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독립운동사에서 무력항쟁의 기수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가장 조직적으로, 가장 지구력있게 가장 열렬하게 그리고 타협없이 독립운동을 전개한 한 사람을 들라고 한다면
나 도올은 서슴치 않고 저 밀양사람 약산 김원봉을 들겠다."
- 도올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신 분들의 후손들은 지금 상상도 할 수없을 만큼의 어려움을 겪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반대로 나라를 팔아먹고 민족 정기를 훼손하려 했던 자들의 자손들은 이 땅의 로열층이 되어 지금도 기름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만약에 다시한번 이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우리는 우리의 자식들, 가족들 누구에게 이 나라를 위해 나가 싸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저도 못합니다.
김원봉은 뜨거운 사람이었고, 무거운 사람이었고 잊혀진 사람이었습니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그 사람 이름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아무리 역사가 승리의 역사만 기록한다 해도, 설령 독립운동의 역사가 완전한 승리의 역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김원봉에 대한 남북의 태도는지극히 정치적이면서 모순적입니다.
김원봉은 이데올로기를 선택하지 않았구요 김원봉은 오직 내 조국의 해방, 그 하나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사람입니다.'
- 팟케스트 방송 이이제이 29회 약산 김원봉편 중에서
안중근 의사, 윤봉길의사, 백범 김구 선생님은 알았어도 약산 김원봉 선생님은 전혀 몰랐습니다.
독립운동 당시 사회주의자들과 손을 잡고, 추후에 친히 월북했다는 이유만으로 아주 의도적으로
우리 역사 교육에서 약산 김원봉을 지우는 작업을 해왔던 것입니다.
도올이 어째서 백범 김구의 임시정부활동과 한인애국단의 무력 항쟁보다도
약산 김원봉과 그가 조직한 의열단의 무력 항쟁을 높히 평가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이제 약산 김원봉에게 지워진 빨갱이의 낙인을 지우고 그의 업적을 올바르게 재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