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염증날 때
당신이 울지 않았으면 참 좋겠다.
원구식 / 풀잎
난 네가 누군지 몰랐어
너는 햇살이었고, 바람이었고, 즐거운 충동이었지
너는 가루같은 물방울이었고, 춤이었고, 맑고 높은 웃음소리
항상 내게 최초의 아침이었어.
황강록 / 검고 푸른 날들
눈을 깜박일 때마다
시야로 너의 낯이 프레임처럼 필름으로 쌓였어
상영시간은 속절없는 나의 수명이었고
나는 너를 한 편 다 보고 나면
엔딩 크레딧이 되어 네게 달려갈 거야
시나리오처럼,
찬란한 영화처럼.
서덕준 / 엔딩 크레딧
예를 들면,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고 돌아온 날 밤
잠자리에 들어도 여전히 몸이 파도에 울렁이는 느낌
한낮의 해변에 드러누워 눈을 감아도 태양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
그런 식으로 너는 늘 내 안에 있었다.
에쿠니 가오리 / 선잠
너의 다정함의 온도는
36.5도를 넘기고
내게 화상을 입힌다.
김우석 / 다정함의 온도
소년이 늙어 노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소년은 늙어 늙은 소년이 되고
소녀도 늙어 늙은 소녀가 되는 것이다.
김영하 / 빛의 제국
너의 눈빛이 나를 관통한다
유성우가 내게 곤두박질친다
마주 잡은 손가락에 오작교가 놓인다
건너려야 건널 수가 없다
물병자리가 기울어 간다
이다지도 내게 너는 물어뜯는 입술이다
나는 문득 서러워진다.
서덕준 / 물병자리
너를 무척 좋아하니까.
너에 관한 모든 걸 알고 싶어.
무엇이 너를 너로 만들었는지 알고 싶어.
필립 로스 / 울분
언제라도 찾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서 있겠습니다
낯선 기분이 들지 않도록
모든 것은 제자리에 놓아두겠습니다
기별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대는 그저
돌아오기만 하십시오.
이정하 / 약속
언제나 가까이 네가 있어도
나는 네가 모쪼록 늘 궁금해서
네 기묘한 마음에 망원경을 들이댄다
사람 많은 곳에서도 네가 없으면
인적 끊긴 거나 다름없는 거
그러니 언제든 나 외롭게 홀로 두지 마.
올겨울엔 나, 당신에게
착한 일을 많이 했다고 주는 산타의 선물.
크리스마스에 받은 제일 기쁜 선물이 됐으면 좋겠어.
정유희 / 나라는 선물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가슴 곳곳에 대못질을 했다.
아빠는 내가 못을 박은 곳마다
나의 사진을 말없이 걸어놓곤 하셨다.
서덕준 / 사진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