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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物語』를 읽어보자 -아마노히호코 편-
게시물ID : history_78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카퀴벌레
추천 : 11
조회수 : 808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3/02/26 00:53:39

먼저 전에 쓴 게시글부터 정정하겠습니다.


朝鮮国由来の事

抑朝鮮国は日本つしまの国より乾に渉て海上四十八里あり渡海するみなとを釜山浦といふ此所より朝せんの都まて行程千二百六十弐里あり即大清より東へつづきたる国にして東海の濱なり北は女真おらんかいを限り南は珍島さいしう巨済の三嶋をはてとし西北は山につづき川をへだてて東南に海を

조선의 유래

조선은 일본 대마번에서 북서로 건너 해상 48리가 걸린다. 도해하는 항구를 부산포라고 한다. 이 곳에서 조선의 수도까지 1262리가 걸린다. 즉 청나라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나라로서 동쪽 바다의 해안이다. 북쪽은 여진 오랑캐에 막혀있고, 남쪽은 진도, 제주, 거제 3개의 섬을 끝으로 하며, 서북쪽은 산에 이어 강을 두고 동남으로 바다를...


라고 했는데,


朝鮮国由来の事

抑朝鮮国は日本つしまの国より乾に渉て海上四十八里あり渡海するみなとを釜山浦といふ此所より朝せんの都まて行程千二百六十里又都より大清国のさかい鴨綠江まて千弐百里あり即大清より東へつづきたる国にして東海の濱なり北は女真おらんかいを限り南は珍島さいしう巨済の三嶋をはてとし西北は山につづき川をへだてて東南に海を

조선의 유래

조선은 일본 대마번에서 북서로 건너 해상 48리가 걸린다. 도해하는 항구를 부산포라고 한다. 이 곳에서 조선의 수도까지 1260리 또한 수도에서 청나라와의 국경인 압록강까지 1200리가 걸린다. 즉 청나라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나라로서 동쪽 바다의 해안이다. 북쪽은 여진 오랑캐에 막혀있고, 남쪽은 진도, 제주, 거제 3개의 섬을 끝으로 하며, 서북쪽은 산에 이어 강을 두고 동남으로 바다를...


입니다. 어떠셨나요? 조선에 관한 짧은 지정학적 정보를 담은 글이었지만, 이 안에서 조선과 청의 국경은 압록강으로 정해져있었음과 조선의 남단이 진도, 제주, 거제로 소개되어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이번 글의 본제인 아메노히호코에 대한 기술에 대하여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한반도와 일본열도와의 교류는 선사시대부터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나긴 교류의 역사에 대해 1750년에 쓰여진 『朝鮮物語』에서는 어떻게 그 시작을 말하고 있었을까요.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맨 윗사진 왼쪽에서 두번째 줄부터 가도록 하겠습니다.

(일러두기: 제가 활자로 쓰는 것은 가나의 경우 모두 현대 일본어의 히라가나로 통일하였습니다. 또한 같은 글자가 반복될 때 사용하는 오도리지의 경우도 히라가나로 썼습니다)


朝鮮より日本へ始て来朝之事 

和朝の人皇十一代垂仁天皇そく位三年

조선에서 일본으로 처음 내조(来朝)한 일

화조(和朝) 인황(人皇) 11대 스이닌천황 즉위 3년


제목이 '조선에서 일본으로 처음 내조한 일'이라고 되어있습니다.

'내조'란 글자대로면 '조정에 오다'라는 뜻인데, 보통으로는 '조공을 바치러 오다'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의 시작을 조공을 통한 상하관계로 파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화조'란 '일본 조정'이란 뜻입니다. '화(和)'는 일본을 뜻하며, 현재도 일영(日英)사전이나 영일(英日)사전을 화영(和英)사전 영화(英化)사전 등으로 쓰고 있습니다(참고로 일본에 대하여 본조(本朝)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였는데, 로날드 토비 등에 의하면 당시 일본인의 세계관은 일본을 가르키는 본조, 중국과 주변국을 가리키는 진단(震旦, 조선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인도와 유럽 등 중국 넘어의 세계를 가리키는 천축(天竺)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다음으로 인황이란 고사기나 일본서기의 신대(神代), 즉 건국신화에 관련된 신화에 관련된 부분 이후에 등장하는 인간으로서의 천황을 말합니다. 진무천황을 인황 1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이닌천황 즉위 3년은 기원전 27년이네요.


