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대통령 선거 당시 박정희의 대항마로 신민당 대통령 후보가 된 김대중은 박정희와 공화당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공격적 공약을 제시하면서 선거전을 리드했다. 선거전이 개헌공방 독재공방 한일회담 공방으로 치러질 줄 알고 대비한 공화당과 박정희의 허를 찌른 것이다.
1969년 벽두부터 공화당의 개헌추진이 본격화 되자 신민당 유진오 총재는 “신민당은 당의 운명을 걸고 대통령삼선개헌저지투쟁을 벌이겠다”고 선언, 당내에 ‘대통령삼선개헌저지투쟁위원회’를 구성했다. 또 재야인사 및 종교계, 학계, 학생층 및 지식인들의 반대 대열과 연합투쟁 대열에도 동참했다.
1969년 6월, 공화당의 개헌추진이 본격화 되면서 서울대에서부터 개헌반대 데모가 거세게 일어났다. 그리고... 이 데모 열기는 곧 전국적으로 파급되었다. 정부는 각 대학에 조기방학령을 내리고 방학 중에 학교장의 사전승인 없이 학생집회를 금지토록 각 학교에 시달했다.
많은 대학이 정부의 방침에 따라 조기방학을 실시했다. 그러나 정국은 개헌 정국에서 한치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유진오 총재가 대통령에게 개헌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라는 공개서한을 보내자, 이 공개서한에 청와대 비서관이 대응하는 오만도 보였다. 여당은 더욱 흥분했다. 특히 9월 들어 정기국회가 개원되자 당시 공화당 의장서리를 맡고 있던 윤치영은 개헌안의 정기국회 조기처리를 공언했다.
9월 13일, 본회의에서 개헌안 표결 선포가 있자 야당 의원들이 단상을 점거했다. 공화당은 신민당 몰래 14일 새벽 2시 33분 국회 제3별관 특별위원회 회의실에서 이효상 의장의 사회로 개헌안을 처리했다. 지금 같으면 개헌안 불복으로 시청 앞은 촛불시위, 야당총재는 단식투쟁, 재야는 대선 보이콧, 종교단체는 불복미사 등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을 것이다.
여당은 이런 야당을 ‘종북’이라고 공격하고, 언론은 국민투표라는 정상적 절차를 거쳐 확정된 헌법을 야당은 승복해야 한다는 준엄한 논조로 야당과 재야를 꾸짖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 대선후보가 김대중이 아닌 다른 이였다면 이 선거전은 여당의 불법적 폭거가 선거전의 이슈였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신민당 대선후보 김대중은 정작 선거전에서 이런 박정희와 공화당의 치졸한 정치행태를 비판하는 네거티브 선거전을 치른 것이 아니라 공약을 내건 정책선거로 승부를 걸었다. 향토예비군 폐지, 4대국 한반도안전보장, 남북화해와 교류, 공산권과 관계개선 및 무역추진, 대중경제노선 추진, 사치세 신설, 학벌주의 타파, 2중곡가제 실시 등이 당시 주요 공약이었다. 통일외교에선 평화를 통한 국익을, 내치경제에선 민생을 철저히 주장했다.
이런 공격적 공약에 공화당이 당황했다. 대응이 쉽지 않자 ‘빨갱이론’으로 대응했다. 6.25 원죄를 물어야 할 소련과 중국에게 한반도 안전보장을 요구한 것, 철천지원수인 북한과 화해협력 및 교류를 주장한 것, 향토예비군 폐지공약 등을 고리로 빨갱이 공세를 한 것이다. 그리고 이중곡가제 실시, 시치세(부자증세) 신설 등 경제공약, 학벌타파 같은 사회문제에 대한 획기적 공약에 대해서는 대응도 하지 못했다.
치열한 선거전 끝에 김대중은 졌다. 하지만 곧바로 박정희는 김대중의 주장을 그대로 정책으로 옮겼다. 1인 독재 강화에 이용했으니 문제지, 7.4공동성명 내용은 김대중의 주장 그대로였다. 추하곡 정부 수매를 통한 이중곡가제가 실시되었다. 사치세는 아니지만 부자증세도 상당부분 현실에 옮겨졌다. 공무원 시험에서 학력제한이 철폐되었고, 행시 사시 등 각종고시도 학력제한이 없이 치러졌다. 김대중의 미래지향적 안목이 맞았다는 증거다.
