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비 오는 날의 저수지를 본 적이 있다. 카시트는 습기를 머금어 눅눅했고 싸구려 방향제 탓에 멀미를 하듯 속이 울렁거렸다. 모두 아무런 표정도 없이 제각각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내뿜은 훈기로 뿌옇게 흐려진 유리창 너머에, 저수지는 그저 담담하게 쏟아지는 모든 비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미 오래 전에 죽은 것 같은 헐벗은 나무 한 그루가 저수지를 향해 몸을 기울인 채 앙상한 가지를 수면 위에 드리우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비는 내리고, 자욱한 물안개와, 젖은 자갈과, 회색의 체념들. 그 숨 막히듯 황량한 풍경 앞에 어린 시절의 나는 어떤 외경과 동시에 지독한 절망감을 느꼈다.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너무나 조용하고 거대하며,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어두운 거실의 소파 위에서 눈을 뜨면서, 나는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음을 직감했다. 비 오는 날의 숙명적인 컨디션 저조. 잠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산산이 흩어진 의식의 조각들을 그러모아 억지로 육체 안에 구겨 넣는 듯 불쾌한 기분이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 위에 팔을 두르고 나지막이 한숨을 쉬며 몸을 비틀었다. 싸구려 인조가죽 소파는 눅눅하게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꿈을 꾼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최근 몇 달 간은 전혀 꿈을 꾸지 않았다. 항상 잠에서 깨어나면 뭔가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불쾌함과 입안의 텁텁함만 남아 있었다. 지금도 불쾌함과 텁텁함은 마찬가지로 남아 있었지만, 오늘은 추가로 발끝이 시리고 오한이 들었다. 비 오는 날 소파 위에서 불편하게 낮잠을 자면서 창문까지 열어둔 덕분이었다. 열린 창문 너머로 우중충한 회색 하늘이 보였다. 빗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나는 잠시 누운 채 정신을 추스르다가 부엌으로 가서 투명한 유리잔에 수돗물을 연달아 세 번 가득 담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수돗물에서는 마치 오래된 수영장의 물 같은 맛이 났다. 나는 컵을 싱크대에 내려놓고 욕실에 들어가 뜨거운 물로 시간을 들여 샤워를 했다. 젖은 몸을 말리고 주섬주섬 옷을 껴입는 사이에도 멍한 정신은 좀처럼 맑아지지 않고 있었다. 집을 나서기 전, 창문을 닫고 거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소파의 맞은편 벽에 걸려 있는, 연말에 교회에서 받은 벽시계에는 이런 성경 구절이 적혀 있었다.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주말의 보울 바는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손님들로 북적였다. 바텐더 겐죠는 글라스에 위스키를 따르다가 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나에게 아는 체를 했다. 나는 왼쪽 어깨에 묻은 빗방울을 툭툭 털어내고 곧장 겐죠의 맞은편에 비어 있는 스툴에 앉았다. 우산과 가방은 대충 발치에 던져두었다. 비 오는 날이면 가게 입구에 우산꽂이가 놓이긴 했지만, 그걸 우산꽂이로 사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산을 꽂아놓는 사람은 가게에 처음 온 사람이거나 알면서도 실수로 꽂아놓은 사람뿐이고, 그나마도 전부 다른 사람이 가져가거나 취객들의 토사물 범벅이 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것을 코를 푼 휴지와 담배꽁초를 버리는 데 사용했다. “사람이 제법 많네.” “폭풍전야지. 이정도면.” 겐죠는 씩 웃으며 위스키가 담긴 글라스를 들고 사라졌다. 겐죠는 일본인이지만 놀랍도록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나도 우연히 그의 말을 듣기 전까지 그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바텐더의 국적 같은 것은 문제 삼지 않았다. 나는 멀어지는 겐죠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발치에 던져둔 캔버스 소재의 낡은 크로스백에서 공책과 연필을 꺼내 테이블에 늘어놓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와 고함소리는 불벼락이 떨어지기 직전의 아비규환을 방불케 했다. 스피커에서 도대체 무슨 음악이 나오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굉장한 소음이었다. 왼편에 앉은 남자는 내게서 등을 돌린 채 일행과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오른편에 앉은 남자는 어딘가 석연찮은 표정을 한 채 영어로 된 성경을 읽고 있었다. 지독한 넌센스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재떨이에 재를 털었다. 항상 이런 말도 안 되는 분위기 속에서 글을 쓴다. 