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이 코앞인 가운데 기숙사 살 때가 생각나서 써봅니다.
저는 4인실에 살고 있었고, 방은 기숙사 건물 복도 끝에 별도로 지어진 별관 중 하나였습니다.
공용 화장실과 공용 샤워실도 따로 별관에 있었구요.
#. 1 ) 화장실
2학년 1학기가 되던 때 일입니다.
아직은 추위가 가시지 않았던 3월 첫째 주였습니다.
연구실에서 실험을 늦게 마치고 새벽 2시가 되어서야 기숙사로 돌아왔습니다.
너무 피곤한 마음에 세수만 하고 자려고 간단한 세면도구만 챙겨서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래서 그런지 화장실이 더욱 싸늘하게 느껴졌던 것 같았습니다.
혹시나 창문이 살짝 열려있나 싶어 확인해보니 보니 하나뿐인 중형 창문은 잘 닫혀 있었고,
그저 날이 추워서 그러려니 하고 무심하게 씻는 와중에... 화장실이 가고 싶은 겁니다. 그것도 큰 게요.
피곤해 죽겠는데 신호가 오니 빨리 끝내고 자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3개의 칸 중 바로 뒤에 있던 가운데 칸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앉아있는데.
갑자기 옆 칸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습니다.
분명히 처음 들어왔을 때 화장실 칸은 모두 열려있었고, 거울을 보면서 양치를 할 때도 칸 안에 사람은 없었어요.
사람이 너무 놀라면 얼어붙는다고 하죠? 네. 저도 그대로 얼어붙었습니다.
말씀드렸지만 창문은 닫혀있었습니다. 별관 복도 창문도 당연히 닫혀있었고,
설령 바람소리라 하더라도 입구 쪽이 아닌 벽쪽에 붙은 칸에서 소리가 난다는 건 당시 정황상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기에...
그리고 옆 칸에서 부시럭 소리가 날 만한 것은 쓰레기통 비닐봉투 뿐이었습니다.
바람이 아니라면 누가 그걸 인위적으로 손대지 않는 이상 소리가 날 일이 없을 것이고...
저는 누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을거라고 순간 생각했으나...그것도 말도 안 되는 것이, 사람이 들어오는 기척은 전혀 없었습니다.
일단 복도가 작아서 누가 들락거리면 호실 문소리가 복도에 크게 울려퍼지고 화장실까지 들립니다.
게다가 사람이라고 쳐도 누가 쓰레기통 하나를 5분 이상 계속 쉴새없이 뒤적거리고 있습니까?
너무 무서웠습니다. 볼일은 이미 다 봤는데 나가긴 나가야겠고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고...
하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끝이 없을거라는 생각에 눈 딱 감고 셋을 세며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저는 다시 얼었습니다. 소리는 여전히 크게 나는데...정작 세면대 거울에 비친 양 옆 칸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 화장실을 도망치듯 빠져나왔습니다.
뭐였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바람소리였을까요? 아니면..다른 무언가였을까요?
(그 당시 저는 가위 한 번 눌려본 적 없는 평범한 여징어였습니다. 이후 기숙사에서 처음 가위 비슷한 걸 눌려봤네요.)
#. 2 ) 머리카락
같은 학기, 룸메 동생이 겪은 일입니다.
신입생이던 룸메 동생은 2층 침대를 썼습니다.
동생이 밤에 자다가 추워서 깼다고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이불을 걷어 차고 잤나봐요.
그래서 이불을 다시 끌어덮으려고 하는데 발에 뭐가 걸리적거리더랍니다. 결이 고운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요.
머리카락 한 올... 이게 아니라 마치 발로 누군가의 머릿결을 만졌을 때나 느낄듯한....그런 감각이었다고 해요.
잠결에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발 밑에 사람 머리같은게 얼핏 보이더랍니다. 룸메 동생은 저인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시 잠들었고...
다음날 일어나서 생각해보니 상황이 이상했던겁니다.
방 불은 분명 꺼져있었고 저희들은 모두 자고 있었습니다. 그럼 그 머리카락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같이 쓰던 룸메 두 명은 각각 어깨에 채 닿지 않는 단발머리와 숏컷이었습니다.
긴머리는 저와 룸메 동생 뿐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키가 작을 뿐더러 침대가 또 높아서 밑 침대를 밟아도 그런 자세가 나오기 힘듭니다.
포니테일은 가능하지만 룸메 침대 발에 걸리적거릴 정도로 긴 머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본인 이불 감촉을 착각했을 것 같지도 않고요.
#. 3 ) 반복되는 물음
이번엔 같이 2학년이던 같은 방 룸메 친구가 겪은 일입니다.
