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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공부중 - 14
게시물ID : history_78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구이일
추천 : 0
조회수 : 70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2/26 23:24:58

오늘 졸업식을 마치고 와서 바로 시작하려니 약간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집중하는데 많이 힘들었네요 ㅎ


이제 드디어 고려시대의 마지막 문화에 대해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고려를 공부했을 때, 권력을 유지하던 세력을 기준으로 공부를 하였는데,


이번 문화 파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에 호족이라 칭한곳이 잘못되었다고 댓글이 들어와서 편의상 다시 정의했습니다.


고려를 건국하는데 일조한 호족이나 문벌귀족이 같은 세력이지만 시기상 잠시 구분하였습니다.


고려건국세력이자 신라시대의 호족 및 6두품 세력 -> 편의상 호족


이후 호족세력의 변모한 문벌귀족


1170년의 무신의 난 이후 무신


몽골의 침략으로 무신시대가 무너지고 원에 빌붙어 성장한 권문세족 및 말기의 신진사대부


이렇게 분류를 하겠습니다.


고려 초기에는 이전에 신라가 불교의 국가인 만큼 불교의 세력이 강하였고,


유교는 비교적 약세였습니다.


그래도, 유교는 나라에서 권장을 하고 국가가 지배하기에 용이한 학문인 만큼 많은 지원을 하고 수용을 하였습니다.


초기 호족세력(신라초기)시기에는 광종의 피의 숙청을 한 이후에 성종시기에 많은 지원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유학자로는 최치원의 후손인 최승로가 시무 28조를 성종에게 제안하였고,


성종은 이를 받아들입니다. 이 시기는 고려 건국 초기이므로 비교적으로 자주적이고 진취적이며, 고구려 계승의식이 강했습니다.


이때 최승로는 유교의 중요성을 말하며 불교를 비판하였습니다. <- 부정이 아니라 비판입니다..


그리고 유학을 장려하기 위해서 국가에서 국자감을 설치하였으며,


국자감에는 유학을 공부하는 유학부와 기술을 공부하는 기술학부가 있으며


유학부는 7품이상의 관리 자제들이 들어갈 수 있었고, 기술학부는 8품이하의 관리 자제들이 입학하였습니다.


이 시기가 지나고 문벌귀족 시기가 되자,


나라는 점차 안정화 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지배세력의 성격이 사대적이고 보수적이며 신라계승의식이 비교적강하였습니다.


이때 대표적인 유학자로는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과 사학을 융성하게한 최충이 있습니다.


이 시기에 관직을 얻기위해 과거시험을 볼 경우, 시험의 채점자가 유명한 유학자이므로


그의 제자로 들어가는 것이 관직을 얻기 쉬웠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유명한 유학자 밑에서 공부를 하는게 좋았고 사학이 발달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사학당이 사학12도라 불렸으며, 최충이 9재학당이 잘 알려졌습니다.


사학이 발달하게 되면, 국가에 세력이 생기고 왕이 지배하기 어려워 지므로


관학진흥책을 펼치게 됩니다.


장학금과 같이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는 양현고와 훌륭한 선생을 두는 전문 7재와 같은 관학 진흥책을 펼칩니다.


이제, 문벌귀족의 시대는 끝나고 칼의 시대가 도달했습니다.


무신시대는 유학은 중요치 않았으며, 유학이 위축된 시기 였습니다.


몽골이 침략해와서 무신의 세력이 기울고 권문세족이 등장합니다.


이 권문세족은 특별한 유교적인 소양은 없었지만,


이 시기에 안향이라는 인물이 원으로부터 성리학을 소개해 들어오게 됩니다.


이 성리학은 신진사대부의 정신적인 바탕이 되어 발달하게 되는데 이제현 - 이색 - 정도전,정몽주와 같은 유학자가 이름을 떨칩니다.


또한 국학과 관련하여 국자감의 이름이 바뀌는데 충렬왕시기에 성균관으로 변하였고, 공민왕시기에 이 교육기관에서는


기술학부가 사라지고 유교만 교육하는 유교교육기관으로 변합니다.




이제 각각의 역사서에 대해서 살펴보면


호족시기에는 7대 실록과 구삼국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있었다고 하는 건 현재 전해지지는 않고 삼국사기에 언급이 되어 있음을 짐작만 합니다.


문벌귀족시기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있습니다.


이 삼국사기는 기전체로 서술이 되어있는데,


기전체는 단순하게 시기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왕을 중심으로 해서 각 시대의 주요한 신화와 인물에 대한 전기와 제도와 문물 등


다양하게 분류로 서술을 하여 시대의 특징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이러한 기전체 방식으로 서술된 삼국사기 덕분에 저희가 역사를 좀 더 알 수 있으니, 공부하는 입장에선 씁쓸하면서도 국민 입장에선 환영받는 일이네요,,


아,, 그리고 삼국사기는 사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 신라시대가 부각되었고,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는 축소되었습니다.


무신시대에는 다시 진취적인시기이므로 고구려를 재조명하여


해동 고승전과 동명왕편(고구려)이 쓰여졌습니다.


마지막 권문세족의 시기에는 일연의 삼국유사와 이승휴의 제왕운기가 있습니다.


두 서적의 공통점은 고조선과 단군에 대해서 언급이 되어있습니다.