조금 더 조용하고 신사적인,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평화로운 공간을 찾아본 적도 있다. 하지만 어째선지 이 아비규환을 벗어나면 단 한 줄도 제대로 된 문장을 쓸 수가 없다. 세상엔 이해범위를 벗어난 일들이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거의 매 순간 새삼스레 깨닫고 있다. 나는 천천히 담배를 피우며 끝이 뭉툭해진 연필들을 깎기 시작했다. 내가 다섯 자루의 연필을 모두 깎고 부스러기를 긁어모아 크리스털 재떨이에 털어 넣을 때쯤 겐죠가 돌아와 내 앞에 압생트가 담긴 투명한 잔을 내려놓았다. 나는 흑연이 까맣게 뭍은 손날을 바지에 슥슥 문질러 닦았다. “오늘은 압생트네.” “고독한 예술가의 술이지.” “그럼 잘못 가져온 것 같은데.” “최소한 하나쯤은 맞췄을걸.” 나는 잔을 들어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 이곳에 올 때마다, 나는 겐죠가 그때그때 무작위로 내어주는 술을 마셨다. 어제는 블러디메리였고 그제는 진토닉이었다. 진저에일이나 콜라를 내오는 날도 있었다. 도저히 예측이 불가능한 종류의 무작위였지만 어쨌든 나는 그가 내어주는 모든 음료들을 불만 없이 마셨다. 아무려면 어떠냐고 생각하는 사이에 굳어져버린 룰이었다. 겐죠는 글라스에 맥주를 따르며 물었다. “비가 오는 모양이지?” “몰랐어? 우산꽂이도 갖다놨잖아.” “그래? 구석에 치워놨더니 또 누가 갖다놓은 거야. 쓸모도 없는 걸.” 겐죠는 입 꼬리를 끌어내리는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맥주가 가득 담긴 글라스를 들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나는 저 웃음이 좋다. 모든 것에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발자국만큼. 충분히 서로를 배려할 수 있고, 필요 이상으로 간섭하지 않을 수 있는 거리다. 적당한 무관심이란 그만큼의 관심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무관심의 적정선을 지키기 못한 것은 작년 가을이었다. 그때 나는 두 번째 연애를 하고 있었다. 상대 여자는 이십대 중반의 평범한 회사원으로, 얼굴도 이름도 서글플 만큼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차분하고 단정한 단어를 사용했고, 무엇보다 손이 정말 예뻤다. 대학생 시절에는 손 모델로 활동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녀가 스크랩해놓은 잡지에서 그녀의 손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사진 속 그녀의 손은 신체의 일부가 아닌 인공적인 조형물처럼 기묘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는 낙엽이 지기 시작한 공원의 벤치에 나란히 앉아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커피는 언제나처럼 형편없는 맛이었다.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그녀는 거의 마시지 않은 커피를 두 손으로 감싼 채 몸을 동그랗게 말고 앉아 있었다. 마치 낙엽처럼 건조한, 습기 가득한 온기가 필요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햇볕은 뜨거웠지만 바람이 차가운 기묘한 날씨였다. 나는 점점 빨갛게 곱아가는 손가락을 벤치 가장자리의 햇볕 속에 얹어놓으며 원인을 알 수 없는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그녀는 한참 후에야 있잖아, 라며 입을 떼었다. “여행 다녀왔다는 거, 거짓말이야.” 그녀는 일주일 정도 제주도에 여행을 다녀왔다. 생각할 게 많으니 연락을 자제해달라는 말에 나는 실제로 일주일 간 그녀와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다.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의외의 고백에 충격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을 받았어.” “… 아기?” “응.” 무슨 근거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녀는 핸드백에서 담배를 꺼내 손으로 바람을 가리고 불을 붙였다. 담배연기가 그녀의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방향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엄연히 공원은 금연구역이었지만, 나도 아무렇지 않게 그녀와 담배를 피웠다. 아주머니 몇 분이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 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적당한 말을 꺼내야 하는데, 도무지 그 적당한 말이라는 게 생각나지 않았다. 침묵 속에 의미 없는 시간이 흘렀다.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나는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 말했다. “이번 주말에 온천 가기로 한 거, 취소해야겠네.” “… 그래.” 왼쪽 뺨으로 잠시 그녀의 불편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녀는 다 피운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하이힐로 신중하게 비벼 껐다. 그리고 말없이 일어나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앉은 자리에서 담배를 한 대 더 피웠다. 새 담배에 불을 붙이고 고개를 들어봤을 때, 그녀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적당한 무관심은 그만큼의 관심을 전제로 한다. 관심이 없으면 배려도 없으며, 배려가 결여된 무관심은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그 뒤로 나는 모든 것에 적당히 무관심하기 위해 모든 것에 적당히 관심을 가지려 노력했다. 그리 어려운 말은 아니지만 이 말의 참 뜻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구태여 이해시킬 필요 또한 전혀 없다.
