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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두 대 밖에 안 때렸어요.”
게시물ID : lovestory_787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둥글이8
추천 : 3
조회수 : 72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5/19 13:31:36

“겨우 두 대 밖에 안 때렸어요.”

길바닥에서 자기를 때린 엄마를 변호하기 위해 초딩 꼬마가 출동한 경찰에게 항변한 말이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나. 오늘 오전 9시 30분 경. 사회정의를 위해 불철주야 노고

를 아끼지 않으시는 가카께 엿을 드리고 돌아오는 길. 등교시간이 훨씬 지났는데, 3학년 쯤 되

어 보이는 통통한 초딩 남자애 하나가 반쯤 흘러 내린 가방을 메고 길 한쪽에서 어기적거리고

있었다.


꼬마에게 “야 학교가기 싫지?!”라고 한마디 건네니, “네”라고 답변을 하고 난 후 갑자기 “배고

파서 못 가겠어요”라고 한다. 굶주리는 생명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빵이나 하나 사주려

고 인근 마트로 데려가고 있는 터, 저 멀리서 천지를 찢는 괴성이 들린다. 아이의 엄마였다.

괜히 유괴범으로 오해할 까봐 겸연쩍은 마음에 살짝 옆으로 떨어져 있었더니 그 엄마라는 이

가 신경질을 부리면서 아이에게 다가오더니 “선생님이 학교 왜 안오냐고 전화 왔었다.”며 버럭

화를 낸다. 그리고 이후로 말 못할 폭언이 시작되었다.


아이는 겨울 털 장화를 신고 나왔는데, 그 엄마라는 자는 “신발이 이게 뭐냐?”라며 신경질을

내는 것이다. 이에 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죄송해요”라고 말하자, “죄송해?! 뒈질래? 미친새끼

야?”라고 폭언을 쏟아 낸다. 이후로 ‘조ㅈ같은 새끼 죽여 버릴라.’ ‘어제도 그러더니 ㅅ ㅣ발놈아!’ 등

등 수도 없는 욕설을 쏟아 냈다. 아이는 평소 많이 맞아봤는지 몹시 두려운 표정으로 몸을 비

스듬히 틀어 움츠린 자세로 어미의 눈치를 본다. 철천지 원수에게나 할 만한 저주들이 쉴새

없이 뿜어져 나오던 터, 갑자기 ‘짝’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잠시 후 또 한 차례 같은 소리가 울

린다. 저주만 퍼붓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은지 아이의 머리를 후려 갈긴 것이다.


백주 대낮에 사람 지나다니는 길 한가운데에서도 이럴진데, 남이 안보는 집안에서는 어떨까

상상이 안 될 정도였다. 계속 보고 있자니 화가 나서 “아줌마 적당히 하시죠.”라고 한마디 했

다. 그러자 그 어미라는 자는 눈을 부라리며 뒤돌아보더니 대뜸 “뭔 상관야? 존내 씨발!”이라

고 욕설을 내뱉는 것이다.


‘내 자식 내가 학대하는데 왜 지나가는 놈이 참견이냐?’는 거다. 하여 내 삶의 베스트 프랜이

자 최고의 조력자이며, 그 존재가 없었으면 내 인생이 몹시 심심했을 뻔 했던 ‘경찰서’에 아동

학대 신고전화를 했다.


이렇자. 그 어미라는 이는 갑자기 아이에 대한 표정이 온화해 지더니 “너는 저렇게 남의 일에

참견하면서 오지랖 넓으면 안 된다.”며 아이를 보듬고 달래기 시작하는 것이다. 방금 전까지

언제 엄마의 손이 날아올지 모를 불안으로 공포에 떨던 아이는 엄마의 따스한 말투와 손길에

마음을 놓고 온전히 엄마편이 되어갔다.


잠시 후 경찰이 출동했고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말하는 사이. 아이는 난데없이 그 사이를 끼어

들더니 “엄마가 겨우 두 대 밖에 안 때렸어요. 왜 그러세요!”라며 화를 버럭 낸다.


구멍 나 가라앉는 배를 버리지 못하고 부여잡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무엇하나 의지할 바 없는

망망대해에 던져진 가녀린 존재의 필연적 본능이리라. 그 아이에게 자신을 학대하는 엄마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이 기댈 수 있는 벽이었던 것이다.


엄마 역시 ‘자기 아이를 겨우 두 대 때린 것’ 가지고 경찰에 신고해서 이 소란을 피우는 나의

행태에 대해 분개해서 ‘씨발’ 거렸고, 출동한 경찰들은 내가 하는 얘기를 다 들어볼 생각도 않

고 ‘사이가 좋은 모자’의 모습에 ‘별일 아닌 헤프닝’으로 판단해 ‘알아서 처리하겠다.’며 나를 보

내려 했다. 이 상황이 흐지브지 끝나면 아이는 내일부터는 또 똑같은 상황을 맞아야 하는 것

이 뻔했다. 하여 출동한 경찰에게 인상을 쓰면서 “내가 경찰서에 개사료 뿌린 사람인데요...”

라며 ‘대충 끝내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협박성 발언을 건넸다.


물론 그 경찰들이 흐지브지 사안을 끝내려 했던 것은 아닐 텐데, 출동한 경찰들에게 초면에

과하게 말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 어미라는 이가 온갖 저주를 뿜어 낼 당시 아이가 맞을

까봐 두려워 떠는 모습을 봤다면... 또한 경찰이 출동하니 그 어미의 간교한 계략으로 누구보

다도 다정한 모자관계로 돌변해 있는 상황을 봤다면 누구라도 나처럼 경찰을 물고 늘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여간 그렇게 강하게 항의하자 출동 경찰은 ‘청소년과’ 경찰 연락처를 알

려줬고, 직접 통화하여 곧 그들이 출동했다.


하지만 이 사건이 현장에서 피 튀기는 그것이 아니어서 경찰 입장에서는 딱히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이는 듯 했다. 담당 경찰은 아동상담전문가에게 의뢰해서 아이의 정황을 파

악해 보는 것 밖에 없다고 귀뜸 해 줬다. 그래서 나중에 아동상담 전문가로부터 이후의 상황

에 대해 통화 할 수 있게끔 해달라고 요청을 하고 마무리 할 수 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 내내 그 어미라는 이의 얼굴이 떠올려졌다. 맞을까봐 두려워서 움츠린 아이의 얼

굴보다는 왠일인지 그 어미의 얼굴이 더 떠올려졌다. 아이를 학대하는 모습을 보다 못해 “아줌

마 적당히 하시죠.”라고 한마디 했을 때, 눈을 부라리며 나를 뒤돌아보며 욕하던 그 표정... 이

제 30대 후반이나 되어 보임에도, 삶의 모든 피로와 분노, 상실, 증오와 자괴가 송두리째 담겨

있는 듯 한 인생에 지칠대로 지친 그 얼굴... 그 얼굴 역시 이미 그녀 부모의 삶이 그녀에게

만들어준 것임이 틀림 없었기에 과연 누구에게 죄를 물을 수 있겠는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

고, 다시 그 가해자는 새로운 피해자를 양산해 내는 가정폭력의 악순환.


그 어미라는 이에게 동정과 분노가 함께 일어나는 이 묘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내가 사는

동네로 앞으로도 그 아이가 매일 지나 갈 모습에... 그리고 나는 그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현실에 찹찹한 회한이 밀려온다. 더군다나 이 사회에 그러한 아이는 차고 넘쳐나는

현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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