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의 흔들림이 있었지만 착륙은 부드러웠다.
Pantheon-U25호의 문이 열리자 제일 먼저 내린 것은 그 선장인 에블린 브라운 대령이었다. 그녀는 우주선에서 땅으로 뛰어 내리자 마자 군인답게 바로 사방을 향해 레이저 라이플을 겨누며 주변을 살폈다. 그녀를 따라 내린 제임스와 영준도 역시 무기를 사방으로 겨누며 주변을 살폈다. 제임스는 에블린의 충성스러운 부하였고, 그녀와 함께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었다. 한국인 영준은 전략에 특히 뛰어나 에블린 대신 지시를 내리는 일도 많았다. 다른 병사들이 다 내린 뒤에야 브릭즈 박사와 조종사 크리스가 두려움에 찬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내렸다.
브릭즈 박사가 손목에 달린 Info-Relayer를 보며 말했다.
"가이아(Gaia)와 대기가 거의 동일합니다."
에블린은 대답 대신 바로 앞에 있는 늪지대를 향해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다른 병사들도 따라갔지만, 브릭즈 박사가 잠시 머뭇거리다 우주선에 다시 승선하자 크리스도 뒤따라 올라탔다. 제임스가 슬쩍 뒤돌아봤지만 곧 에블린을 따라 늪지대로 따라 들어갔다.
늪지대 역시 지구와 비슷했다. 나무와 각종 식물들도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모습이었고 제일 놀라운 것은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포트랜드의 가을 저녁같이.
23세기 초반에 우주 비행 기술이 개발된 뒤로, 각 국가의 정부는 서둘러서 가이아(Gaia) 인이 살 수 있는 은하계의 행성들을 찾아내 식민지화하기 시작했다. Pantheon-U25의 승선원들은 총 45명으로, 대부분 군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의 임무는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을 찾아내서 원주민이 있으면 사살하거나 생포하고 우주선에 탑재되어 있는 seed 캐슐을 사용해서 terraforming(테라포밍: 지구(외계 행성을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지구처럼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에블린과 병사들은 앞으로 나아갔다. 제임스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20미터 전방에 움직임이 있습니다."
에블린은 역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앞으로 전진했다.
앞에는 괴생물체들이 군집해 있었는데, 그들은 마치 커다란 올챙이와도 같은 모습이었는데, 마치 개구리가 되다 만 듯, 팔과 다리도 있었다. 그렇지만 크기만큼은 매우 커서, 작은 놈들은 1.5미터 정도의 신장에서, 큰 놈들은 3미터 가까이 되는 체격이었다.
에블린이 신호하자 병사들은 순식간에 레이저 라이플로 괴생물체들을 사살했다. 그들은 반격할 기회도 갖지 못하고 괴성을 지르며 쓰러졌다.
주변에 표지판 같은 것이 있었는데, 외계어로 뭐라고 적혀 있었다.
영준이 Info-Relayer에 대고 말했다.
“크리스, 내가 지금 발신하고 있는 이 표지판 같은거 말야. 가이아(Gaia)에 보내서 해석 좀 해보라고 해.”
“응. 알겠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알지? 지난번에는 한달이나 걸렸잖아.”
“어, 해석이야 오래 걸릴 수도 있지.”
에블린이 말했다.
"이 행성의 원주민은 미개한 듯 하다. 무기도 만들지 못하는 수준이군."
제임스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답했다.
"이놈들의 몸에 흰 가루 같은 것이 묻어 있습니다."
"음... 이런 것을 몸에서 생성하는지도 모르지 뭐. 피도 흰색이잖아."
에블린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답하고는 일어서서는 남아 있는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이 행성의 원주민은 무기도 별 것 없는 것 같다. 레이저 라이플 한방이면 죽는다. 괜히 귀찮게 생포할 필요 없이 전부 없애버리자!"
제임스가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오랜만에 몸 좀 풀겠군!”
그의 이마에 있는 흉터가 빛나는 것 같았다.
그 뒤로 25일간 Pantheon-U25는 작은 행성을 점령해 나가기 시작했다. 우주선을 기지로 삼아 매일 일정 거리를 점령하고 그곳에 새로 기지를 세우는 형식이었다. 매일 수천 마리의 외계인들을 학살했는데, 그들은 지능이 뛰어나지도 않고, 무기도 없는데다, 체계도 전혀 없어서 손쉽게 학살할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체계적인 사회를 구축한 것 같이 보이지 않았다. 그 결과, 대부분 제대로 된 반격도 해보지 못하고 죽어나갔다. 건물도 대부분 지푸라기나 진흙을 뭉쳐서 만든 것들밖에는 없었다. 에블린의 말대로 그들은 미개한 외계인들이었다. 그렇지만 어디를 가나 첫 전투에서 봤던 표지판이 있었다. 이상한 점은, 이 외계인들이 언어를 알고 있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25일째 되는 날.