“실례합니다.” 한참 원고에 집중하고 있을 무렵, 오른편에 앉은 남자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을 걸었다. 나는 쓰고 있던 문장을 마저 쓰고 마침표를 찍은 다음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전체적으로 깔끔한 느낌을 주는 남자였다. 머리는 포마드로 단정하게 빗어 넘겼고, 하늘색 버튼다운 셔츠를 제외한 재킷과 베스트와 팬츠와 심지어 넥타이까지 동일한 트위드 소재로 각자 명암만 조금씩 달랐다. 방금 면도를 한 듯 얼굴엔 거뭇한 수염자국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는 차분한 표정으로 정중하게 말을 이었다. 주변의 소음에 비해 작았지만 또렷하고 전달력 있는 목소리였다. “밖에 비가 오고 있나요?” 대답을 하려는 순간 왼편에 앉은 남자가 가게가 떠나갈 만큼 요란한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흐음 하고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손가락이 길었고 손톱도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가 무슨 부탁을 할 생각인지는 대충 짐작이 갔지만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잠깐 차에 다녀와야 되는데, 실례가 안 된다면 잠깐 우산을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그는 읽고 있던 성경을 뒤집어 테이블에 엎어놓은 뒤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뒤집어진 성경책 옆에 두어 모금쯤 남은 맥주잔이 놓여 있었다. 맥주잔에 맺힌 물방울이 또르르 굴러 떨어졌다. “초면에 죄송합니다만, 잠깐이면 됩니다.” 나는 시선을 내리깔고 잠시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발치에 던져두었던 우산을 집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어려울 것 없는 부탁이었다. 그는 손잡이에 녹이 잔뜩 슬어 있는 초록색 접이식우산을 받아들고 가볍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이면 됩니다.” 그는 다짐하듯 다시 한 번 그렇게 말하고 큰 보폭으로 문을 향해 걸어갔다. 감사인사 같은 것은 없었다. 나는 그가 떠난 자리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성경책과 맥주잔을 바라보다가, 압생트를 한 모금 홀짝이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돌아오긴 돌아오겠지만, 아마 오늘은 아닐 것이다. 근거 없는 예감이었다. 그리고 경험상, 내 근거 없는 예감은 대부분 기분 나쁠 정도로 잘 맞아떨어진다. 잠시 후 겐죠가 돌아와 테이블에 엎어져 있는 성경책을 집어 들며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 다시 원고를 써내려가며 말했다. “의인이 없었나봐.” “…?” 소리 없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회색 비였다.
며칠 뒤, 우산을 들고 사라졌던 남자가 다시 보울 바에 찾아왔다. 인기척에 원고에서 고개를 들어보니 그는 한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 서서 반갑지만 난처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표정을 아주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머리는 여전히 포마드로 단정하게 빗어 넘겼고 윈도우체크의 수수한 회색 수트를 입고 있었다. 나는 그를 대번에 알아보았지만 그냥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 말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새 것으로 보이는 접이식 우산을 내밀었다. 내가 빌려줬던 것과 동일한 색이었다. “바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요.” 나는 사양 않고 우산을 받아들었다. 그날은 우산이 없어 집에 돌아가는 내내 비를 맞긴 했지만 어차피 빗방울이 워낙 가늘어서 옷도 가방도 거의 젖지 않았고 집에 도착했을 때쯤엔 완전히 그쳐 있었다. 우산도 원래 버리려던 것이니 딱히 손해 본 것도 없고 탓할 생각도 없었다. 그는 내 오른편의 스툴에 앉아 맥주를 주문했다. 겐죠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냉장고에서 얼려둔 차가운 맥주잔을 꺼내 맥주를 가득 따라 성경책과 함께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지난번에 두고 간 것이었다. 