이제 고려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인 불교에 대해서 나가겠습니다.


호족시기에는 중앙에선 태조 왕건이 남긴 훈유10조에 따라 연등회 및 팔관회 같은 행사가 있었으며, 국사 및 왕사와 같이 스승의 역할도 하였습니다.


지방은 저번에 언급한 것과 같이 향도라는 조직이 있었습니다.


고려는 신라시대에 풍수지리설과 선종을 기반으로 건국이 된 만큼


고려 초기에는 선종이 좀더 우세 하였으며, 후에는 교종이 우세하였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거란의 침입을 해와서 초조대장경이라는 불경을 만들었습니다.


문벌귀족시기에는 안정기인 만큼 선종보다 교종이 더 강세를 보였습니다.


이 시기에 대표적인 승려로 의천이라는 승려가 있었으며,


교종을 중심으로한 선종과 통합을 주장하였습니다. 이 통합은 교리를 통합한 것이 아니라 교단을 통합한 것이며,


교단만 통합하다 보니 오래가지 않고 실패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교선통합은 천태종의 기원이 됩니다.


이 교리로는 교관겸수가 있으며 교리와 깨달음을 겸해서 배우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의천은 교장이라는 불경해설서를 만듭니다.


무신시대에는 다시 교종의 시기는 가고 선종이 우세한 시기가 도래합니다.


대표적인 승려로는 지눌이 있으며, 이전 교선통합과는 반대로 선교통합을 합니다. 이때는 교리를 통합하였으며


선종의 돈오정수, 교종의 점수혜수 두 교리를 합하여 정혜쌍수라고도 합니다.


이 선교통합은 조계종의 기원이 됩니다.


이 시기에 몽골의 침략해왔을 때는 수선사를 중심으로 선종은 결사운동을 하였고, 백련결사를 중심으로 교종이 결사운동을 하였습니다.


또한, 지눌의 제자인 혜심은 유불일치설이라는 유교와 불교가 비슷한 면이 있음을 주장하였습니다.



마지만 권문세족, 신진사대부 시기에는 불교가 힘을 잃습니다.


내부에서 문제가 많아 보우라는 승려가 개혁을 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그대로 힘을 잃고 유교가 강성해지면서 유교의 국가 조선의 시대가 열립니다.




풍수지리와 관련해서는 간단합니다.


초기 호족시기에는 서경길지설이 유행하여 서경을 중심으로한 3경제도가 있었으며


문벌귀족시기에는 남경길지설이 유행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묘청이 서경천도운동을 하지만 실패합니다.




이제 문화재로 보는 고려의 과학 쪽입니다.


이 부분은 어느정도 이해하고 외우는 것밖에 답이 없네요, 사진도 같이 올리면 좋으니,, 사진 찾아서 올리겠습니다.


천문학은 고대시기와 같이 왕권 강화와 관련이 있으며, 농업을 중시하기 위해 중시되었습니다.


사천대라는 관사에서 천문을 하였고, 역법으로는 초기엔 당나라의 선명력, 후기엔 원나라의 수시력을 따랐습니다.


의학과 관련해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의학서인 향약 구급방이 있습니다.


인쇄는 우리나라가 가장 오래된 활판을 가지고 있는 만큼 자랑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목판으로는 거란 침입과 관련된 초조대장경이 있으며, 의천이 저술한 의천이 있으며, 몽골 침입때 제작한 팔만대장경이 있습니다.


이 팔만 대장경은 목판인쇄물임에도 불구하고 70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사용할 수 있도록 걸작입니다.


활판은 금속활자입니다. 몽골 침입시에 만들어진 상정고금예문이 있었다고 하지만 전해지진않습니다.


그리고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활자 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이 있습니다. 이 직지심체요절은 슬프게도 프랑스의 도서관에 있습니다.


무기관련해서는 이 시기에 드디어 화포가 나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는 화통도감에서 최무선이 화포를 제작하였습니다.


화포는 금강에서 왜를 격퇴하기 위해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재 문화재로 보는 예술 쪽입니다.


이 부분이 더 외울게 많고 어지럽습니다 ㅜㅠ


건축은 고려 전기는 주심포 양식입니다.


포라는 것은 지붕에 기둥을 받치는데 있는 동그런 판과 같은 건데, 주심포 양식을 기둥위에만 포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기둥은 배흘림이라는 중앙이 약간 불룩한 모습의 기둥입니다.


대표적인 건물로는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응전, 봉정사 극락전이 있습니다.


후기에는 다포양식이 유행하였는데, 주심포와는 다르게 포가 기둥위에만 있는 것이 아닌 여러개 있는 양식입니다.


성불사 웅진전이 대표적인 건축물입니다.


석탑은 선종이 강세여서 승탑이 유행하였을 떄는 월정사 8각 9층석탑이 있으며, 후기에는 원의 영향을 받은 경천사 10층 석탑이 있습니다.


불상은 초기에는 하남 하사창동에 철불과 관촉사 미륵에 거대불상이 있습니다. 중기에는 소조 아미타의 여래 좌상이 있습니다.


자기는 11세기엔 순청사 12세기엔 상감청자 후에는 분청사기가 유행하였습니다.


공예는 상감을 세기는 기술인 은입사 기술과 나전칠기가 발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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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들















 순청자


 상감청자


 분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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