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하면 상을 주고 잘못하면 벌을 준다는 게 인과응보예요. 모든 자연신앙에는 인과응보 사상이 있습니다. 유럽도 그렇고, 인도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한국도 그래요. 가장 대표적인 표현이 ‘천벌 받을 거다’라는 말이죠.
불교의 인연과보는 그런 징벌적 사고가 아니라 원인과 결과의 관계입니다. 쉽게 말하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거예요. 가치관이 개입된 게 아니에요. 콩을 심어야 콩이 나지, 애초에 콩을 안 심었는데 콩이 날 수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그것을 왜 ‘인연과보’라고 할까요? 흔히 ‘인과’라고 하지만 정확히는 ‘인연과보’예요. 왜 ‘인(因)’이 아니라 ‘인연(因緣)’일까요?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는 건 인과예요. 그런데 콩을 심었지만 콩이 안 날 수도 있어요. 땅이 건조하거나 흙의 온도가 낮으면 싹이 안 납니다. 그런 밭의 조건을 ‘연(緣)’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만 갖고 되는 게 아니라 인연이 만나야 과보가 생기는 거예요.
인을 직접적 원인, 연을 간접적 원인이라고 합니다. 이 원리는 환경을 중요시합니다. ‘인과’라고 하면 환경을 무시해요. '인연과보’라고 하면 인연이 만나야, 즉 인연이 맞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씨앗과 환경 조건이 같이 결합해야 하기 때문에 ‘인연’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걸 가치관적으로 접근해서 ‘좋은 일을 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난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내가 좋은 일을 해도 환경에 따라 좋은 결과가 날 수도 있고 나쁜 결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나쁜 짓을 했다고 반드시 나쁜 결과가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조건에서 나쁜 짓을 했느냐에 따라서 우연찮게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어요.
의도와 결과는 이처럼 조건이 어떠냐, 어떤 환경에서 작용했느냐에 따라 네 가지 종류로 나타납니다. 의도가 좋았는데 결과도 좋을 수 있고, 의도가 좋았는데 결과는 나쁠 수도 있고, 의도는 별로 안 좋았는데 결과는 좋을 수도 있고, 의도가 별로 안 좋았는데 결과 역시 나쁠 수도 있습니다. 인과응보와는 달라요. 인과응보는 의도가 좋으면 결과가 좋고 의도가 나쁘면 결과가 나쁘다는 이야기예요.
5.16 쿠데타를 일으킨 건 헌정질서를 문란시킨 것이니 처음부터 법률적으로 잘못된 거예요. 그런데 이걸 잘 됐다고 말하면 앞으로 누구든지 쿠데타를 일으켜도 된다는 뜻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니 결과가 좋았다고 해서 원인을 미화하면 안 돼요. 그런데 그 결과로 산업화에 성공한 건 사실이에요. 원인이 잘못됐다고 결과가 다 잘못됐다고 말해도 안 되고, 결과가 좋다고 원인이 다 좋다고 말해도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