그는 반색하며 그것을 받았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감사나 미안함의 표시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아, 다행이네요. 오늘은 술값 꼭 내고 가겠습니다.” 겐죠는 한 발자국 떨어진 미소를 짓고 등을 돌렸다. 평일 이른 저녁의 가게는 주말과 대조되게 무척이나 한가했다. 손님이라고는 구석진 자리에 앉은 중년 부부가 한 쌍, 이상할 정도로 조용히 다트 게임을 하고 있는 대학생 청년이 셋, 그리고 겐죠와 나와 옆자리에 앉은 남자뿐이었다. 겐죠는 무명천으로 글라스를 하나하나 세심하게 닦으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남자는 잔에 가득 담긴 맥주를 순식간에 절반 가까이 들이켜고 조심스레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보는 사람이 다 시원할 정도였다. 나는 새 우산을 발치에 던져두고 짐빔을 한 모금 홀짝인 다음 다시 원고에 얼굴을 묻었다. 주말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보울 바에 출석해 몇 시간씩 매달린 끝에 원고는 막바지 작업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컨디션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별다른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오늘 안에 마무리 지어서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신세진 것도 있으니 제가 한잔 사고 싶은데요. 괜찮겠죠?” 저번에 읽다 만 부분을 찾으려 성경을 천천히 넘기며 담배를 피우던 남자가 불쑥 말을 걸었다. 나는 원고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었지만 어쨌든 저쪽은 신경을 쓰고 있었고, 한잔 대접하겠다는데 굳이 거절할 필요 또한 전혀 없었다. 내 앞에 짐빔이 담긴 새 잔이 놓이자, 그는 이제 완전히 홀가분하다는 표정으로 경쾌하게 성경을 넘기기 시작했다. 대충 성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뒤로 짐빔을 두어 잔 더 마시고, 재떨이 가득 담배를 피우고, 미리 깎아둔 연필을 세 자루 째 사용했을 쯤, 그가 영수증으로 보이는 종이쪼가리를 책갈피 대신 성경에 끼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에는 어느새 제법 손님들이 들어차 있었다. 정면의 벽에 걸린 시계는 정확히 오후 열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서서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물었다. “여기에 자주 오시나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리해야 할 원고가 있을 때는 하루도 빠짐없이 오지만, 일이 다 끝나고 한가할 때는 일주일에 한두 번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일일이 설명하긴 귀찮았고, 어쨌든 개인적인 기준에 따르면 자주 오는 것이 맞긴 맞았다. 그는 흐음 하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앞으로 자주 마주치겠군요.” 이번에도 역시 나는 그렇게 예상하고 있었다. 그는 지폐 몇 장을 빈 맥주잔 밑에 넣어두고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가게를 나섰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지난번의 맥주 값과 합쳐서 십 원 한 푼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문을 열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과 맥주잔 밑에 끼워놓은 지폐를 바라보다가, 이내 완전히 흥미를 잃고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겐죠가 다가와 테이블을 치우고 만원권과 천원권이 섞여 있는 지폐 다발을 세어보았다. “에누리 없이 딱 맞는군.” 나는 으흠 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한때는 나도 교회에 나갔었지만, 지금은 발길을 완전히 끊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더 이상의 위안이 필요 없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된다. 물론 예외는 존재한다. 애당초 위안 같은 것을 받을 생각이 없던 사람은 기회를 봐서 서서히 발길을 끊는다. 나처럼 말이다.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를 따라서 매주 교회에 나갔다. 지하에 위치한 교회는 항상 어둡고 눅눅했으며, 바퀴벌레나 귀뚜라미 같은 벌레들이 심심찮게 튀어나왔다. 오래된 밥과 곰팡이, 노인들이 체취가 뒤섞인 묘한 냄새가 났다. 이사를 다닌 횟수만큼 교회도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유독 그 냄새만큼은 전국의 어느 교회를 가더라도 동일했다. 숙명 같은, 슬픈 신앙의 냄새였다. 어두운 지하 단칸방에서 강연대 하나 없이 초라하게 서 있는 목사가 있는가 하면, 눈부시게 하얀 성가대 가운을 입고 어깨 위에 거룩함을 빛내던 목사도 있었다. 고모부 같은 목사가 그랬다. 