브릭즈 박사, 영준, 제임스, 그리고 에블린은 해부된 외계 생물체를 옆에 두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영준이 말했다.
“박사님, 이놈들 다들 크기가 제 각각이고, 모양도 약간씩 다 다르네요. 전체적으로는 비슷해 보이는데 말이죠.”
제임스가 눈썹을 들썩거리며 말했다.
“우리 가이아(Gaia)인들도 다 몸의 크기가 다르고 머리색이나 외모가 다르잖아.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좀 하라구.”
영준은 제임스를 쳐다보지 않고 외계 생물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 큰놈은 손가락이 세 개인데, 이 작은 놈은 손가락이 두 개입니다. 혹시 인간과 침팬지 정도의 다른 종(種)이 아닐까요?”
브릭즈 박사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그건 아닌 것 같네. 지구의 동물들과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다 같은 종으로 보여. 단지 발달 상태가 다른 것 같아 보이네. 어쩌면 저놈이 수컷이고 이놈이 암컷일수도. 아직 해부를 완료하지 못해서 잘은 모르겠네만 곧 알 수 있을것 같으이.”
영준이 다시 말했다.
“그리고 이놈들 몸에 묻어있는 흰 물질은 뭐죠?”
“아, 그건 지금 확인해 보고 있는 중이네. 곧 답이 나올거야.”
이때, 크리스가 방송으로 말했다.
“대령님, 아까 안개 때문에 보지 못했는데 방금 설치한 기지 전방에 무슨 건물 같은 것이 보입니다.”
에블린은 외계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일어서며 말했다.
“제임스, 탐사팀 준비해. 나가 보자. 박사님도 탐사선까지만 같이 타고 가시죠.”
영준이 Info-Relayer에 대고 크리스에게 말했다.
“크리스, 기지 잘 지키고 있어. 너 혼자 무섭지 않겠냐?”
크리스가 말했다.
“기지에 있는 나보다 탐사선에 있는 네가 더 위험할걸? 죽지나 말라고! 하하하”
외부.
크리스가 언급했던 건물에 가까워지자 건물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 행성에서 본 적이 없는 “제대로 된” 건물이었는데, 마치 거대한 아파트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앞에 철망이 있고 거기에 전투가 처음 벌어진 곳에 있던 표지판과 같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탐사팀은 철망을 찢은 후, 레이저 라이플을 조심스럽게 겨누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사람 크기만한 흰 공들이 각 층마다 몇 개씩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여 있었다.
그때였다. 에블린의 Info-Relayer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브---사입니다. – 대---님. ----십쇼!”
“뭐라고? 전혀 들리지가 않아!” 에블린이 짜증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령님! ----야 ---구요!”
에블린은 짜증난 표정으로 나가자는 손짓을 했다.
그때 영준의 Info-Relayer에서도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영준! 네가 지---에 물어본 표---!”
“크리스, 나 여기 수신상태가 좋지 않아. 탐사선으로 가서 다시 연락할게.”
그때 건물 내부가 흔들릴 정도의 진동이 느껴졌다.
에블린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모두 나가자!”
병사들은 아파트같이 생긴 건물에서 모두 나왔다. 그런데 하늘은 검은 점들로 뒤덥혀 있었다.
그때 에블린의 Info-Relayer가 다시 소리를 냈다.
“브릭즈박사입니다. 대령님! 저 놈들의 몸에 달라붙어있는 것은 양서류나 파충류의 껍질과 동일한 재질입니다! 지금까지 죽여온 놈들은 어른이 아니라 갓알을 까고 나온 외계인의 유아(幼兒)입니다!”
영준의 Info-Relayer 역시 소리를 냈다.
“영준! 표지판 해독했어! 그런데 빨리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왜? 뭔데?" 영준이 탐사선으로 뛰어가며 말했다.
크리스가 말했다.
“표지판에는 “부화장(孵化場) – 접근 금지”라고 되어 있어.”
크리스가 말을 이었다.
“우린 지금 외계인들의 아기들을 학살한거야. 내가 그들이라면 엄청 화나 있을 것 같아… 영준, 듣고 있어?”
영준은 멈춰 서서 말 없이 하늘을 쳐다봤다. 검은 점들이 조금씩 커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