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저씨' 란 아마도 바바를 하는 아저씨의 줄임말 일듯.
디아블로2 시절엔 어느 겜방이나 가면,
담배꽁초 수북히 쌓인 재털이와, 언제 딴건지도 모를 콜라캔을 옆에 서너개 놓고,
바짓가랭이를 살짝 걷어 올린 '바저씨'들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다.
내가 살던 사당동 피씨방에선 이런 바저씨 서너명이 줄줄이 옆으로 앉아서,
거의 동일한 템 셋팅(할배검 또는 검방셋팅)을 하고,
동일한 모션의 휠을 하루종일 돌리시는 분들이 있었다.
식사도 겜방구석에 놓인 간이식탁에서 짜장면으로 해결하시고,
지치지도 않고, 거의 쉬지도 않으면서, 매일 같은 시간에 시작해서, 새벽 늦게까지.
치킨집 사장님인 듯한 아저씨, 횟집 주인인 듯한 아저씨, 막노동 하시는 듯한 아저씨,
이 세명이 거의 친한 동네 친구분들인듯,
당구장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PC 방에 찾아왔다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접해본 온라인 게임이 디아2 였으니,
이들에겐, 아이템의 효율성 / 스킬 트리 이런건 중요한게 아니었다.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서 액트4에서 무한 휠을 돌수만 있으면 족했다.
프로스트 노바로 느리게 하네, 스태틱으로 % 데미지로 깍네, 뭘 피하네 마네 이런건 적성에 안 맞는다.
그냥 남자답게, 무식하게, 단순하게 들이 받으면 그만이다.
한마디로 '니가 죽든가, 내가 죽든가' 다.
'삼식아, 넌 첫번째 웨이 부터 아래로 쓸고 와, 난 두번째 부터 갈아 마셔 불랑께'
'머식아, 이짝 다 쓸었다. 디아 조지자'
'오냐, 간다'
이 분들은 전설템을 깔때도 나름 의식이 있다.
모니터의 전설템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마우스를 눌러 전설이 까지는 '띵' 소리가 나면,
화투 패를 까듯이 손바닥을 옆으로 밀어내면서 아이템의 무기 마지막 자릿수 부터 하나씩 더 위로,
서서히, 음미하며 까는 것이다.
그러다 간혹 지금 가지고 있는 템보다 숫치 하나라도 더 좋은게 나올때면,
'우쒸, 난 왜 저런게 안나오지. 오늘 술은 니가 사.'
한번은 아랫 동네 다른 바저씨와 온라인에서 1:1 맞짱을 뜨게 되었다. (PVP)
채팅(내지는 타자 자체가) 익숙치 않은 이분들은 핸드폰으로 '방제'를 서로 불러준다.
5판3선승제 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2:2 로 팽팽하던 상황,
막판을 준비하는 아저씨, 긴장이 되셨는지, 어깨를 한번 터시더니,
마우스를 쥐려던 오른손 바닥에 침을 '퉤' 내뱉어 문지르신다. '좋아.. 덤벼' 알듯말듯 되내이며.
아마도 한 10만원쯤 건 현금빵 이었던것 같다. (웬만해선 손에 침 안뱉는 분이었는데. ㅎㅎ)
또, 간혹가다 열받아서 캐삭빵(지는 쪽은 장비를 상대편에 넘겨주고, 본인의 캐릭터를 삭제하는)이라도 질때면,
몰려 나가서 쏘주 한잔 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아오신다.
내일 다시, 현금주고 비슷한 걸로 한셋트 사면 그만 일 뿐.
가끔은 그 시절 그 '바저씨'들이 부럽다.
아마 나도 아저씨가 되어서 인가 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