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나하추(納哈出)가 군사 수만 명을 거느리고 조소생(趙小生)·탁도경(卓都卿) 등과 함께 홍원(洪原)의 달단동(韃靼洞)에 둔치고, 합라 만호(哈剌萬戶) 나연첩목아(那延帖木兒)를 보내어 여러 백안보하 지휘(伯顔甫下指揮)와 함께 1천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게 하여 선봉(先鋒)으로 삼았는데, 태조는 덕산동원(德山洞院)의 들에서 만나 쳐서 이들을 달아나게 하고, 함관령(咸關嶺)·차유령(車踰嶺) 두 재[嶺]를 넘어 거의 다 죽였으나, 군기(軍器)를 버린 것은 이루 다 셀 수 없었다. 이 날에 태조는 답상곡(答相谷)에 물러와서 둔치니, 나하추가 노하여 덕산동(德山洞)으로 옮겨서 둔쳤다. 태조는 밤을 이용하여 습격하여 이를 패퇴(敗退)시키니, 나하추가 달단동(韃靼洞)으로 돌아가므로, 태조는 사음동(舍音洞)에 둔쳤다. 태조가 척후(斥候)를 보내어 차유령(車踰嶺)에 이르니, 적이 산에 올라가서 나무하는 사람이 매우 많은지라, 척후병(斥候兵)이 돌아와서 아뢰니, 태조는 말하기를,
“병법(兵法)에는 마땅히 먼저 약한 적을 공격해야 된다.”
하면서, 드디어 적을 사로잡고 목 베어 거의 다 없애고, 스스로 날랜 기병(騎兵) 6백명을 거느리고 뒤따라 가서 차유령(車踰嶺)을 넘어 영(嶺) 아래에 이르니, 적이 그제야 깨닫고 맞아 싸우려고 하였다. 태조는 10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적과 맞붙어 그 비장(裨將) 한 사람을 쏘아 죽였다. 처음에 태조가 이곳에 이르러 여러 장수들에게 여러 번 싸워서 패배(敗北)한 형상을 물으니, 여러 장수들은 말하기를,
“매양 싸움이 한창일 때에 적의 장수 한 사람이 쇠갑옷[鐵甲]에 붉은 기꼬리[朱旄尾]로써 장식하고 창을 휘두르면서 갑자기 뛰어나오니, 여러 사람이 무서워 쓰러져서 감히 당적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였다. 태조는 그 사람을 물색(物色)하여 혼자 이를 당적하기로 하고, 거짓으로 패하여 달아나니, 그 사람이 과연 앞으로 뛰어와서 창을 겨누어 대기를 심히 급하게 하는지라, 태조는 몸을 뒤쳐 말다래에 붙으니, 적의 장수가 헛찌르[失中]고 창을 따라 거꾸러지는지라, 태조는 즉시 안장에 걸터앉아 쏘아서 또 이를 죽이니, 이에 적이 낭패(狼狽)하여 도망하였다. 태조는 이를 추격하여 적의 둔친 곳에 이르렀으나, 해가 저물어서 그만 돌아왔다. 나하추의 아내가 나하추에게 이르기를,
“공(公)이 세상에 두루 다닌 지가 오래 되었지만, 다시 이와 같은 장군이 있습디까? 마땅히 피하여 속히 돌아오시오.”
하였으나, 나하추는 따르지 않았다. 그 후 며칠 만에 태조가 함관령(咸關嶺)을 넘어서 바로 달단동(韃靼洞)에 이르니, 나하추도 또 진을 치고 서로 대하여 10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진 앞에 나오므로, 태조 또한 10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진 앞에 나가서 서로 대하였다. 나하추가 속여 말하기를,
“내가 처음 올 적에는 본디 사유(沙劉)·관선생(關先生)·반성(潘誠) 등을 뒤쫓아 온 것이고, 귀국(貴國)의 경계를 침범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내가 여러 번 패전하여 군사 만여 명을 죽이고 비장(裨將) 몇 사람을 죽였으므로, 형세가 매우 궁지(窮地)에 몰렸으니, 싸움을 그만두기를 원합니다. 다만 명령대로 따르겠습니다.”