언제나 유쾌하고 자신감 넘치는,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너는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거야.” 고모부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무엇으로 빛을 내고 무엇으로 짜게 할 것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삼 년 전, 고모부는 긴 암 투병 끝에 위암이 온몸으로 전이되어 돌아가셨다. 고모부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던 밤, 나는 옥상의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며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도시의 밤하늘은 탁했고 별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무엇으로 빛을 내고 무엇으로 짜게 할 것인가. 나는 끝까지 그 답을 듣지 못했다.
“가는 거야?” 나는 무명천에 젖은 손을 닦아내는 겐죠를 힐끔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몇 날 며칠을 원고를 붙잡고 씨름해도, 그는 절대로 무슨 글을 쓰는지 얼마나 진행됐는지 물어보지 않는다. 가게의 어느 손님이라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을 침해당할지라도 단 하나만큼은 간섭받지 않는다. 원고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순간 지체하지 않고 원고와 연필을 가방 안에 쑤셔 넣었다. 며칠간의 마라톤 집필이었음에도 완전히 탈진할 정도까지 지친 것은 아니었다. 집에 가서 컴퓨터로 원고를 옮긴 다음 잡지사에 파일을 첨부해 메일을 보내는 일이 남아 있었다. 그 정도의 체력은 남겨놓아야 했다. “겐죠,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나는 딱딱한 스툴 위에서 뻐근하게 굳은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 풀고 어깨에 멘 크로스백의 끈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겐죠는 팔짱을 끼고 얼마든지, 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빛을 내고, 어떻게 짜게 할까?” 겐죠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 “어두우면 전등을 켜. 싱거우면 소금을 치고. 좋은 세상이잖아. 동네 편의점만 가도 널려 있는데.” 나는 감탄하며 거리로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내리고 있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가느다랗고 조용한 비였다. 가로등 불빛에 자그마한 빗방울이 흩날리고 있는 것을 보고서야 비가 내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가방을 뒤져 그 남자에게 받은 새 우산을 꺼내들었다. 무늬 하나 없이 단조로운 초록색 우산이었다. 큰 소리로 웃으며 비틀거리는 취객들과 붉은 불빛 아래에 벌거벗은 여인들을 지나쳐, 몇 개의 구불구불한 골목을 걸었다. 늦은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내일을 기약하며 잠을 청했다. 온 동네가 잠든 듯 고요했다. 비는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골목. 온통 적막한 가운데 편의점 하나가 기묘하리만치 밝은 빛을 내뿜으며 골목을 밝히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카운터에 앉은 앳된 아르바이트생이 나른하게 하품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입구에는 발판 대신 종이 박스가 깔려 있었다. 내일 몫까지 담배를 넉넉하게 사두기 위해 편의점으로 향하던 중, 나는 편의점 앞에 길게 나동그라진 물체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죽은 고양이였다. 차에 치인 것 같지는 않았다. 대신 입가에 음식을 게워낸 자국이 남아 있고, 윤기 없는 털은 듬성듬성 빠져 있었다. 아마 쥐약을 잘못 주워 먹은 모양이었다. 이 고양이는 쥐 대신 죽었다. 나는 편의점 앞에 서서 앙상하게 마른 고양이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담벼락도, 높이 솟은 전신주도, 죽은 고양이도 모두 비를 맞고 있었다. 만물의 소생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는 회색 비를 맞고 있었다. 차라리 폭력에 가까운, 그런 무관심이다. 악한 자도 선한 자도, 산 자도 죽은 자도 우산 없이는 비를 맞는다. 왜 그럴까. 나는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 담배를 한 보루 사서 가방에 넣고 돌아 나왔다. 가게 앞에 죽어 있는 고양이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편의점을 나와 방금 산 담배를 뜯어 불을 붙이며, 죽어서 비를 맞는 고양이를 스쳐지나갔다. 희생의 값어치라는 것에 대해,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잡지사에 완성된 원고를 넘기고 며칠 동안 줄곧 비가 내렸다. 