다음 장은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 그림의 내용은 이 파트의 내용을 읽다보면 유추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新羅国の王子天の日槍といふものはしめて

来てうして羽太玉足高玉鵜鹿玉鹿赤

石出石小刀出石利日真鏡熊神右八

品を朝貢す天皇これを但馬国におさめ

置給ふそれより日槍は近江国におもむき

あなむらといふところにしばらく住居せり

後には但じまの国へきたり住所をさだめ

同国いつしの太耳といふもののむすめを

めとりてたじまの諸助をうむもろすけ

がひまご田道間守といふもの同天皇の

신라의 왕자 아마노히호코(天の日槍)라는 자 처음으로
내조하여 羽太玉, 足高玉, 鵜鹿玉, 鹿赤
石, 出石小刀, 出石利桙, 日真鏡, 熊神籬 위의 8
물건을 조공했다. 천황 이를 다지마노구니에 두
셨다. 그로부터 히호코는 오미노구니에 향하여
아나무라라는 곳에 잠시 거주했다.
후에는 다지마노구니에 왔다. 주거를 정하여
다지마노구니 이쓰시의 후토미미라는 자의 딸을
부인으로 얻어 다지마노모로스케를 낳았다. 모로스케
의 증손자 다지마모리라는 자 스이닌천황의

이번 글의 주인공 '아마노히호코'가 등장했습니다. 고사기나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신라계 인물로 실재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신라의 왕자라고 되어있으며 (아마 다음에 쓰게 될)진구황후(神功皇后)의 조상이라 합니다. 
이 아마노히호코가 일본에 가져온 물건을 보면 대개 구슬, 칼, 거울 등 제사에 관련된 물건들이란 점이 흥미롭습니다.
또한 분명히 아마노히호코가 스이닌천황에게 이 물건들을 '조공'했다고 하여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를 조공관계로 보고 있었음을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다지마노구니란 현재 효고현의 북부, 오미노구니란 현재 시가현에 각각 해당됩니다.
요약하자면 신라왕자 아마노히호코가 스이닌천황 때에 일본으로 넘어와 조공을 바치고 효고현 북부에 정착하여 결혼하고 애까지 낳았다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페이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九十年の春ちょくをうけてしんらこくにいたり

たちばなの木をとつてきてうしてこれを

日本にうゆるこれ橘を和朝にうゆる始め

なりその子孫いまに但じまの国にあり

とかやまた近江国はざまのやきもの

しはこのひほこかめしつかいのもののすへ

なり此王子ひほこが日本へきたる事朝鮮

より和朝へ来朝のはじめなり

90년 봄 칙(勅)을 받아 신라에 이르러

귤 나무를 가지고 귀조(帰朝)하여 이것을

일본에 심었다. 이것 귤을 일본에 심는 첫

일이다. 그 자손 현재 다지마노구니에 있다

한다. 또 오미노구니 하자마의 도

공은 이 히호코의 하인의 후손

이다. 이 왕자 히호코가 일본에 온 일 조선

으로부터 일본에 내조하는 시작이다.


스이닌천황 즉위 90년 천황의 명령으로 히호코의 아들(다지마노 모로스케)의 증손자인 다지마모리가 조상님의 땅인 신라로 돌아가서 귤 나무를 가져왔다고 하네요. 이 다지마모리의 경우 현재는 과자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이 다지마모리라는 이름이 굉장히 재미있는데요, 지명 다지마노구니(但馬国)의 다지마(但馬)와 인명 다지마모리(田道間守)의 다지마(田道間)가 같은 음으로 겹쳐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아가서 인명 다지마모리(田道間守)란 '다지마의 수장'이란 뜻의 (但馬守)와도 같은 음입니다. 신라계 도래인의 후손이 효고현 북부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것만은 유추해 볼 수 있겠네요. 또한 일본어로 귤을 뜻하는 '다치바나(橘・たちばな)'는 '다지마바나(田道間花, 다지마 꽃)'에서 왔다는 '썰'도 있으니 참고하시길...

다시 본제로 돌아와 구체적으로 그 후손이 현재(1750)년에도 효고현 북부와 시가현에 살고 있다는 서술을 통해 위의 이야기에 사실성을 부여하고 있네요. 진짜인지는 모릅니다. 그냥 풍문이겠죠 ㅎㅎ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신라왕자 아마노히호코가 일본에 온 것은 내조(조공하러 오는 일)였다고 쓰고 있습니다. 또한 '조선으로부터 일본에 내조하는 시작'이란 서술에선 아마노히호코에서 시작된 내조가 지금(1750)년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소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는 과연 무엇을 보고 1750년 현재에도 조선은 일본에 내조하고 있다고 보고 있을까요?

그것은 1748년 조선통신사를 내조하는 사신들 즉 조공사신으로 본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조선통신사에 관한 일본인의 시선에 대한 글은 기회가 있으면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애초에 이 책도 1748년 조선통신사의 방일로 높아진 조선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이 반영된 결과 제작된 것이겠지요. 



자 여기까지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60년전인 1750년의 일본인들의 조선에 관한 인식, 어떠셨는지요 ㅎㅎ

부족한 실력이지만 다음에는 '진구황후(神功皇后)'에 관한 서술에 대해 써볼까 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뵈요~

(이제 삽화의 내용을 아시겠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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