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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즉문즉설] 청년 수행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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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medIUm
추천 : 0
조회수 : 136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2/24 02: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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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스님은 청년정토회와 청년포럼에서 활동하는 청년활동가 150여 명과 함께하는 송년 만남에서 “청년 수행자의 삶”을 주제로 법문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이 “청년 수행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주제로 입재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청년 활동가들은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그동안 활동에 묻혀 잊고 있었던 수행자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애정이 담긴 격려 말씀을 속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며 모두 기뻐했습니다. 

 


 

“직장 다니랴, 결혼하신 분들은 가정생활 하랴, 청년활동 하랴, 다들 바쁜 한 해를 보냈을 것 같습니다. 


활동하느라 용돈의 대부분은 교통비로 쓰지 않았나 싶어요. 활동하다 보면 


‘이렇게 바쁜데다 경비까지 드는 생활을 할 필요가 있나? 나한테 무슨 이익이 있나?’ 


이런 회의도 들 수 있을 겁니다. 


사회에서는 시간을 내서 강의를 듣거나 어떤 활동을 하면 모두 취직이나 수입과 연결되는데, 


우리의 활동은 수입과도 관계가 없고, 취직할 때 경력이 되지도 않고, 


지금은 물론 나중에도 장기적인 이익과 크게 연결되지도 않아요. 

 

일반 종교 활동은 이생에서는 이익이 안 돼도 다음 생에는 천국이나 극락에 태어난다는 이야기라도 하니까 


내생의 이익을 얻기 위해 이런 손실과 희생을 감수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 청년포럼과 청년정토회에서는 내생이나 사후의 이익을 준다는 이야기조차도 안 해요. 


소위 이익을 따져보면 아무리 봐도 밑지는 장사이기 때문에 왜 해야 하느냐는 회의가 간간이 들 수 있어요. (모두 웃음) 

 


 

게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라고 합니다. 


자본, 즉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가치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는데, 


인류 역사 전체와 인간 존재를 잘 살펴보면 돈으로 삶의 가치 기준을 평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정말 돈만 있으면, 혹은 지위만 높으면 행복하다고 할 수 있고, 죽을 때 ‘후회 없이 살 만큼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지금 그걸 향해서 줄달음질치는 것이 이해는 됩니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 주변 사람들은 물론 


현대 사회 전체가 그러니 우리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해는 되지만 


‘정말 그런가?’ 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해요.

 

그런 면에서,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관점이 잡혀야 


이런 활동을 하면서 좀 힘이 들어도 회의가 안 들어요. 


그런데 이게 안 잡히면 죽을 때까지 회의에 시달립니다.

 

지금 와 있는 150여 명 중 재벌집 자녀는 한 명도 없죠? 출신 지역은 다양하지만 재벌집 자녀는 없어요. (청중 웃음) 

 


 

그런데도 우리는 재벌의 이익이 보장되는 사회 시스템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길거리에서 머리에 띠 두른 채 항의하는 사람들과 그 이해가 같지만, 


정작 우리는 그건 배제하고 예컨대 TV 탤런트 아무개가 강아지를 어떻게 했다거나 


누구와 연애했다거나 재벌 집안의 누가 어떻게 했다는 데에 더 큰 관심을 둬요. 


우리 가족이나 나와 실제로 관계되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거예요. 


연속극을 봐도 부잣집에서 형제간에 싸우거나 복잡하게 얽힌 연애에 관련된 내용을 많이 보잖아요. 


내 삶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기득권자들의 가치관에 세뇌되어 있어요. 


조선시대에 평생 종으로 세뇌되어 살다 보니 나이가 쉰 살을 넘어도 열 살짜리 아이에게 


‘도련님, 도련님’ 하며 모시는 것과 같아요. 


덩치 큰 코끼리도 훈련이 되면 자기보다 훨씬 작은 아이 앞에서 맥을 못 추잖아요. 


이런 면에서 우리가 어떤 변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그러려면 현실을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울분이 있어야 변화의 동력이 생기는데, 


울분을 가지면 내가 괴롭고, 변화를 시도하다가 안 되면 지치게 된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먼저 여러분들이 지금 살 만하다는 것을 자각하라고 가르치는 거예요. 


러면 행복도는 높아지는데, 이것의 맹점은 사회의 모순을 변혁할 생각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수행과 사회 변화가 자꾸 분리돼요. 

 




그래서 첫째, 우선 나부터 좋아야 합니다. 