일기예보에서는 이것을 본격적인 봄비의 시작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믿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봄은 이런 무채색 비와 함께 찾아오지 않는다. 비가 오는 동안은 보울 바에 가지 않았다. 사실은 거의 집밖에 나가지도 않았다. 원고가 끝나면서 지칠 대로 지친데다 비 오는 날은 두통이 심해 움직이기도 힘들기 때문이었다. 나는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어두운 방에서 수시로 물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거실 소파에 누워 창밖의 흐린 하늘과 오락가락하는 비를 바라보며, 나는 몇 번이나 비 오는 날의 저수지를 떠올렸다. 어렸을 적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산속 기도원의 앞에 있는, 겨울이면 사촌 형제들과 얼음이 얼어 있는 가장자리를 조심스레 걸었던 저수지다. 이렇다 할 추억 같은 것은 거의 없었다. 그저 단편적인 기억뿐이었다. 이따금 저수지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견딜 수 없어지는 순간이 있었다. 자동차로 대략 두세 시간 정도의 비교적 가까운 거리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다녀올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 기억된 저수지는 마치 바다처럼 넓고 광활했다. 구차하게 새삼 그곳을 찾아가서 어느새 훌쩍 자라나 어른이 되어버린 나 자신을 발견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면 단 1센티미터조차도 자라나지 못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든,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는 아직 자격이 없었다. 비는 오늘 오후 중으로 그칠 예정이었다. 빗줄기도 거의 잦아들어 있었다. 비에 젖은 흙냄새가 났다.
잦아들던 비는 끈질기게 이어지다가 결국 이른 저녁이 되어서야 완전히 그쳤다. 옅어지기 시작한 먹구름 사이로 주홍빛 석양이 비추었다. 나는 창밖으로 팔을 내밀어 바깥의 온도를 가늠해보았다. 비가 그친 직후여서 그런지 무척 쌀쌀했다. 평소의 가벼운 차림 위에 검은색 윈드브레이커를 걸쳤다. 집을 나서기 전 현관에 걸린 거울로 얼굴 상태를 확인했다. 분명 스무 해 넘도록 보아온 내 얼굴이었지만 어쩐지 낯선 느낌이었다. 며칠 사이 수염이 양 볼에 거뭇하게 자라나 있었다. 지저분해보였지만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았다. 집을 나서자 골목에는 어느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각자의 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한 손에 우산을 든 채 나와는 반대의 방향으로 걸어갔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있을 지친 얼굴들이 멍하니 스쳐지나갔다. 나는 불어오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한껏 옷깃을 여몄다. 몇 개의 구불구불한 골목을 지나 대로변으로 나와 천천히 걷고 있을 때, 검은색 중형 세단이 갓길에 멈춰서 경적을 울렸다. 내가 반응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가자 서행하며 따라오던 세단의 창문이 열렸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오랜만이네요.” 그 남자였다. 포마드로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는 여전했지만 테가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어서 단번에 알아보진 못했다. 안경 하나 썼을 뿐인데도 그는 인상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 속으로 중얼거리듯 예, 라고 말했다. 그는 비상등을 켜고 코트의 안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느긋하게 불을 붙였다. “요즘 통 나오시질 않네요. 며칠 동안 매일 출근도장 찍었는데. 시간이 엇갈렸나요?” “아뇨.” “예….” 그는 코로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뒤에 버스 한 대가 바짝 달라붙어 정차하더니 요란하게 경적을 울렸다. 나도 그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지만 우리는 버스정류장에 차를 세워두고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는 백미러로 버스를 확인하고 나에게 손짓을 했다. “보울 바에 가시는 거죠? 태워드리겠습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버스가 다시 한 번 경적을 울리자 마지못해 그의 차에 올랐다. 간만에 조금 걷고 싶기도 했고 퇴근시간에 차를 타는 것은 질색이었지만 그런 것을 일일이 설명하기는 귀찮았다. 걷는 것 정도야 집에 갈 때 하면 된다. 늘 이런 식이다. 내가 차에 오르자 그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싱긋 웃으며 곧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차량 내부는 몹시 넓고 깨끗했다. 차에 무척 공을 들이는 모양이었다. 