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내 발소리마저 당신이 아닐까 뒤를 돌아보던 적이 있다. 당신이 지나가던 곳을 걷고 목소리라도 들릴까 이어폰도 끼지 않고 느릿느릿 걸어보던 적이 있었어. 어느날 당신을 떠올리지 않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기로 했고 당신의 행동들이 점점 흐릿해져 가슴이 미어졌어. 아직 당신을 생각하면 아프고 경경한데 이조차 잊혀지겠지. 당신을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잃어가고 있어. 돌이 풍화하듯.
나는 종종 이상한 행동을 한다 뜬금없는 것들이어서 장난이 아니고서야 입밖으로 낼 수 없는 고민 전혀 쓸데 없는 것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 이를테면 텀블러에 차를 담아가면서 텀블러의 화상을 걱정하는 일이다 뜨겁지는 않을까 끝끝내 터져버리지는 않을까 결국 미지근한 차를 담아가는 버릇이다
당신은 멀어지면 우울해하고 가까워지는 건 두려워해서 나는 몸을 닿지 않고 입맞추는 법을 배웠어요 당신이 질려하는 이 얇은 관계는 당신이 원한 것이고 내가 숨죽여 나를 잘라낸 결과예요
아플 때 별로 나가고 싶지도 않은 약속에 나가는 나를 보면 생각이 허해진다 아 나는 오늘도 내 아픔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었구나 그렇게 억지로 웃고 집에 온 날이면 얼굴근육 언저리가 경련한다 그럼에도 그쪽같은 사람들에게 날 비웃을 기회를 주고싶지 않았다
요근래 어떤 위악으로 팔다리를 적당히 학대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관절을 움직이기가 힘듬 뿌듯한데 좀 더 격하게 자학하고 싶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나를 너무 쉽게 내려놓는다 내 말엔 논리가 없으며 당신이 이 허공을 더듬는 말들을 들어주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오늘도 읽어주어서 고마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