 것입니까?" 같은 조금 더 생각이 필요한 질문들도 있죠.
두번째로, 이런 문제의 유혹은 당신이 회피한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위험합니다. 이 나라의 가장 똑똑하고 밝은 수천 명의 인재가 외국의 문제나 낯선 아픔을 위로 하는 동안 국내에도 수 많은 문제가 산적 해 있습니다.
CZ Nnaemeka는 에세이에서 (젊은 사회 개발가들에게) 가치가 없는, 싱글맘, 재향 군인, 그리고 노인과 같은 미국인들을 "특별하지 않은 하층"이라고 일컫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하층은 많은 문제에 직면 해 있습니다. 국제 무대에서 관심을 받는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그래도 그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변함 없습니다."
국내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손길이 필요하지만 언제나 무시 되고 있습니다. 이건 사회 분위기도 한 몫 하죠. 국제 개발 문제에 대한 공상을 펼치는 사람이 페이스 북에서 받는 라이크 숫자는, 예를 들자면, 인디아나폴리스의 노숙자 문제에 매달려 있는 사람 보다 월등할 겁니다. 하나는 멋져 보이고 하나는 일상 생활 속 우리가 길을 걸으면서 무시하고 지나치는 것들을 상기 시키니까요.
자신이 주위에서 보고 겪고 함께 자라온 문제에 뛰어 드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 입니다. 대부분의 미국 아이들은 완전하게 온실 속의 화초로 자라지 않은 이상 대량 수감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인구 대비 수감자 비율이 높습니다.) 문제가 얼마나 복잡하고 속에 얼마나 다양한 이슈가 얽혀 있는지 어느 정도는 감을 잡고 있을 겁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 하려는 선택을 하는 것은 아주 긴 배움의 시간을 통해서 이 나라의 역겨운 부분들을 직시 하는 것을 선택하는 일 입니다. 그것은 형량 개선을 공부하고, 감옥 민영화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의미 합니다. 또 갱생이나 피해자 보상에 대한 것을 공부 하는 것을 의미 합니다. 그리고 공부 한 모든 것에서 종합하여 해법이 있는 방향을 찾고 꾸준히 나아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요즘 존경 하는 사회 운동가, 기업가, 조직자들은 그런 투자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 입니다. 그들을 보면 이상에 대한 절제를 가지고 구조적 복잡성을 띈 문제에 항상 끌리는 것 같아요. 노숙자 문제, 신용의 접근성을 높이는 문제, 정부 효율성을 개선 시키는 문제 등 모두에게 가장 섹시 하지 않은 문제들을 다루죠.
타국에서 일한다는 것의 매력은 이해 합니다. 미국의 문제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크고 심각한 문제들을 겪고 있는 나라들이 많은 것은 틀림 없어요. 그 아름다운 사람들이 국적만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의 최고를 받지 못할 이유는 없어요. 그리고 저는 국내에만 있는 것이 저 같은 특권을 누리던 백인 아이들의 실수를 방지 하게 해준다는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해결 가능한 문제"라는 것에 사랑에 빠져서가 아니라 문제의 복잡함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나가세요.
좋은 일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려운 걸 하고 싶어서 나가세요.
얘기 하고 싶어서 나가지 말고, 듣고 싶어서 나가세요.
교환 학생 경험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몰리 멜킹 처럼 그곳에 뿌리 내릴 생각으로 가세요. 아이오와 주의 주민이었던 멜킹은 세네갈의 여성 성기훼손 문제를 해결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루에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그녀는 1974년 부터 다카르에 살면서 자신의 단체를 발전 시키고 현지 커뮤니티들이 인권 침해 문제들을 함께 해결 해 나가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녀의 일은 정교하게 잰 리스크의 순간들이 중요했습니다. 언제 현지 리더에게 문제를 제기 하고 언제 아직 신뢰 관계를 쌓지 못했기 때문에 기다릴 것인지 알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리더쉽은 6개월 현지 체험으로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더 쉬운 방법도 있습니다. 타인의 문제에서 오는 단순화 된 유혹을 이겨내고 장기적으로 국내의 문제나 구조적 문제들을 정면으로 부딪히는 겁니다. 외국으로 가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타인"이 실제 사람이 될 때 까지 귀 기울여 듣고, 또 그만큼 오래 머무르세요. 조심하세요, 보기 보다 "구원"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