대시보드 위에는 그가 보울 바에서 읽는 갈색 커버의 낡은 성경이 올려져있고, 백미러에는 기다란 염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나는 성경과 염주와 그의 두꺼운 뿔테 안경을 번갈아 쳐다보고 이내 시선을 정면에 고정했다. 사거리는 예상대로 아비규환이었다. 골목에서 줄줄이 나오는 차량과 좌회전 차선으로 끼어들려는 차량이 직진 신호를 받은 차량들과 뒤엉켜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는 앞으로 끼어드는 차량들에게 전부 길을 양보했다. 이래가지고는 정체구간을 벗어나도 애당초 걸어가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나는 창문을 내리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성난 붉은 불빛들이 발악하듯 경적을 울려대고 있었다. “어제 성경을 다 읽었습니다.” 나는 힐끔 그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신호가 빨간불로 바뀐 것을 확인하고 사이드브레이크를 채우며 말을 이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어렸을 적에 자주 들었던 성경 구절이었다. 비단 종교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자발적인 희생을 요구했다. 어떤 이는 스스로 썩어 거름이 되라고까지 말했다. 그들은 그것을 사랑이라 불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이를 사랑하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고 외쳤다. 이기와 이타 사이에 타협점이란 없었다. 오로지 갈팡질팡하는 가녀린 인간이 있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거짓말이에요.” “거짓말?” “죽은 목사는 기도하지 않아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지면, 악착같이 살아남아 뿌리를 내려야 한다. 무엇으로 빛을 내고 무엇으로 짜게 할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그 다음의 문제이다. 나는 창밖으로 절반쯤 피운 담배를 튕겨내고 팔짱을 꼈다.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얼음이 담긴 글라스에 드라이진과 토닉워터를 따르던 겐죠는 동시에 가게로 들어서는 나와 그를 의외라는 눈으로 쳐다보다가 평소와 다름없이 싱긋 웃으며 인사를 대신했다. 나는 겐죠의 맞은편 스툴에 앉았다. 그도 당연하다는 듯 내 옆자리에 앉았다. 겐죠는 방금 만든 진토닉을 구석자리에 앉은 여자에게 가져다주고 돌아왔다. 그의 앞에 차가운 맥주가, 그리고 내 앞에는 샴페인이 놓였다. “고독한 예술가의 술은 자네한테 사치야.”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신 뒤 두 팔을 테이블 위에 올리고 그 위에 나른하게 턱을 얹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해방감이었다. 스피커에서는 스티비 원더가 노래하고 있었다. 요즘 이상한 생각이 들어. 아무런 이유도 찾을 수 없어. 신기하리만치 정직한 가사였다. 문득 생각해보니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 자체도 무척이나 오랜만이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음악에 귀 기울이는 행위다. 최근의 며칠을 제외하고는 원고 때문에 줄곧 보울 바에 왔었고, 사람들이 득실득실하든 한가하든 언제나 스피커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단지 내가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사이에 수많은 일이 벌어진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비가 내리고, 고양이가 쥐약을 주워 먹고,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진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 그렇죠?” 고개를 돌리자 그는 벌써 맥주를 절반 가까이 비워내고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못 들었는데요. 음악 듣느라.” “이런.” 그는 혀를 쯧쯧 차며 안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찾았다. 습관처럼 라이터를 손바닥으로 가리고 담배에 불을 붙이며, 그가 띄엄띄엄 말했다. “누군가와 공평한, 관계를 맺는다는 건, 정말이지, 불가능한 일이라고요.” 몇 번이나 뻐끔거리며 담배에 불을 붙인 그는 고개를 뒤로 젖혀 천장을 향해 길게 담배연기를 내뱉었다. 흰 담배연기는 엑토플라즘처럼 천장을 서서히 배회하다가 환풍기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생각해요?” “… 글쎄요. 생각해본 적 없어서.” 나는 애매하게 대답했다. 정말로 생각해본 적 없는 주제였다. 그는 코트를 벗어 오른편의 비어 있는 스툴에 올려놓았다. 테이블 위에는 성경 대신 두꺼운 소설책이 올라와 있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였다. 그동안 신학에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읽을 만한 두꺼운 책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저도 없어요.” 