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몽 / 윤동욱
다들
일의 시작이 생각나지 않으면
그건 꿈이라고 했다
마치,
아침에 어떻게 일어나서
어떤 이유로 그 자리에 서있는지
이유를 모른다면 그건 꿈이라고 했다
너를 이유없이 좋아하고 시작점이 없으니
너는 내게 꿈일까?
간이역 / 윤동욱
한때는 참 밝았던 곳이었다
철없이 뛰어놀며 사람 가리지 않고
내가 아파봤기에 남을 상처주지 않는
활짝 열린 간이역이었다
발길이 줄어들고
누구 하나 머물지 않게 되었다
아무도 없었지만 또 무언간 있었다
버려진 길가에 활짝 핀 코스모스
많은 기차가 스쳐간다
멈추지 않고
버려진 간이역,
순간은 추억처럼 기억나겠지만
이내 차차 잊혀질 것이다
햇님도 많이 취했는지
산 중턱에 걸터앉아 붉게 달아올랐네,
저 노을빛이 간이역 거울에 비치니
한없이 맑고 붉게 빛났다
버려진 간이역,
이젠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어설프게 따라한다
공허하게 버려져 있으니 외로울 틈이 없었다
스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도 바빴기에
어제는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았다
차가운 빗물에 지붕을 털어내니
처마 끝에 물방울이 맺혔다
의지 / 윤동욱
걷는 길가의 발걸음
한 발자국 발자국이
가시밭길이라 아팠다
아플 것을 다짐하고
걷기 시작했기에
찢긴 살결의 고통은
내게 아무렇지 않았다
길 끝에는 화사하게
꽃이 한 송이 피어있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와 함께
스치는 바람에 몸을 흔들며 떠들었다
나비는 가시밭길을 걷지 않아도 된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주저앉았다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고
울며 떼쓰기엔 꽃의 뿌리가 깊었다
바다 / 윤동욱
누군가에게 큰 의미가 될 수 없기에
스스로를 창틀에 가두어서 옥조였다
내 모자람이 두려웠고 쌓인 마음이 터질 듯해서
차마 멀리 두지 못하기에 내가 안고 나를 가뒀다
하품할 때처럼 나오는 눈물이었지만
떨어진 눈물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언제나 순간과 우연이란게 전부일 수 없고
매번 누구에게나 쉽게 나의 어깨를 내주었지만
나에게는 기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어렵사리 말을 내뱉어 손을 내밀어줘도
오롯이 내게 주어진 짐을 나 편하고자 털어놓기엔
난 내가 기댄 이들과 너무나도 다른 존재였기에,
나는 쉽게 그들을 닮아갔지만 그들은 내게 멀었고
별처럼 어렴풋이 밝았지만 또한 별처럼 멀었다
이 우주에서 오로지 나 혼자인듯 공허했다
마치 나는 파도를 기다리는 위태로운 모래성,
날 가득 채우듯 몰아치는 파도를 기대한다
부딪히면 산산히 부서질 것을 알아도
내가 아니더라도 / 윤동욱
네게
나는 어떠한 의미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내게
너는 점처럼 작아도 심해처럼 깊었기에
나는 네게 아무것도 아니었어도 좋으니
네 상처 아물만큼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