그 친구는 스탠드를 하나 켜놓고 공부를 하고 있었고, 저희는 모두 자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조용하게 공부하는데 누가 뜬금없이
"너 허리에 상처났어???"
하고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순간 누구 잠꼬대인가 싶었는데 잠꼬대 치고는 말이 평소 말할 때처럼 음색이나 발음도 깨끗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묻는 목소리가 하이톤이고 통통 튀는 것이, 저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룸메 동생과 언니는 목소리가 중성적이고 허스키한 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친구는 하던 공부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그대로 대답을 했다고 했습니다.
"어? 뭐라고?"
"너 허리에 상처났어???"
"아니, 안 났는데 왜??"
"너 허리에 상처났어???"
마치 대답할 타이밍에 맞춰 카세트 테이프를 계속해서 반복해 돌리는 것같은 일관된 말과 목소리 톤...
그제서야 친구가 저를 돌아봤는데...
...저는 세상 모르고 쿨쿨 자고 있었답니다.
친구는 너무 무서워져서 울면서 다른 친구가 있는 다른 방으로 도망가서 밤을 보냈다고 합니다.
#. 4 ) 정체 모를 발소리
위의 룸메 친구가 겪은 일입니다. 친구가 주말에 혼자 남은 주였습니다. 그 때 밤에 자다가 한밤중에 깼다고 합니다.
그런데 침대 옆에서 발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사아악...사아악...하는...맨발로 장판 스칠 때 나는 소리요.
(저희 기숙사 장판 발소리는 쩍쩍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저렇게 스치는 소리였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는 2층에 있는 침대였습니다.)
그러면서 온 몸이 고정되어 움직이질 않았고, 옆에서 누가 자꾸 방 끝과 끝을 반복적으로 오가는 기척이 일정하게 반복되더랍니다.
친구는 누군지 내려다보고 싶었는데 또 그러기엔 너무 무서워서 그러고 싶지 않더랍니다. 그렇게 식은땀을 흘리다 기절하듯 잠들었고...
저희는 이후 종강할 때 까지 화장실도 함께 가고, 방도 가능하면 늦은 밤엔 룸메를 혼자 두지 않도록 했습니다.
#. 5 ) 아저씨
이 역시 위의 룸메 친구가 1학년 때 기숙사에서 겪은 일입니다. 왠지 이 친구 에피소드가 많네요.
룸메이트 언니랑 같이 빨래를 하러 세탁실이 있는 이웃한 건물(편의상 저희가 있었던 곳은 A, 세탁실이 있는 곳은 B라고 하겠습니다)에
빨랫거리를 들고 향했다고 합니다. 당시 시간은 1시 조금 넘었었던 걸로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A동과 B동은 건물 정면에서 보면 ㅂ모양으로, 1층과 2층이 천장을 공유하며 연결된 구조였습니다.
2층의 연결층 끝과 끝에는 서로 마주보는 대형 거울이 있어요. 이 두 사람이 도란도란 애기하면서 2층을 통해 세탁실로 가고 있는데...
무심코 거울을 보니 웬 남루한 차림의 아저씨가... 거울 속에서... 자기들을 향해 눈을 서슬 퍼렇게 부라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혼자 본 것도 아니고 언니도 그걸 같이 보고... 무서워서 소리를 지르고 빨래들도 내팽개친 채 방으로 뛰어 달려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빨래 찾으러 갔다가 소리지른 장본인들인 걸 들켜서 사감 선생님한테 혼났다고 합니다.
#. 6 ) 여학생의 죽음
신체적으로 이상이 없던 건강한 1학년 기숙사 여학생이 갑자기 응급실로 실려가더니 다음 날 죽었습니다.
당시 기숙사 스탭 업무상 사감 선생님들과 기타 관련자들과 현장에 갔었는데... 바닥에 있던 커다란 핏자국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모릅니다. 민감한 문제라서 그런지 다들 함구하는 분위기였어요.
제가 알기론 심장발작이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 7 ) 폐쇄된 방
저희 기숙사에는 어떤 방이 모종의 이유로 폐쇄되어 있습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그 방에서 여학생 하나가 목을 매어 자살했던 방이라고 합니다.
사감 선생님들도 그 방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습니다.
#. 8 ) 부상
당시 유달리 크게 다치는 학생이 많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정말 운없이, 보통이라면 그렇지 않을 일에서 다리가 부러지는 건 예사고. 수술을 들어갔다던 사람도 보았고...
그저 우연이었을까요??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뭐, 지금은 갈 일이 없습니다만.....
...쓰고보니 재미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