세상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으니 우선 내가 내 가치관을 조절해서 내 행복도를 높여야 해요. 


예컨대 지금까지는 부모님이 내가 원하는 대로 안 해준다며 미워하고 갈등했는데,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것만도 고맙다고 생각하면 일단 내 행복도가 높아집니다. 


이렇게 수행을 먼저 해야 해요. 

 


 

그런데 이렇게 해서 전보다 행복해졌으니까 그냥 이대로 살면 되는 건 아닙니다. 


일단 수행을 통해 내 괴로움을 덜었다면 이제는 이렇게 관점을 바꾸는 것을 우리 주위에 전파해서 


자살하는 사람도 막고, 괴로워하는 사람도 우선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줘야 해요. 


이게 전법이에요. 정토회는 이 일을 하고 있죠. 

 




그런데 또 이것만 해서 된다고 하면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모순을 변화시킬 가능성을 막아버릴 수 있습니다.


 사회적 모순을 온존시키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될 수 있어요.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지만 마음공부만 하면 된다는 쪽으로 가면 사회의 모순을 외면하는 결과가 빚어지게 됩니다. 


그런 데서 우리는 사회적인 변화도 함께 도모해야 합니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은 변화를 거부하지만, 그 구조 속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은 


그 변화가 오히려 기회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변화를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 변화를 두려워하면서 이 안정된 시스템 안에서 


좀 더 나은 직장에 들어가는데 온통 몰두 되어 있다는 겁니다. 


모든 국민이 균등한 발전을 도모하도록 헌법에 명시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 사회가 균등한 발전을 하도록 변화도 함께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만으로 표출하게 되면 내가 괴로워집니다.


 모르고 살 때보다 이런 모순을 알고 나서 더 괴로워지게 됩니다. 


수행을 이야기하는 이유이런 변화를 추구할 때도 분노 없이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해나가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사회 변화를 ‘일’이라고 표현하고,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것을 ‘수행’이라고 표현해서, 


정토회는 ‘일과 수행의 통일’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기성사회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보다 우리가 더 행복해야 경쟁력이 있습니다


아무런 사회의식도 없고 수행도 모른 채 결혼해서 사는 사람들보다 


이렇게 잠 안 자고 밤낮으로 쫓아다니는 내가 더 행복해야 해요. 

 

제 경쟁력은 제가 더 행복하다는 데 있지, 제가 얼마나 더 재주가 뛰어나냐에 있지 않습니다. 


저는 나이 들었지만 젊은 여러분보다 더 행복하고, 혼자 살지만 결혼한 사람보다 더 행복해요. 


건강이 좀 안 좋지만 건강한 사람보다 행복하고, 해외에 나갈 때는 공항에서 침낭 펴놓고 자지만 


호텔에서 자는 사람보다 더 행복합니다.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경쟁력은 제가 행복하다는 거예요. (청중 박수) 

 


 

내 문제가 괴롭다며 울고불고하지도 않고, 남한테 도와달라고 부탁도 하지 않고, 


돈 없어서 죽겠다고 정부나 부자들에게 빌지도 않아요. 


오히려 대기업에서 지원 제의를 해도 합당하지 않으면 거절하고, 


지금은 정부 프로젝트도 일절 안 하고 지원도 안 받잖아요. 


사람이 살면서 굳이 남 앞에서 엎드려 빌며 살 이유가 없잖아요. 


상대가 돈이 많으면 많은 거고, 지위가 높으면 높은 것일 뿐이에요. 


돈 많거나 지위 높다고 배척하자는 게 아니라, 그 앞에 머리 숙이고 구걸할 이유가 없다는 거예요. 


두 사람이 결혼해서 사는 건 두 사람 문제지, 그게 부럽지 않아요. 혼자 사는 제가 더 행복하니까요. 


게다가 그 둘이 싸워대는 걸 제가 늘 보고 있잖아요.” (청중 웃음)

 




내가 행복한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이라는 스님의 말씀에 청년들은 큰 박수를 보내며 공감을 했습니다. 이 말씀보다 더 큰 희망을 주는 이야기가 또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정토회는 열려 있는 곳이라고 하면서 통일 운동도 또한 그 가능성이 활짝 열려있는 활동임을 강조했습니다. 오늘 모인 청년들은 모두 자원봉사로 이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데, 때론 이익되는 것이 없는 것 같아 회의가 들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더 길게 내다볼 수 있게 안내해 주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가난해도 뭔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어요. 


지금 여러분들은 먹고 살만하지만, 앞이 좀 막혀 있어요. 


