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있는말은 키케로란 고대 로마 정치가가 했던 말로
현대에도 정치에 기본이다.
오늘의 역사이야기는 고대부터 내려오는 정치프레임이다.
정치공학 어쩌구하는 부분에 보면 프레임 전략이라는 것이 있는데 국내 정치인들은 뭘 잘못 배운건지
이걸 네거티브 전략에 사용하고 있다.
정치인들 포함 지식인들 자세히 보면 일부러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고 생소한 용어를 만들어낸다.
뭐 하다보니 그럴수도 있지만 대체로 대중들이 어려워하고 꺼려하길 워해서도 있다.
오늘은 프레임 전략, 정치프레임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다.
아마 이번 대선의 화두는 네거티브, 프레임전략이 될것이며
알아둬서 나쁠것은 없다.
툭 툭 던지듯 인신공격성 혹은 별일도 아닌데 큰일처럼 판을 벌이는 네거티브 전략에는
함정이 있다.
네거티브의 상대방이 반응을 보이면 그는 짜놓은 프레임에 걸려서 사실관게는 중요치않고
이슈만 남아 사람들의 기억속에 자리잡게 된다.
바로 정치 프레임이란 특정한 관점으로 미리 정치의 "판을 먼저 짜놓고 상다방이 반응을 보이면 보일수록 커지게 만드는 것이다"
뭐 그렇다고 반응을 안보일 수도 없다.
정치 프레임은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고대 로마부터 시작된 방법으로 새로운 일도 아니며
꼭 네거티브만 있는 것은 아니고 이런 정치프레임을 설명하기에 미국 드라마 시리즈 "로마:중
브루투스 일파가 시저를 원로원에서 칼로 찌른뒤 연설하는 장면에서 극적으로 잘 나와있다.
시저가 살해된 뒤 브루투스는 울면서 시저의 권력욕을 비판하는데
"시저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에 거사를 일으켰다"는 연설을 한다.
로마 군중들은 울면서 연설하는 그의 말을 순진하게 받아들인다.
"웅성 웅성"
"브루투스는 정말 시저를 사랑했나봐"
"사실 시저가 좀 심했지"
"공화정을 무시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려고 한거잖아"
"많이 썩었어 독제자의 최후지 뭐"
그러나 시저의 최측근이자 다혈질의 맹장 안토니우스는 브루투스에 대해 명예를 소중히 생각하는분이라 칭찬을 하면서 시저의 위대한 점을 열거하기 시작한다.
시저는 충직하고 공정한 벗이었고, 수많은 포로를 잡아와 로마 경제를 살렸으며, 서민이 울 때 함께 울었고, 세 번이나 왕위를 제의받았어도 매번 거부했던 인물이 아닌가?
우리 모두 그를 사랑하지 않았던가?
안토니우스는 시저가 죽게 된 핵심적 이유인 독재, 스스로 황제가 되려고 했던 권력욕에 대해선
언급을 피하며 시저가 시민들의 좋은 친구였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한 것이다.
안토니우스의 감성팔이 앞에 조금 전까지 시저의 권력욕을 욕하던 군중은 태도가 바뀌어
"반역자를 한 놈도 살려두지 말자"고 외치며 시저를 살해한 브루투스 일파를 당황케하였다.
사실 시저는 부패환 권력자였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독재를 생각하고있었다.
그런데 한쪽에선 시저에 대해 부정적 프레임을 말하는데 다른 쪽에선 우의와 향수의 프레임을 가지고와 안토니우스의 말을 반박할 수록 시저의 과거행적 즉 잘한점도 언급해야되니 갈수록 향수가 불어나게 될것이고 그렇다고 모른척하면 인정하는 격이니 브루투스 일파는 그자리에서 줄행랑을 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정치 프레임은 판을 잘 짜두게 된다면 그후 상대방의 대응이 애매해지기에 우위를 점하기용이해 현대의 정치인들도 많이 사용하는데 긍정적 프레임 "박정희 업적과 과거향수" 그리고 부정적 프레임 "아니면 말고식 인신공격성 발언과 도덕성 검증"등에서 자주보셨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그냥 생각없이 툭툭 아무렇게나
네거티브 또는 감성팔이하는것도 아니다.
다 전략에 의해서 짜여진 각본대로 하는것인데
누구의 시나리오가 더 좋은지가 문제인 것이다.
정치프레임 알고보면 재밌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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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글 출처 '내 블로그'
ㅇ미지 출처 '미극 드라마 로마 (다음 영화 정보에서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