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만 생각하다 날이 저물어
당신은 모르는 채 돌아갑니다
혼자서만 사랑하다 세월이 흘러
나 혼자 말없이 늙어갑니다
남 모르게 당신을 사랑하는 게
꽃이 피고 자는 일 같습니다.
도종환 / 혼자 사랑
나는 없어져도 좋다
너는 행복하여라
없어진 것도 아닌
행복한 것도 아닌
너와 나는 다시 약속한다
너는 행복하여라.
정채봉 / 인연
안그래도 보고 싶어 죽겠는데
전화벨만 울려도
눈물이 날 것만 같은데.
원태연 / 비까지 오다니
눈을 나 감고도
갈 수 있느냐고
비탈길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답했다.
두 발 없이도
아니, 길이 없이도
나 그대에게 갈 수 있다고.
김현태 / 첫사랑
공사중인 골목길
접근금지 팻말이 놓여있다.
시멘트 포장을 하고
빙 둘러 줄을 쳐 놓았다.
굳어지기 직전,
누군가 그 선을 넘어와
한 발을 찍고 지나갔다.
너였다.
문숙 / 첫사랑
맑은 하늘이 서서히
잿빛 구름으로 멍드는 걸 보니
그는 마음이 울적해진다고 했다.
하늘은 흐리다가도 개면 그만이건만
온통 너로 멍든 내 하늘은
울적하단 말로 표현이 되려나.
서덕준 / 멍
언제라도 찾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서 있겠습니다
낯선 기분이 들지 않도록
모든 것은 제자리에 놓아두겠습니다
기별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대는 그저
돌아오기만 하십시오.
이정하 / 약속
행여 들킬 세라
저만큼 떨어져서
가만가만
달님 따라가는
저 개밥바라기별.
강인호 / 짝사랑 II
네게는 찰나였을 뿐인데
나는 여생을 연신 콜록대며
너를 앓는 일이 잦았다.
서덕준 / 환절기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다 해도
그대여, 그대에게 닿을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십시오.
그대는 내내 안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아아 어찌합니까, 나는 이미 담을 넘어버린 것을.
이정하 / 문
결말이 따뜻한 한 편의 소설 속
너와 내가 주인공이길 바랐지만
너의 행복과 슬픔, 그리고 일생을 읽는 동안
나는 등장하지 않았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지문에 눈물만 묻혀가며
말없이 페이지를 넘길 뿐이었다.
소설 속 나의 이름은 고작
'너를 앓으며 사랑했던 소년 1'이었다.
서덕준 / 등장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