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하게도 사람은 샤워를 할 때 언제나 철학자가 된단 말야.
어째선지 인생을 살면서 떠오르는 질문을 곰곰히 생각할 수 있는 완벽한 시간이거든.
우리는 왜 여기 있나?
우주에는 우리밖에 없을까?
나는 왜 태어났나?
나는 골똘히 생각하며 샤워실 바닥 배수구로 비눗물이 흘러 나에게 최면을 걸듯 원을 그리며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봤어.
그리고 갑자기 깨달았지.
여태까지 샤워하면서 발을 제대로 씻은 적이 없는거야.
다른데는 그래도 잘 씻는데, 비눗물이 씻겨 내려가면 발은 저절로 깨끗해질거라 생각했었거든.
지금이라도 제대로 한 번 문질러 줘야겠다.
우주에서의 내 자리를 생각하느라 샤워실 바닥에 앉아서 시간을 얼마나 보냈는지 기억이 안나.
왜 우리는 여기로 보내졌을까. 발만 문질러댄지 몇시간은 지났지 싶네.
처음에는 때밀이로 하다가 나중엔 굳은살 미는거로 했거든.
근데 아직도 왜 이놈의 바코드는 발바닥에서 안지워지나 몰라. 암만해도 안지워져.
아무래도 면도칼을 써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