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쑥 차 한 잔
게시물ID : lovestory_780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천재영
추천 : 2
조회수 : 43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3/19 10:53:23
쑥 차 한 잔
 

어릴 적에 우리 형제는
할머니 손을 잡고 뒷산으로
쑥 캐러 다니던 추억이 있습니다.
 

마차를 타고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우리 어머니 선을 보러 갔다가 오는 길에
잠깐 졸음 조시다가 마차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나서
허리를 다친 할머니를 허리 굽은 꼬부랑 할머니라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굽은 허리로 뒷산에 쑥을 캐고
나물을 캐서 우리들에게 된장국을 끓여 주셨습니다.
 

그 때는 쑥의 쓴 맛과 쑥 냄새가 싫다며
떡을 만들어 먹자고 하기도 했었다고
어느 날 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요즈음 아내가 끓여 주는 진한 쑥차를 통하여
쑥의 향기를 맡으면서 옛날의 남다른 향수
할머니 생각하며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저의 기억 속에는 늘 할머니가
제일 먼저이고 할머니의 말씀이
요즈음은 특히 귓가를 맴돕니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저희 형제를
홀로되신 할머니가 키워 주셨거든요.
 

그 때 연세는 육십도 되지 않았지만
허리가 굽은 누가 보아도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는 학교를 다니지 않았지만
옛날 할머니의 어른 부모님들에게 배운
것을 우리 형제에게 늘 가르쳐 주셨습니다.
 

가진 것이 없다고 마음까지 가난해서는 아니 된다.
배운 것이 부족하다고 행동이 올바르지 못하면 안 된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늘 내 것이 아니니 머리에 담아두어라.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두 형제간에는 나누어 먹고 나누어 쓰며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돕고 보살피는 의로운 향제가 되라 하셨습니다.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시고 내가 직장에다니던 시절에는
한 번도 생각나지 않았고 생각할 겨를 도 없었는데
요즈음은 할머니와의 추억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도 아침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
햇빛 잘 드는 창가에 앉아 쑥차를 마시면서
그 옛날 할머니가 하시던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이제 우리 형제들은 그 옛날 할머니 연세보다 더
나이가 들었고 할머니 때 보다 살아가는 형편도
나아져서 먹고 사는 것은 걱정 되지 않습니다.
 

단지 욕심이라면 건강한 이웃들이
살아가는 만큼 우리 형제도 건강하게
자손들 재롱 보면서 살기를 희망합니다.
 

동생은 딸 자매를 두었고 사위도 보아서
그 아이들의 자식인 외손자도 보았습니다.
 

나는 아들만 하나를 두었는데
올해 늦은 봄날에 꽃들이 활짝 피었을 때
기다리던 손녀를 만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가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낳고 사십년이 지나가는
올해 봄에 새로운 자손인 손녀를 보게 된답니다.
 

아침에 창가에 앉아서 쑥차를 마시면서
지나간 날들을 돌아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우리 형제에게 할머니가 안 계셨더라면 오늘이 있었을까.
 

사십년 전 전쟁고아이고 가진 것 하나 없는
빈털터리 내가 아내를 만나지 않았다면
올봄에 손녀를 만날 수 있었을까
 

두리 뭉실하고 볼 품하나 없는 그러나 심성은 바른
세상에 하나뿐이기는 하지만 그 아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이 기쁜 기다림을 맛 볼 수 있었을까.
 

우이천을 가운데 두고 건너 마을의 사돈집에서
귀한 따님을 우리 집으로 보내 주지 않았다면
오늘의 이토록 큰 기쁨을 맛 볼 수 있었을까.
 

오늘 아침 아내가 만들어 준 쑥차 한잔이
많은 것을 기쁨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2016년 올 해도 봄이 다가기전에
들로 나가서 쑥을 캐자는 아내를 따라
할머니와의 추억도 만나고 새로운 추억도 만들 예정입니다.
쑥차 한잔이 수 십 년의 추억 속으로 안내하더니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