하였다. 이때 적의 병세(兵勢)가 매우 강성하므로, 태조는 그 말이 거짓임을 알고 그들로 하여금 항복하도록 하였다. 한 장수가 나하추의 곁에 서 있으므로, 태조가 이를 쏘니, 시위소리가 나자마자 넘어졌다. 또 나하추의 말을 쏘아서 죽이니 바꾸어 타므로, 또 쏘아서 죽였다. 이에 한참 동안 크게 싸우니, 서로 승부(勝負)가 있었다. 태조가 나하추를 몰아 쫓으니, 나하추가 급히 말하기를,
“이 만호(李萬戶)여, 두 장수끼리 어찌 서로 핍박할 필요가 있습니까?”
하면서 이에 말을 돌리니, 태조가 또 그 말을 쏘아 죽였다. 나하추의 휘하(麾下) 군사가 말에서 내려, 그 말을 나하추에게 주어 드디어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해가 또한 저물었으므로, 태조는 군사를 지휘하여 물러가는데, 자신이 맨 뒤에 서서 적의 추격을 막았다. 영(嶺)의 길이 몇 층으로 꼬불꼬불한데, 환자(宦者) 이파라실(李波羅實)이 맨 아랫층에 있다가 급히 부르기를,
“영공(令公), 사람을 구원해 주시오. 영공, 사람을 구원해 주시오.”
하매, 태조가 윗층에서 이를 보니, 은갑옷[銀甲]을 입은 두 적장(賊將)이 파라실을 쫓아 창을 겨누어 거의 미치게 되었는지라 태조는 말을 돌려 두 장수를 쏘아 모두 죽이고, 즉시 20여 인을 연달아 죽이고는, 이에 다시 군사를 돌려 쳐서 이들을 달아나게 하였다. 한 적병이 태조를 쫓아 창을 들어 찌르려고 하므로, 태조는 갑자기 몸을 한쪽으로 돌려 떨어지는 것처럼 하면서 그 겨드랑을 쳐다보고 쏘고는 즉시 다시 말을 탔다. 또 한 적병이 앞으로 나와서 태조를 보고 쏘므로, 태조는 즉시 말 위에서 일어나 서니, 화살이 사타구니 밑으로 빠져 나가는지라, 태조는 이에 말을 채찍질해 뛰게 하여 적병을 쏘아 그 무릎을 맞혔다. 또 내[川] 가운데서 한 적장(賊將)을 만났는데, 그 사람의 갑옷과 투구는 목과 얼굴을 둘러싼 갑옷이며, 또 별도로 턱의 갑[頤甲]을 만들어 입을 열기에 편리하게 하였으므로, 두루 감싼 것이 매우 튼튼하여 쏠 만한 틈이 없었다. 태조는 짐짓 그 말을 쏘니, 말이 기운을 내어 뛰게 되므로, 적장이 힘을 내어 고삐를 당기매, 입이 이에 열리는지라, 태조가 그 입을 쏘아 맞혔다. 이미 세 사람을 죽이니 이에 적이 크게 패하여 달아나므로, 태조는 용감한 기병[鐵騎]으로써 이를 짓밟으니, 적병이 저희들끼리 서로 밟았으며, 죽이고 사로잡은 것이 매우 많았다. 돌아와서 정주(定州)에 둔치고 수일(數日) 동안 머물면서 사졸을 휴식시켰다. 먼저 요충지(要衝地)에 복병(伏兵)을 설치하고서 이에 삼군(三軍)으로 나누어, 좌군(左軍)은 성곶(城串)으로 나아가게 하고, 우군(右軍)은 도련포(都連浦)로 나아가게 하고, 자신은 중군(中軍)을 거느리고 송두(松豆) 등에 나아가서 나하추와 함흥(咸興) 들판에서 만났다. 태조가 단기(單騎)로 용기를 내어 돌진(突進)하면서 적을 시험해 보니, 적의 날랜 장수 세 사람이 한꺼번에 달려 곧바로 전진하는지라, 태조는 거짓으로 패하여 달아나면서 그 고삐를 당겨 그 말을 채찍직하여 말을 재촉하는 형상을 하니, 세 장수가 다투어 뒤쫓아 가까이 왔다. 태조가 갑자기 또 나가니, 세 장수의 말이 노(怒)하여, 미처 고삐를 당기기 전에 바로 앞으로 나오는지라, 태조는 뒤에서 그들을 쏘니, 모두 시위소리가 나자마자 넘어졌다.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며 싸우면서 유인하여 요충지(要衝地)에 이르러, 좌우(左右)의 복병이 함께 일어나서 합력해 쳐서 이를 크게 부수니, 나하추는 당적할 수 없음을 알고 흩어진 군사를 거두어 도망해 갔다.
