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 대사관 담당자와 업무적인 미팅을 가졌다. 약 30분 남짓 짧은 미팅자리에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은 그녀의 패션이었는데 국가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으로서는 감히 시도하기 어려운 과감한 패션이 인상적이었다. 화려하고 굵은 꽃무늬 프린트에 에스닉한 굵은 동남아풍 반지, 그리고 패션디자인 회사에서나 볼법한 엄청난 굵기의 뿔테 안경과 귀가 떨어져나갈 것 같은 두꺼운 귀걸이, 그리고 징이 군데군데 박혀있는 높고 뾰족한 킬힐까지.. 미팅 말기에 슬쩍 그녀의 패션에 대해 ‘디자이너이신 줄 알았어요. 정말 멋지시네요’ 라고 칭찬 아닌 칭찬을 보냈다. 그러자 그녀는 내게 ‘굉장히 스탠다드한 포멀함을 지니셨다’ 며 이해하기 힘든 알쏭달쏭한 답변을 보내왔다. 어쨌든 그날 난 대화도중 계속 힐끔힐끔 그녀의 의상에 시선이 쏠려 업무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잘 메모하지 못했다.
이렇게 자신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된 여성들에 비하여 남성들은 전통적으로 여성에 비해서 자신을 꾸밀 수 있는 아이템이 많지 않다. 물론 요즘 들어 자신의 외형을 위하여 성형수술을 감행하거나 패션에 지대한 공을 들이는 메트로 섹슈얼 (Metro sexual) 틱한 남성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남성들은 여성에 비하여 자신을 꾸밀 수 있는 아이템이 극히 드물다고 볼 수 있다. 외모가 경쟁력인 최첨단의 시대를 살면서 너무 내 자신에게 무심한 것이 아닌가라는 자조 섞인 푸념(?)도 늘어놓아 보지만 어쨌든 귀찮은 것은 귀찮은 거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남성들은 여성에 비해 현란한 화장을 할 수도 없고 화려한 귀금속으로 자신을 치장할 수도 없다. 알록달록 프린트가 들어간 옷은 비즈니스맨에겐 절대 금기시되는 옷들이며 심지어 유교문화권에 있는 우리나라는 귀를 뚫거나 염색한 남성조차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나 역시 학창시절 반항 아닌 반항으로 어린 마음에 다양한 패션을 시도해 본 경험은 있지만 패션센스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인지 내가 나 자신을 봤을 때 그다지 멋져 보이지 않아 좌절했던 웃지 못할 기억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수많은 남성들 중 아주 일부는 이런 천혜의 악조건들을 딛고 소품 몇 가지와 간단한 스타일링만으로 자기 자신을 아주 스타일리쉬하게 잘 표현해내기도 한다. 스타일리쉬한 비즈니스맨이 되기 위해 당신이 필요한 5가지 아이템을 적어본다.
세계적인 팝스타이자 섹시심벌 마돈나는 ‘가장 섹시한 남성은 수트가 잘 어울리는 남자’ 라고 말했다. 그만큼 수트는 하루에도 수억 명이 입고 다니는 가장 대중적인 아이템이지만 어떤 수트를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비즈니스맨에게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아이템이다. 한국인의 경우 대부분 검은 색 수트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내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남색 계통(물론 본인에게 어울려야 함. 잘못 입으면 촌스러울 수 있음)의 수트도 상당히 고급스럽고 세련됨을 줄 수 있다.
백화점에서 로로 피아나나 브리오니 같은 수천만 원짜리 수트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펑퍼짐하고 입은 지 오래되어 맨들맨들해진 수트만 아니면 된다. 자신의 체형에 가장 잘 어울리는 단정한 수트 한 벌은 사회생활에서 당신의 이미지를 깨끗하고 점잖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기에 충분하다. 물론 나이트 웨이터풍의 소위 은갈치 양복이라 불리는 밝은 회색 수트나 서양인에 비해 키가 작고 팔다리가 짧은 한국인의 체형상 체크무늬 수트는 가급적 지양하길.. 하지만 수트는 입는 사람을 그야말로 파격적으로 바꿔주지 못한다. 옷이 날개란 말도 있지만서도. 이게 수트가 5위인 이유다. 그리고 넥타이는 가급적 끈 넥타이는 피하기 바란다. 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끈 넥타이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은데 목 언저리에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넥타이 끈처럼 보기 흉한 것도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회중시계가 아니다. 손목시계다. 남성 패션잡지에서 흔히 권장하는 만년필 이야기는 여기서 빼기로 한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패션전문가들은 와이셔츠에 수십만 원짜리 몽블랑 만년필을 꼽고 다니는 것이 당신의 이미지를 한 번에 바꿔줄 수 있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자칫 잘못하면 상대방에게 거만한 이미지를 줄 수 있고 건방지다는 생각마저 들 수도 있다. (실제로 그랬다. 수십억짜리 부자들도 그냥 플러스펜으로 서명하는 경우가 많다. 서명할 때 칼을 빼듯이 폼을 잡으며 몽블랑 빼 드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 보지 못했다)
현재 내가 차고 있는 세이코 트랙실버,
가격은 10만원 후반대이며 이 정도면 내게는 충분하다.
자신의 경제사정에 가장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손목시계를 하나 추천한다. (금색 시계는 주의할 것) 요즘은 시계 제조기술이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그리 높지 않은 가격에도 상당히 세련된 디자인의 시계들을 구매할 수 있다. 당신의 팔목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시계는 당신의 이미지를 한층 업그레이드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아참, 가죽밴드는 비추한다. 여름에 땀이 차면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살며시 드러난 수트 소매 끝간에서 반짝거리며 빛나는 커프스 단추만큼 고급스러운 디테일을 가지고 있는 물건이 또 있을까? 커프스는 아주 작은 투자만으로 당신이 대단히 예의 있고 세련된 사람이며 비즈니스에 있어 정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너무나 충분한 아이템이다. 커프스는 반드시 격식 있는 자리에서만 사용된다는 것은 편견이다. 얼마든지 자신의 수트를 더욱 업그레이드 시켜줄 수 있는 든든한 우군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2위는 안경이다. 안경이야말로 가장 전통적이며 투박스러운 아이템일 수 있지만 안경을 어떻게 착용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얼굴이 리디자인되는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흔히 안경이 잘 어울리는 사람을 안경미남이라고 하는데, 이토록 안경은 얼굴의 결점을 커버해주는 좋은 아이템이 된다.
참고로 안경은 뿔테, 은테, 무테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비즈니스맨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안경의 형태는 바로 하금테이다. 하금테의 경우 내가 가장 선호하는 안경테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수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안경테로 알려져 있다. 두꺼운 뿔테나 세련된 은테도 물론 좋지만 일반적으로 하금테는 다양한 얼굴형태에 고루 잘 어울리는 세련된 안경이다.
앞에서 열거된 4가지 아이템이 바꿀 수 있는 사람의 인상은 매우 제한적이다. 하지만 헤어스타일의 경우 어떤 스타일을 가져가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 것이 내가 단정하고 세련된 헤어스타일이 비즈니스맨의 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아이템이라고 꼽는 이유다. 만일 이 글을 읽는 이웃이 여성이라면 헤어스타일이 사람의 인상을 얼만큼 강력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몸이 1,000 냥이라면 간은 900냥이라는 모 제약회사의 CF 문구처럼 패션이 1,000냥 이라면 헤어스타일의 가치는 900 냥이다. 나머지는 그냥 부수적인 조건에 불과하다.
출처 : 비즈니스맨을 꾸며주는 아이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