비유한다면 정토회는 지금 셋방 얻어서 하고 있지만, 활짝 열려 있어요. 


정토회 자체의 발전도 열려 있고, 사회적인 영향력에도 열려 있고, 미래 문명에도 열려 있으니까 


여러분 같은 젊은이들이 그래도 정토회에 제일 많이 모여들잖아요. 


기성 불교 단체에서는 청년들이 이만큼 안 될 겁니다. 


미래에 열려 있지 않기 때문에 젊은이들 입장에서는 기성사회가 답답하듯이 절에 와도 답답하거든요. 

 


 

남한 안의 발전도 이처럼 지금은 거의 닫혀 있어요. 


옛날에는 남한 안의 발전도 열려 있었지만, 지금은 성장동력이 거의 끝났기 때문에 닫혀 있어요. 


그런데 통일이라고 하는 문제는 열려 있잖아요. 


물론 통일 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혼란이 있겠죠. 


우리도 지금까지 발전해오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혼란이 있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열려 있는 공간이에요. 

 




그리고 한국과 일본과 중국이 협력하는 동아시아 공동체도 열려 있습니다. 


중국과 미국이 갈등하는 가운데 미국 편에 붙은 일본이 중국과 갈등하고 


또 우리가 그사이에 낀 현재의 구도 그대로 닫혀버리면 동아시아의 상황은 


100년 전 1, 2차 세계대전을 거칠 당시의 유럽과 비슷해요. 


각국이 발전은 이루었지만 서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과거 역사를 보고 반성한다면 우리도 꼭 그런 과정을 거친 뒤에야 지금의 EU처럼 협력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다 잃고 다 죽은 뒤에야 반성해서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는 그 선례를 타산지석 삼아 지금부터 협력으로 가는 게 낫잖아요.

 

단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북한의 통일을 두고 우리가 일본과 중국과도 협력하는 이런 열린 공간을 가져야 해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일본에 가서 한일 간에 민족을 뛰어넘어 협력하자고 설득할 때 모순이 생겨요. 


제 민족이자 형제인 북한은 원수로 놔둔 채 이웃 나라 사람과는 벽을 넘어 손을 잡자고 말하는 것은 


무의식 세계에 늘 모순을 남깁니다. 

 


 

그것은 마치 부모님을 욕하면서도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 마음이 무거운 것과 같습니다. 


감정적으로는 부모를 미워하지만, 한편으로는 은혜도 입었기 때문에 그 두 가지가 늘 상충하는 거예요. 


얼굴을 보면 싸우고 돌아서면 후회하기를 늘 반복하잖아요.


떨어져 있으면 안 부딪혀서 편하면서도 뭔가 잘못한 것 같고, 잘하겠다고 다시 갔는데 얼굴만 보면 또 부딪쳐요. 


이럴 때는 부모님께 감사 기도를 해서 이걸 풀어버려야 이 모순에서 여러분들이 해방될 수 있습니다. 

 

그것처럼 남북관계를 풀어야 동아시아 공동체로 나아가서 아시아의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양에 대한 열등의식이 있어요. 미국과 협력해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처럼 좋은 점도 있지만 


차별당하면서 생긴 열등의식도 있는데, 


우리가 이 문명의 중심이 되면 이 인종적, 문명적인 열등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우리가 죽을 때까지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이왕 하는 김에 그런 꿈을 향해 가다가 죽는 것도 괜찮아요.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많은 분이 저와 함께 그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나이 때였던 29살에 제가 한국에서 그동안 하던 걸 접고 미국 갔다가 다시 들어왔는데 


그때 우리는 새로운 꿈을 꾸었어요. 제가 지금 63살이니까 30년 전이죠. 


지난 30년을 돌아볼 때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출세의 길로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제 경우에는 승려라는 조건에서 종단의 높은 자리에 간들 무슨 희망이 있고 무엇을 하겠느냐는 거예요.


 그러나 정토회는 지금 규모는 작지만 어쨌든 가능성이 열려 있어요. 

 


 

여러분들은 지금 당장 먹고살아야 하니 직장도 다녀야 하고 결혼도 해야죠. 


그걸 하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그러나 그것만으로 자기 인생을 정하면 답답해진다는 겁니다. 


그것만 하면 행복해진다면 왜 사람들이 제게 와서 이렇게 상담을 하겠어요? 


다 자기가 바라는 걸 끝까지 했는데도 말이죠. 그걸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거기에만 몰두하지 말라는 겁니다. 


