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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여러 시스템 중에서 그래도 가장 좋으면서도 가장 말이 많은 시스템 중에 하나죠... 바로 캐나다의 병원 시스템...
솔직히 한국에서는 병원에 갈 일이 별로 없어서, 한국의 병원이 종합병원이 어땠는 지, 개인의원들이 어쨌는 지... 이제는 거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집니다만, 한두번 병원 가면 그렇게 비싼 요금을 내면서 했던가... 하는 기억밖에 없습니다.
한국에서 그렇게 병원 때문에 큰 고생을 안 해서 그런지, 여기와서 캐나다의 속 터지는 의료시스템을 보면... 정말 이 캐나다라는 나라가 선진국이냐... 라는 생각도 많이 들고, 이 기본적인 시스템이 다 공짜라는 걸 망각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아들내미 낳는 그런 과정을 겪고 나니, 이 모든 복잡한 절차가 공짜로 끝난다고 생각하니... 참 든든하기도 하고, 내가 돈이 없어서 치료도 못 받고 죽지는 않겠구나... 그런 생각도 드네요.
여하간... 이 캐나다의 병원시스템에 대한 글은 약 30여권의 도서와 100여종의 논문, 200여개의 캐나다의료전문 사이트를 샅샅히 통달하고 종합한 포스팅... 은 택도 없구요, 그저 제가 캐나다에서 그동안 겪었던 경험담들의 집합체입니다.
'어? 그건 내가 알던 거랑 다른데...?' 하시는 분들 있으시면 그 '알던 거' 이야기하신 분이랑 이야기하시길 바랍니다.
캐나다에서 몸이 아프면 가는 곳이 크게 4군데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Family Doctor...
우리나라로 치면 주치의라고 해야하나요? 가정의라고 해야하나요?
여하간 우리나라에서는 제가 오기 전까지는 없었던 시스템입니다만 여기서는 가장 기본적인 의료시스템 같습니다.
모든 가족이 한 의사에게 등록되어서 그 의사에게 진찰을 받는 시스템이죠.
처음에 등록할 때, 모든 가족의 병력 등의 히스토리까지 다 제출하고, 뭔 일 있을 때마다 가서 진찰을 받으니, 그 기록도 계속 쌓이고, 또한 간단하게 Annual Check, 즉 정기검진도 해 줍니다.
하여간, 이렇게 계속 기록이 쌓이다 보니, 나중에는 착... 하면 척... 이렇게 알아듣고 그에 맞게 처방이나, 진찰을 하시는 거죠.
또한 기본적인 진찰로도 모자른 경우에는 Specialist에게 리퍼해주기도 합니다.
이 Family Doctor는 도시마다 그 수요가 좀 다르다고 하네요.
어떤 도시에서는 의사가 남아돌고, 또 어떤 도시에서는 패밀리닥터 구하느라고 피 터지고...
특히, 여기서도 실력있다고 소문 나면 그 의사를 패밀리닥터로 잡기 위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경쟁이 산재한다고 하네요.
다행히 저희 패밀리닥터 같은 경우에는 이 도시내 유일한 한국분이라서, 이만저만한 경쟁률이 아니었다는...
지금도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저희가 패밀리닥터 구할 때는 아기를 가지면 우선 순위가 있어서 그나마 쉽게 구한 편입니다.
아무래도 아픈 걸 설명해야 하니, 안 그래도 안 되는 영어... 얼마나 편한 지 모릅니다.
'아랫배가 싸르르르 아팠어요...' 를 'My low stomach hurt Sarrrrly...' 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패밀리닥터의 안 좋은 점은 미리 예약을 해야한다는 점이죠.
즉, 지금 막 아프더라도 일단 예약을 하고, 그 때까지는 이를 악 물고 아픈 걸 참던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예약을 하므로, 대기시간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앞의 환자들이 5~10분씩 밀리기 시작하면 대기시간이 길어질수도 있으므로, 아예 아침 일찍 예약을 하거나, 점심시간 다음 시간에 예약을 하는 게 대기시간 줄이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두번째는 Walk in Clinic, 우리나라말로 하면 걸어서 병원까지... 가 되겠네요.
