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안도현 / 가을 엽서
돌부처는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 번 하는 데 한 달이나 걸린다.
이정록 / 더딘 사랑
어두운 길을 등불 없이도 갈 것 같다
걸어서도 바다를 건널 것 같다
날개 없이도 하늘을 날 것 같다
널 만나고부터는
가지고 싶었던 것
다 가진 것 같다.
이생진 / 널 만나고부터
모래알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풀잎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나게 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어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정채봉 /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겨울이었어
네가 입김을 뱉으며 나와 결혼하자 했어
갑자기 함박눈이 거꾸로 올라가
순간 입김이 솜사탕인 줄만 알았어
엄지발가락부터 단내가 스며
나는 그 설탕으로 빚은 거미줄에 투신했어
네게 엉키기로 했어 감전되기로 했어
네가 내 손가락에 녹지 않는 눈송이를 끼워줬어
반지였던 거야
네가 나와 결혼하자 했어.
서덕준 / 오프닝 크레딧
몽롱해집니다.
피곤하고 졸리운데
당신이 내 가슴에 한없이 파고드시니
대체, 여기는 어디랍니까.
김용택 / 현기증
밤이면 나는 별에게 묻습니다.
사랑은 과연 그대처럼 멀리 있는 것인가요.
내 가슴 속에 별빛이란 별빛은 다 부어놓고
그리움이란 그리움은 다 일으켜놓고
당신은 그렇게
멀리서
무심히만 있는 겁니까.
이정하 / 별에게 묻다
어차피
백년이 지나면
아무도 없어
너도 나도
그 사람도.
에쿠니 가오리 / 무제
먹지도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바라만 보며 향기만 맡다
충치처럼 꺼멓게 썩어버리는
그런 첫사랑이
내게도 있었지.
서안나 / 모과
너를 예로 들어
남을 위로할 때가 올까봐
나도 그런 적이 있다고
담담하게 말하게 될까봐
원태연 / 두려워
문득 이름 모를 슬픔 하나
가슴에 피어날 때면
추억 속 눈물로 묻어둔
당신 생각 너울 날아와
어깨를 빌려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꿈에서만큼은
부디 이런 내게 찾아와
널 사랑하지 않아서 미안하다,
비참한 위로라도 한 마디
해주면 좋겠습니다.
서덕준 / 부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