아예 그만두고 저와 함께 이 일을 해보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먹고 사는 문제에는 에너지의 80퍼센트 정도만 사용하되 


한 20퍼센트는 여력을 내어 우리의 꿈과 미래의 가능성을 함께 만들어나가자는 것입니다. 

 




저도 20대 말, 30대 초에 사회운동을 했어요. 


그러다 1987년을 겪으면서 ‘이것만 가지고는 안 되겠다, 다른 가능성을 좀 열자’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함께 일하는 사람 중에 10%에 해당하는 서너 명을 아예 분리해 연구소를 차렸습니다. 


1년의 시간을 줄 테니 자유롭게 우리 사회를 새롭게 조망해보고 문제 제기를 해라, 


그렇게 단호하게 분리한 것은 미래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 연구소에서 1년간 연구해서 제출한 결과에 따르면 


사회의 민주화도 과제지만 지구적으로는 환경문제가, 인류적으로는 빈곤퇴치 문제가, 


세계적으로는 평화 문제가, 우리 민족적으로는 통일 문제가 있어요. 


또 2~30년 전 당시에는 스웨덴, 핀란드 같은 나라가 세계에서 자살률이 제일 높았어요. 


지금은 많이 떨어지고 우리가 제일 높아졌지만요. (모두 웃음) 

 


 

우리가 볼 때는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가 왜 이렇게 자살률이 높은지 연구해본 결론은 


환경만 바꾼다고 인간이 행복해지는 게 아니고 수행이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치를 네 개로 잡은 거예요. 


지구적으로는 환경, 인류적으로는 빈곤 퇴치입니다. 또 평화가 있어요. 


빈곤만 퇴치해서 되는 게 아니라 이념 때문에 싸우는 것도 멈춰야 하니까요. 


이걸 우리 민족에 적용하면 평화와 통일입니다. 


그 다음이 개인적으로는 수행이에요. 


그래서 ‘정토행자의 서원’에 자아 상실, 공동체 붕괴, 지구 환경 파괴라는 문구가 나온 겁니다. 


여러분들은 별생각 없이 읽고 넘기지만 이게 우리가 30대였던 30년 전에 이미 문제의식을 가졌던 결과물이예요.

 

그래서 이 문제를 풀 방안을 고민한 끝에, 


지금까지 우리가 해오던 사회 민주화 운동은 사회의 담당 주체에게 맡기고, 


우리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겠다고 해서 정토회를 창립했어요. 


정토회를 창립하면서 원래 민주화 그룹에서 분리되어 나왔을 때 같은 활동을 하던 사람들과 후배들에게 


‘드디어 스님이 종교인의 본색을 드러냈다’며 엄청난 비난을 받았어요. 


그때는 투쟁의 형태가 아니면 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보면 투쟁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은 


국회의원이 되었든 사업가가 되었든 변호사가 되었든 모두 사회에서 하루하루 먹고사는 길로 흘러가 버렸어요. 


그때 남았던 소수의 사람이 정토회를 이루었고, 그것이 발전해 지금 이 정도 된 겁니다. 


당시에 비난했던 사람들이 30년 지난 지금은 ‘아, 운동을 포기한 게 아니었구나’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세상의 변화를 보고 준비해 나간 거예요. 

 

지금 우리가 하는 게 무모할지 모르지만, 또 10년, 20년 지난 뒤 보면 


‘아, 그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준비였구나’라고 알 수 있겠죠. 




20년 후면 저는 80대가 되니 사회의 주역이 아니지만, 지금 20대 30대인 여러분들은 50대니까 사회의 주역이 됩니다. 


사회의 주역이 되었을 때 평범한 시민으로서 역할을 다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결국은 여러분들 중에서 정치인, 행정관료, 교수 같은 사회 여러 분야의 지도자들이 나와야 해요. 


지도자가 되기 싫어도 20년 지나면 나이에 밀려서 저절로 지도자가 됩니다. 


솔직히 여기도 정토회 다니다 보니 자기가 잘나서가 아니라 밀려서 저절로 팀장 됐잖아요. (청중 웃음) 

 


 

그렇게 지도자가 되었을 때 지도자의 자질이 없으면 발전을 막을뿐더러 본인도 부담돼서 힘들어요. 


여러분들이 정토회 올 때는 내가 힘드니까 공부 좀 하려고 왔지 처음부터 활동가 되려고 온 사람은 별로 없어요. 


