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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군의 급여 (3) 공화정 시기
게시물ID : history_78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etraisol
추천 : 6
조회수 : 142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2/28 00:02:06



가이우스 그라쿠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2차 포에니 전쟁 이래 군인들의 연봉은 사실상 동결되었는데 수에토니우스의 기록에 의거한다면 카이사르가 군단병들에게 봉급을 영구히 두 배로 증가 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다만 여기서 인상 전의 연봉이 정확히 얼마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2차 포에니 전쟁 이후 데나리우스 체제가 도입되면서 지속적으로 동화의 가치 하락이 이어진것에 근거합니다. 1차 포에니 전쟁 시기만 하더라 아스의 무게는 2 온스였지만 동맹시 전쟁기에는 그 절반에 해당했습니다. 이에 따라 더이상 1데나리우스는 10아스가 될수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데플리니우스가 동화의 재평가를 언급한 발언을 할때 나온 그럼에도 군인은 10온스를 1데나리우스로 받았다는 말입니다.


사실상 16아스가 1데나리우스였던 현실에서 이는 봉급 삭감으로 이어지는 말이었고 이에 따라 발생할 온갖 문제에 대한 예방책으로 군인에게만 10온스 = 1데나리우스 계산법을 적용시켰습니다.


다만 이러한 특별한 계산법은 기원후 14년 파노니아에서 벌어진 페르케니우스의 반란 당시 그 들의 요구 조건중 하나였던 일당 10 아스를 1 데나리우스로 인상시켜줄것을 본다면 사실상 아우구스투스 시기 이전에 이미 더 이상 통용되지 않았던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는 16아스를 언제부터 1데나리우스로 계산하여 군인들에게도 지급하기 시작했냐 일것입니다.


2차 포에니 전쟁 시절부터 카이사르가 집권한 시기까지 군인들의 봉급을 만진 사람은 오직 카이사르 뿐입니다. 


물론 가이우스 그라쿠스도 봉급에 관련된 정책을 펼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디까지나 의복비를 공제하지 않기로 하는 즉 국가에서 의복비를 지급하도록 하는 간접적인 법을 제정했는데 이는 삭감된 봉급을 보전하기 위한 정책으로 파악해볼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봉급을 인상하고, 또 식량도 무료로 제공하였습니다. 이렇게 별개로 행하여진 정책으로 볼 때 의식주 중 일부를 혹은 전부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은 봉급 인상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즉 가이우스는 봉급의 액수나 계산 방법을 다룬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공제 부분에만 손을 댄 것이며 봉급 자체를 인상한 카이사르가 봉급의 계산 방법을 변경하였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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