김상곤의 무상급식… 이를 두고 치열한 논전이 있었다. 이건희 손자에게도 학교에서 공짜로 밥을 줘야 하는가란 반론, 오세훈은 이런 반론에 힘입어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었다. 오세훈을 패퇴했고 지금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정치인도 정치세력도 없다. 김상곤의 미래지향적 안목이 맞았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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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오마이뉴스 |
무상버스… 단어는 무상이지만 대의는 생업을 위해 버스로 출퇴근과 통학을 하는 경기도의 저소득 근로자 및 학생에게 교통비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복지공약이다. 그런데 이 공약이 나오자 여당은 지금 1971년 김대중을 죽이려고 했던 방식 그대로 모든 입과 매체를 빌려 김상곤 죽이기에 나섰다. 이런 여당의 공세에 야당의 대항마들도 동참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나는 이 사안에서 최종 승자는 김상곤일 것으로 본다. 그의 미래지향적 안목이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여당의 경기지사 후보군 중 군계일학은 남경필이다. 남경필은 우리나라 버스재벌 중 하나인 경남여객 사주였던 고 남평우 의원의 아들이다. 새누리당 전신인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으로 이어진 현 새누리당 전신 당에서 3선 의원을 지냈다. 그러나 현직 국회의원이던 당시 지병으로 요절했다. 외국에서 박사과정 공부 중이던 30대 초반의 남경필은 급거 귀국, 부친상을 치르고 곧바로 부친의 지역구에서 보궐선거에 출마 당선되어 현재 4선 중이다.
이런 남경필 집안이 운영하는 경남여객 회사명인 ‘경남’은 ‘경기도 남부권’을 운행하는 버스라는 의미 외에 ‘경기도의 남씨(南氏) 집안’을 의미하는 상호라고 한다. 경상남도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이 회사는 남경필의 조부인 남상학이 1959년 창업하였으며 부친 남평우를 거쳐 현재는 동생인 남경훈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현 대표이사 남경훈은 남경필의 친동생이므로 경남여객은 3대째 이어지는 남경필 집안의 가업인 셈이다.
현재 경남여객은 수원과 용인 지역에서 일반 시내버스 마을버스 등 80여개 노선, 직행좌석버스 20여개 노선, 시외버스와 공항버스 등 20여개 노선 등 약 120여 개 노선을 운행하는데 서울을 비롯한 경기 남부 거의 전역을 커버한다. 경기도 지역에선 경기버스와 대원고속이 통합된 경기버스와 양분한 가히 대중교통의 왕국이라고 할 수 있다.
김상곤이 만약 야당 단일후보가 된다면 이 대중교통 왕국의 왕자인 남경필과 경기지사를 자리를 놓고 한판 승부를 벌려야 한다. 따라서 남경필 입장에선 필히 제압해야 할 상대가 김상곤이다. 만약 버스 공영제가 확실하게 자리를 잡으면 3대를 이어 온 가업이 폐업을 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각 자치단체는 실상 어정쩡한 공영제를 실시하고 있다. 즉 공영제란 이름으로 자치단체가 버스회사의 적자운영을 보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권은 버스회사가 계속 행사하면서 세금을 지원해주는 형국이다. 이는 곧 국민은 버스비를 버스회사에 내고 세금은 자치단체를 통해서 버스회사에 또 내는 ‘호구’짓만 계속하는 셈이다. 김상곤은 이 불합리를 해결하기 위해 버스회사의 손을 떼게 하면서 완전 공영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논전은 비용으로 옮아가야 한다. 과연 자치단체의 재정으로 이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감당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논전이어야한다는 말이다. 된다 안 된다의 논전은 실익이 없다. 어차피 지금 우리가 알게 모르게 세금은 민간 버스회사에 지원되고 있으니까… 이걸 준 공영제라고 하니까… 환승제 원천이 준 공영제였으니까…때문에 나는 김상곤의 화두가 아주 멋진 화두라고 본다. 그래서 야권은 이 논전에서 된다 안 된다에 휩쓸리면 안 된다. 그것은 남경필과 그 페밀리가 노리는 수다.
저들은 경기지사라는 공직도 중요하지만 경남여객이란 기업도 매우 중요하다. 정주영은 대통령까지 하겠다고 설치다가 김영삼의 현대그룹 강압에 손발 다 들고 항복했다. 정치를 민중을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니라 개인 한풀이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업인에게 정치는 민중이익보다는 자기 기업 이익이 먼저다. 남경필에게 경남여객은 몸통이다. 이 몸통이 버스 완전공영제로 인하여 훼손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남경필은 아마도 이 공약의 저지를 위해 사생결단도 마다치 않을 것이다.
지금 같은 준공영제는 경영권으로 호가호위하면서 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 꿩먹고 알먹기다. 그가 만약 도지사가 된다면 경남여객이란 자신의 가업에 경기도민 세금을 합법적으로 지원하게 된다. 이 은밀한 이권을 포기할 수 있는가? 그러니 저들의 김상곤 죽이기가 지금 가히 목불인견이다. 이런 속사정쯤은 알고 김상곤 죽이기에 동참하는 것이 유권자로서의 도리다. 야당 지지하는 경기도 주민들은 특히 이점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