그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손등으로 입가의 거품을 닦아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에요. 공평한 관계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하지만 불공평한 관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럴싸하지 않아요?” 노래는 레이첼 야마가타로 바뀌어 있었다. 오, 사랑하는 이여. 나를 붙잡아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이 마찬가지로 나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마치 정해진 정량이 있어서, 어느 한 쪽에 너무 과도하게 치우쳐 있으면 반대쪽이 텅 비어버리는 것처럼.” “… 기억력의 차이 아닐까요.” “글쎄요.” 그는 지겨운 표정으로 남은 맥주를 다 마셔버리더니 말도 없이 일어나 화장실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멀어지는 그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어디까지가 그의 본심인지 알 수 없었다. 본심.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본심을 내보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반드시 매사에 솔직해야할 필요는 없다. 적당히 얼버무릴 수 있을 때는 적당히 얼버무리는 것이 좋다. 하지만 구태여 없는 말을 꾸며낼 필요 또한 없다. 결과적으로 나는 침묵을 선택했다. 침묵. 하지만 그것은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진실과 거짓은 서로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다. 진실의 반대편에는 침묵이 있고, 마찬가지로 거짓의 반대편에도 침묵이 있다. 진실과 거짓은 거대한 침묵의 강을 사이에 둔 채 보잘 것 없는 나머지의 언어를 양분한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가 실제로 말을 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다. 하고 싶었던 말을 텁텁한 담배연기와 함께 삼키고, 언어는 하얀 엑토플라즘이 되어 천장을 배회하다가, 누렇게 담뱃진이 배어 있는 환풍기로 빨려 들어간다. 사라진 언어가 어디에 도달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게 우리는 입 밖으로 내어놓는 언어의 몇 백배 몇 천배나 되는 침묵을 각자의 가슴 속에 간직한 채,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미소 짓고 있다.
그는 몇 시간동안 별 쓸모도 없는 얘기를 하고 맥주를 물처럼 들이켜고 재떨이 한 가득 담배를 피우고 가끔 생각났다는 듯 테이블에 펼쳐둔 책을 읽었다. 그리고 가게 벽면에 걸린 시계가 열 시를 가리키자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스툴에 올려놓은 코트를 가볍게 털어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당신은 언제나 표정이 똑같네요.” 나는 무의식중에 손바닥으로 얼굴을 쓰다듬었다. 까슬까슬한 수염의 감촉이 느껴졌다. “지금 당장 죽어도 좋다는 표정인가요, 아니면 애당초 살아본 적도 없다는 표정인가요?” 글쎄, 어느 쪽일까.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어느 쪽이든 크게 상관은 없었다. 그는 빈 맥주잔 밑에 지폐 몇 장을 끼우고 지금껏 그래왔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큰 보폭으로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나는 글라스의 바닥에 조금 남아 있던 샴페인을 들이켜고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 그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모든 것이 반복된다. 한참을 지나쳐버린 줄로만 알았던 결정적 반환점도, 머잖아 하나의 갈림길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을 한순간에 뒤엎기란 불가능하다. 그저 조금씩 궤도를 수정하는 수밖에는 없다. 어떤 커다란 경험과 확고한 결심에도 사람은, 적어도 나는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무엇으로 빛을 내고 무엇으로 짜게 할 것인가. 가게를 나서 음습한 계단을 내려와 거리로 나섰을 때, 나는 비로소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을 마주할 수 있었다. 희미하게나마 몇 개의 별이 드문드문 빛나고 있었다. 정면으로 바라보면 별빛은 사라졌다. 오로지 시야의 바깥에서만 반짝이는 미약한 별빛이 밤하늘에 애처롭게 매달려 있었다. 사람들의 파도 속을 거닐었다. 술에 취해 향락에 취해, 눈앞에 펼쳐진 조용하고 거대한 세상과 나 자신의 무력함에 취해, 모두의 발걸음이 위태롭게 휘청거리고 있었다. 볼을 따라 뭔가가 흘러내렸지만 전깃줄에 매달려 있던 빗방울이 떨어진 것이라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나는 입 안 가득 짠맛을 머금은 채, 자칫 잃어버릴 듯 가녀린 별빛을 따라 걸었다. 어설픈 위안으로 가득한, 도시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