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냈다. 평균수명은 OECD 평균을 넘어섰고, 지난 50년 동안 가장 빠르게 그리고 크게 수명이 증가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OECD 평균의 1/3에도 못미치는 보건의료인력과 OECD 평균의 60%에 불과한 의료비로 그런 성과를 만들어냈다.
더욱이 수술을 기다리기 위해 평균 4달 이상 기다려야 하는 선진국들이 즐비한데 우리나라 국민들은 아무 때나 전문의의 진료와 수술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정부는 늘 자랑해왔다. 우리나라 의료제도와 건강보험제도는 금메달감이며 세계에 내놓로 자랑할 만한 제도라고.
그런데 과연 금메달감이 맞을까?
우리나라 국민의 의료이용량은 OECD 평균의 2배이다. 연간 외래 진료일수도 2배이고, 연간 입원일수도 2배다. 그렇다면 의료비 사용액도 2배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의료비 사용액은 OECD 평균의 60%에 불과하다. 이것은 ‘엄청나게’ 저렴한 의료수가, 정확히는 건강보험수가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 보험수가는 원가의 약 70%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보니 병원은 손실을 줄이고 이익을 늘이기 위해 각종 편법을 동원해야 한다.
첫 번째 사용하는 편법은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다. 앞서 전술한 대로 우리나라 보건의료인력은 OECD 평균의 1/3에 못미친다. 의료이용률은 2배인데 인력은 1/3에도 못미치니 단순계산으로는 보건의료인력의 노동강도가 OECD 평균의 6배인 셈이다. 진료가 안전할 리 없다. 게다가 의사 인력을 줄이기 위해 간호사 혹은 심지어 무자격자에게 의사의 업무를 하도록 한다. 역시 위험한 진료를 양산한다.
두 번째 사용하는 편법은 박리다매다. 대형병원이나 동네의원이나 할 것 없이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정확한 진료를 위해 필요한 최소진료시간은 15분이며 경우에 따라 30분 이상의 진료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2시간 대기 3분 진료는 이미 보편화되어 있고 1분 이내의 진료를 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심지어 3명의 환자가 동시에 진료를 받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이것은 진료시간이나 진료의 질을 평가하지 않고 진료 단위당 값싼 진료비를 지불하는 제도가 만들어내고 있는 비극이다. 박리다매 진료는 불성실 진료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오진이 발생하는 경우 곧바로 환자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세 번째 사용하는 편법은 비급여 진료의 확대다. 보험이 되는 진료를 하는 경우 보험수가가 원가의 70%에 불과하니 할수록 손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컨대 대형병원의 신생아 중환자실의 경우 병상 하나당 연간 1억원 가까운 손실이 발생한다. 중환자실 보험수가의 원가보전율은 50%, 응급실의 경우 원가보전율은 40~80%에 불과하다. 병원은 이렇게 발생하는 손실을 보험이 해당하지 않는 비급여 진료를 확대함으로써 메꿔야 한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MRI 등 고가검사, 로봇수술 등 고가시술, 그리고 상급병실료와 선택진료비 등 각종 비급여 진료항목을 늘림으로써 보험진료를 통해 발생하는 손실을 보충한다.
이 비급여 진료의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병원은 환자로부터 받거나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거나 진료에 대한 적정 대가를 받으면 그만이지만, 건강보험공단 즉 정부는 진료원가의 70%만 지급하고 부족한 부분은 환자로부터 받으라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그런데 건강보험공단이 지불하는 항목 즉 보험이 해당되는 급여항목의 환자측 부담률은 입원의 경우 5~20%에 불과하지만 보험이 해당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의 환자 부담률은 100%이다. 즉, 보험수가가 낮을수록 병원은 환자에게 비급여 부담을 가중시키므로 환자의 총 치료비 부담은 오히려 증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의료비를 내느라 가정이 재정파탄에 빠지는 가구발생비율 즉 재난적 의료비발생률이 우리나라가 34개 OECD 국가 중 단연 1위인 것이다. 즉, 정부는 싼값에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는 듯 홍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환자가 지출하는 의료비가 적지 않은 것이다. 다른 OECD 국가들은 환자의 의료비를 정부가 부담하지만, 우리나라는 개인의 호주머니에서 지출하도록 한다.
결국 의료비 부담이 염려되는 국민들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다. 현재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사람의 숫자는 2,900만명이 넘어섰다. 이 수치는 가입대상이 되지 않는 노인과 어린이 그리고 학생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국민이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것을 의미하며, 공보험에 지출하는 보험료 외에 이중지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대다수 국민은 이 이중지출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세금처럼 빠져나가는 건강보험료와 달리 민간의료보험은 보험사의 홍보에 속아서 가입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내게 큰 이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손대지 않고 코를 푸는 격이다. 국민으로부터 조금만 걷고, 의료기관에는 조금만 지불하며 부족한 부분은 국민이 내도록 하고 불안하면 보험에 들라는 식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큰 함정이 있다.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의 사업비는 공보험의 7배 이상 소요된다. 그 이유는 광고비, 모집수당, 회사이익 등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즉 국민의 입장에서는 공보험 보험료를 올리는 것보다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훨씬 손해라는 의미다. 그러나 정부측 입장에서는 국민이 속는 것이 편하다. 적정 보험료를 걷기 위해 건강보험료를 인상하려면 국민적 저항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민간보험료가 더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오히려 이익이라는 대국민 설득도 정부에게는 귀찮고 위험한 일이기에 굳이 하려들지 않는다.
최근 일회용 내시경포셉을 병의원에서 재사용하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기자는 맹렬히 의사들을 비난했지만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는 취재하지 않았다. 일회용 내시경포셉을 병의원에서 재사용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시술비용은 8,620원인데 일회용 내시경포셉의 가격은 23,000원이기 때문이다. 손해나는 시술을 누가 하겠는가. 이것이 값싼 의료를 강요하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의 실체다.
이제 바뀔 때가 되었다. 국민은 싼고 저질스러운 의료보다 적절한 비용에 양질의 의료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정부가 국민을 속일 수 있었던 것은 의사들이 잘못된 제도에 저항하기보다 침묵하며 편법을 찾아 불합리한 제도를 버텨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의사들도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는 37년이나 된 비정상적인 건강보험제도를 국민과 정부 그리고 의료계가 함께 바로잡을 때가 된 것이다. 의사들은 국민에게 비정상적인 건강보험제도의 실체를 알리고 이것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정부는 비정상적인 건강보험제도를 정상화시키려는 의사들의 노력에 동참해야 할 것이며 정부가 이를 외면하는 경우 전에 없던 사상최대의 의료대란을 반드시 겪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