우리나라로 치면 동네의원이라고 해야하나요?
몸이 너무 아픈데, 패밀리닥터 예약이 내일이다... 그런데 도저히 못 참겠다... 그럴 때 갈 수 있는 의료기관입니다.
패밀리닥터가 예약제인 반면에, 이 곳은 온 순서대로 진찰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대기시간은 정말 복불복입니다.
재수 좋을 때는 10~20분만에 의사를 보기도 하고, 운수 사나운 날은 3~4시간은 기다려야 의사를 볼 수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가면 좋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렇게 생각해서 미리 간 날에 병원 앞에 쭉 늘어서 있는 사람들을 볼 수도 있고, 그걸 생각해서 좀 늦게 가야지... 생각하다가 또 대기실에 바글바글한 사람들을 볼 수도 있고...
특히나 환절기 같은 경우에는... 그 대기실의 모든 사람들이 코 훌쩍, 기침 쿨럭...
휴우...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감기 떼러갔다가, 더 붙이고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Walk in Clinic은 환자에 대한 히스토리가 거의 없습니다. 그 전에 아무리 갔더라도 다시 리셋하고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른 의료기관과 달리 패밀리닥터와도 연계가 없어 보입니다. 여기서 진찰을 받으면 그 기록이 패밀리닥터에게는 가지 않는 것 같아요.
이렇게 불편하더라도 가끔씩 꼭 가야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처방전이 필요할 때...
대충 당장 무슨 약 먹으면 나을 것 같다고 아는데, 그 약이 처방전 없으면 구입불가능일 때, 의사 만나서 진찰 겸 처방전 구걸을 하는 거죠.
세번째는 Emergency Room, 줄여서 ER 이라고 하는 응급실입니다.
주로 종합병원에 붙어있는 응급실이죠.
새벽에 갑자기 애가 열이 오른다, 또는 패밀리닥터 예약도 내일인데, Walk in Clinic 정도로는 안 될 것 같다... 의 경우에, 눈물을 머금고 가야하는 곳입니다.
일단 주차비 엄청 비쌉니다. 종합병원은 아마 이 주차비와 병원 내 식당으로 돈을 버는 것 같습니다.
대기시간... 머... 하루 잡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서너번 ER을 간 것 같은데, 평균대기시간 8시간, 최대 10시간입니다.
피가 철철 나거나, 배에서 순대같은 게 나오지 않는 한... 일단 ER 대기실에서 2~3시간 기다려야 합니다.
한 번은 아이가 열이 나서 ER 갔다가,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열이 내려서 그냥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겨우 대기실을 빠져나와서 ER로 들어간다고 해도 그게 다가 아닙니다. 다시 의느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다른 일 다 마치고... 잠시 짬 날 때... 그렇게 들려주시는 의느님이기 때문에 여기서도 약 3~4시간 무작정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7~8시간 기다리고, 의느님 알현 10분 하고... 그렇게 끝입니다.
그래도 종합병원인 만큼 검사나 진찰은 철저하게 합니다. 특히 아이일 때는 더욱 더...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런저런 선도 꽂고, 피검사도 하는 등... 진찰에 시간을 많이 투자합니다.
그러니깐, 확실하게 안심하고 싶다... 라고 생각되면 이 기나긴 대기시간을 참고서라도 의느님께 한마디 들어야 하는 거죠...
그리고 이 진찰기록은 나중에 Family Doctor에게 다 연계가 되어서 기록에 남습니다. 나중에 다 참고자료로 쓰입니다.
캐나다에서 몸이 아프면 가야하는 곳 마지막입니다. 바로... Wife...
"자기야. 나 머리 아파"
"응. 타이레놀 먹어."
"자기야. 나 배 아파"
"응. 타이레놀 먹어."
"자기야. 나 다리 아파"
"응. 타이레놀 먹어."
"자기야... 왜 아픈 부위가 다른데, 왜 맨날 타이레놀이야? 여기가 군대도 아니고?"
"응. 빨간약 발라."
자. 지금까지의 캐나다 병원 시스템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상...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주관적인 캐나다 병원 시스템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