은패(銀牌)와 동인(銅印) 등의 물건을 얻어서 왕에게 바치고, 그 나머지 얻은 물건들은 이루 다 셀 수도 없었다. 이에 동북 변방이 모두 평정되었다. 후에 나하추가 사람을 보내어 화호(和好)를 통하여 왕에게 말[馬]을 바치고, 또 하나와 좋은 말 한 필을 태조에게 주어 예의(禮意)를 차렸으니, 대개 마음속으로 복종[心服]한 때문이었다. 나하추의 누이[妹]가 군중(軍中)에 있다가 태조의 뛰어난 무용[神武]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또한 말하기를,
“이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겠다.”
하였다. 환조(桓祖)가 일찍이 원(元)나라 조정에 들어가 조회할 때에 도중에 나하추에게 지나가면서 태조의 재주를 칭찬하여 말하였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나하추가 패전하여 돌아가서 말하기를,
“이자춘(李子春)이 지난날에 ‘내가 재주 있는 아들이 있노라.’고 하더니, 과연 거짓말이 아니었다.”
하였다. 명(明)나라 홍무(洪武) 9년(1376) 병진 겨울에 이르러 가 개성 윤(開城尹) 황숙경(黃淑卿)을 보내어 가서 교빙(交聘)하니, 나하추가 말하였다.
“내가 본디 고려와 싸우려고 한 것이 아닌데, 이 나이 젊은 을 보내어 나를 쳐서 거의 죽음을 면하지 못할 뻔하였소. 이 장군께서 평안하신가? 나이 젊으면서도 용병(用兵)함이 신(神)과 같으니 참으로 천재(天才)이오! 장차 그대 나라에서 큰일을 맡을 것이오.”
[註 21]비고(鞞鼓) : 적을 공격할 때 두드리는 말 위에 메운 북.
[註 22] 신우(辛禑) : 우왕(禑王).
[註 23] 백안첩목아왕(伯顔帖木兒王) : 공민왕(恭愍王).
[註 24] 이 장군(李將軍) : 태조
위 내용은 조선왕조 실록 중 갓 20세가 된 이성계 장군과 나하추와의 전투이야기입니다. 개인적으로 전투씬들은 거의 이성계 장군을 무신급으로 묘사했습니다. 좀 과장된 면도 있고 태조인 이성계 장군을 미화시키기도 한 거라 생각이 듭니다.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거의 무협소설같습니다. 읽으면서도 재미가 있죠.
이 이야기 중에 전술적인 부분이 함관령(咸關嶺)·차유령(車踰嶺)에 관한 것인데요. 이성계 장군은 먼저 꼭 지켜야 할 2재 중 하나인 함관령을 내주고 나중에 적군을 차유령에서 기습공격을 했다는 내용 같습니다. 솔직히 단어들이 어렵죠. 이거 자세히 아시는 분은 설명해주면 좋겠네요. 특히나 나하추가 용병의 신이라고 찬사했는데 이 전투의 전술적인 특징과 자세한 설명이 좀 아쉬워서요. 이거 이미 다 해독하신 분도 있을 수도 있구요. 자세한 설명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 전투의 전후 사정의 배경지식을 설명을 더 해주셔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