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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가루와 온갖 물방울들은 너를 위해서 계절을 연주하곤 해 (BGM)
게시물ID : lovestory_781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글봇
추천 : 13
조회수 : 97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3/31 00: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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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 뒤집어쓴 매화나무 마른 가지가

부르르 몸을 흔듭니다


눈물겹습니다.


머지않아

꽃을 피우겠다는 뜻이겠지요

사랑은 이렇게 더디 오는 것이겠지요.




안도현 / 겨울 편지











내 사랑은 소나기였으나

당신의 사랑은 가랑비였습니다

내 사랑은 폭풍이었으나

당신의 사랑은 산들바람이었습니다.


그땐 몰랐었지요

한때의 소나긴 피하면 되나

가랑비는 피할 수 없음을.


한때의 폭풍 비야 비켜가면 그뿐

산들바람은 비켜갈 수 없음을.




이정하 / 사랑의 우화











처음 마주치는 순간

너는 큰 강이 되어 나에게 흐르고

나의 마음을 가로질렀다


하는 수 없지,

차마 건널 수 없어 평생을 너의 강변에 걸터앉아

네가 마르기를 기다릴밖에.




서덕준 / 마르지 않는 강











견우직녀도 이 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땅에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번 해 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에 나눠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 밤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도종환 /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바람으로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고정희 /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中에서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 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었어.


가시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




김승희 / 장미와 가시 中애서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였다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그림이 되지 않으면

절벽으로 기어올라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 하나를 찾기 위해

눈 속 깊은 곳으로 어두운 화산을 내려보내곤 하였다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

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김경주 / 외계











참으로 슬퍼할 일 너무 많아도

이제 울지 않기로 하자

한 세상 울다 보면

어찌 눈물이야 부족할 리 있겠느냐만

이제 가만가만 가슴 다독이며

하늘 끝 맴돌다 온 바람 소리에

눈 멀기로 하자.


이 가을,

자신에게 너무 혹독하게

다그치지 않기로 하자


아니야

아니야, 라고 말하지 않기로 하자.




박영 / 하늘로 가는 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임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 / 선운사에서











여자에게 버림 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김용택 / 선운사 동백꽃











모든 빛은 전부 네게로 향하고

꽃가루와 온갖 물방울들은 너를 위해서 계절을 연주하곤 해

모든 비와 강물은 너에게 흐르고 구름이 되고

다시금 나를 적시는 비로 내려와


모든 꽃잎과 들풀, 그리고 은빛과 금빛의 오로라는

세상이 너를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빛깔이야

밤이면 네가 하늘을 잔뜩 수놓는 바람에 나는 아득하여

정신을 잃곤 하지


아,


세상에 너는 참 많기도 하다.




서덕준 / 세상의 빛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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