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바람이었다
개나리 향을 가득 실어서
나를 채운 초봄 바람이었으며
민들레 홀씨들을 담아 흐른 여름의 바람이었다.
바람, 너로 시작해 내게 와 흐른 바람은
너를 바라게 했다
나는 너를 바람
너는 내게 바람.
백가희 / 나의 바람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당신 나지막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 콧노래 한 구절이면
한 아름 바다를 안은 기쁨이겠습니다.
나태주 / 선물
누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았다
장미꽃 나무 너무 다정할 때 그러하듯이
저녁 일몰 유독 다정할 때 그러하듯이
뭘 잘못했는지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김경미 / 다정이 나를
물통 속 번져가는 물감처럼
아주 서서히 아주 우아하게
넌 나의 마음을
너의 색으로 바꿔 버렸다.
너의 색으로 변해버린 나는
다시는 무색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넌 그렇게 나의 마음을
이정수 / 물감
참 어이가 없네요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침 뚝 떼시면
나는 어찌합니까
그토록 강렬하게 흩뿌려놓고
지금와서 슬쩍,
다른 데 가 계시면
나는 뭡니까
이게 대체 무슨 경우랍니까
내 몸과 마음은 이미
폭싹 다 젖었는데.
이정하 / 소나기가 끝나고 난 뒤
여자 보기를 돌 같이 하던 한 사내는
수국 가득 핀 길가에서 한 처녀와 마주치는 순간
딱, 하고 마음에 불꽃이 일었음을 느꼈다
사랑이었다.
서덕준 / 부싯돌
나에게 꽃이 있었지
어느 별 어린 왕자처럼
매일매일 물을 주고
항상 바라봐줘야 하는
꽃 한 송이가 있었지.
양해남 / 꽃
별과 달 중에 누가 더 외로울까
힌트는 별은 무수히 많은데
달은 혼자라는 것
그래, 별이 더 외롭지
무수히 많은 속에 혼자인 게
훨씬 더 외롭지
당신처럼, 나처럼.
정철 / 별과 달 중에
봄은 잠시인데
그 봄이 전부인 양
사는 꽃들이 있다
그대는 잠시인데
그대가 전부인 양
살아버린 나도 있었다
고결한 나의 봄
그대를 보내기엔
여전히 날이 좋다.
백가희 / 여전히 날이 좋다
너의 긴 속눈썹이 되고 싶어
그 눈으로 너와 함께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
네가 눈물 흘릴 때
가장 먼저 젖고
그리움으로 한숨 지을 때
그 그리움으로 떨고 싶어
언제나 너와 함께
아침을 열고 밤을 닫고 싶어
삶이 지쳤을 때는
너의 눈을 버리고 싶어
그리고 너와 함께
흙으로 돌아가고 싶어.
류시화 / 속눈썹
너는 내 통증의 처음과 끝.
너는 비극의 동의어이며,
너와 나는 끝내 만날 리 없는
여름과 겨울.
내가 다 없어지면
그때 너는 예쁘게 피어.
서덕준 / 상사화 꽃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