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성, 보름달
정월대보름이 달처럼
내 머리맡에 늘
커다랗게 떠 있는
부푼 마음이여
네 가녀린 손가락에
살짝이라도 닿으면
펑 하고 터지면서
그리움 와르르 쏟아질 것만 같은
널 향한 내 무거운 마음이여
널 알고부터
정월 아닌 날이 없구나
이선명, 다시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잊어버렸다
더 크게 부를수록 고요해지는
거짓이 되어버린 말들과
그리움이 되어버린 시간들
불현듯 너는 떠났고
허락도 없이 그리움은 남았다
앉거나 걷거나 혹은 서 있을 때도
내 안에 투명한 방울들이 맺히고 있었다
산다는 것은 죽어가는 것이 되었고
기억하는 것은 떠난 것이 되어 있었다
내 삶에 낙서 되어버린 한 사람의 이름
어디로 가야 다시 도착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물들기 쉬운 어리석은 사람
한 번의 입맞춤을 위해
힘없이 떠나보낸 시간들을 기억해본다
쓸쓸히 왔던 길은 돌아서듯 너를 생각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혹 당신이 아니라는 착각
하지만 그래도 후회할 수 없다
뼈가 부서지도록 아픈 이름을 안고
너라는 끝없는 절망을 사랑했다
유안진, 주소가 없다
주어에도 있지 않고
목적어에도 없다
행간에 떨어진 이삭 같은 낟알 같은, 떨군 채 흘린 줄도 모르는
알면서도 주워 담고 싶지 않은, 그런 홀대를 누리는 자유로움으로
어떤 틀에도 어떤 어휘에도 담기지 못하고
어떤 문맥 어떤 꾸러미에도 꿰어지지 않는
무존재로 존재하며
시간 안에 갇혀서도
시간 밖을 꿈꾸느라
바람이 현주소다, 허공이 본적이다
별 볼일 없어 더욱더 나 다워라
이응준, 애인
눈 덮인 벌판에 아무것도 없는
그림을 보면, 거기가
꼭 내 심장인 것만 같다
하지만 그것마저 남겨둔 채
영원히 가고 또 가고
너를 전부 여행하고 나면
우린
멸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