그런 데 있다 보면 저절로 활동가가 됩니다. 


지금은 ‘내가 무슨 지도자가 되겠어’라고 하지만 정토회에 계속 있으면서 활동하다 보면 


20년 뒤에는 우리 정토회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돼요. 


이렇게 새로운 미래, 새로운 문명을 준비하고 대비하는 단체가 없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좋으나 싫으나 지도자가 됩니다. (모두 웃음) 

 




그러니 지금 지도자의 자질을 좀 갖춰야 해요. 


지금 살기도 바쁜데 왜 쓸데없이 20년 뒤를 대비한 공부를 해야 하나 싶겠지만, 


지도자가 되려면 자기 수행도 좀 되어야 하고 세상에 대해서도 


사회 전문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넓게 알아서 사회의식을 갖춰야 합니다. 


농사를 짓더라도 농촌에서 지도자가 되려면 다른 농민들보다 좀 더 많이 알아야 해요. 


그 그룹에서 다른 사람보다 좀 폭이 넓어야 지도자가 될 거 아니에요. 


그래야 어떤 창의성도 나오고 사람들도 아우를 수 있어요. 


지금까지는 혼자 좋을 대로 하고 살아온 삶이었지만, 


이렇게 사람끼리 늘 찌그럭대며 부딪치고 싸우는 가운데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됩니다. 


안 떨어져나가고 남아 있으면 점점 인식의 폭이 넓어지고 사람과의 관계의 폭도 넓어져요. 


자기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상대의 꼬라지 보는 것을 못 참아서 여기에 있기 힘들잖아요. (모두 웃음) 

 


 

그러면 결국 떨어져 나가서 지도자가 안 되는 거예요. 


어떻게든 붙어있다는 건 저절로 인식이 넓어지고 영향력이 커진다는 뜻입니다. 


활동가 되기를 의도하지 않았지만 활동가가 되듯이, 여러분들이 이 그룹에 속해 있다면 


시간이 흘렀을 때 지도자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제 말에 동의가 되시나요?” 

 



“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지금 지도자 훈련을 하고 있는 셈이에요. 


지도자라고 사람을 콕 집어 뽑아서 ‘지도자는 이래야 한다’고 가르치는 훈련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지지고 볶고 살면서 안 떨어져 나가고 남는 게 자연스럽게 지도자가 되는 길이에요. (청중 웃음과 박수) 

 


 

여러분들이 어디 가서 불교대학생 10명을 통솔하는 반장을 해보겠어요? 


그럴 수준이 안 되는데 지금 억지로 밀려서 반장 맡았잖아요. 


나가떨어지지만 않고 계속하다 보면저절로 자기보다 나이도 많고 경험이 많은 사람들을 


내가 반장으로서 관리할 수 있게 됩니다. 


하다 보면 당연히 힘들지만, 힘들어야 배우는 게 있습니다. 


땀 흘리며 운동을 해야 근육이 생기지, 편안하게 누워만 있으면 운동이 안 되잖아요. 

 

여러분들이 힘들어하는 그 상황을 보면 안쓰럽지만 제가 도와줄 의향이 별로 없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그게 여러분한테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가 늘 ‘떨어지지만 말고 붙어만 있어라’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적극적으로 하면 더 좋겠지만, 그리 못 하더라도 최소한 떨어지지만 마세요. 


‘깨달음의 장’도 가서 적극적으로 깨닫겠다고 나서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붙어만 있어도 5일 지나면 도움이 돼요? 안 돼요?”

 



“돼요.” (청중 큰 소리로 대답) 

 


 

“그건 경험해서 알아요?”

 



“네!”

 



“그거랑 똑같아요. 붙어만 있으면 자기에게 도움이 돼요. 


우리의 길은 비전이 있는 길이기 때문에 여기에 있으면서 배우고 성장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왕 자기에게 도움이 돼서 안 나가고 여기에 붙어 있을 바에는 


억지로 하는 것보다 조금 적극적으로 하는 게 나아요. 그러는 편이 본인 기분도 좋아지고요. 


수행이라고 하는 것도 지금 사회적 수요가 어마어마합니다. 


그런데 통일을 이루고 사회를 변화시킬 필요성도 우리 사회에 지금 수요가 많아요. 


어떤 새로운 세력이 나와서 한국 사회의 변화를 위한 희망이 되어주기를 모든 사람이 바랍니다. 


그런데 개인이든 집단이든 아무도 안 나오고 있죠. 


이때 젊은이들이 사회의식을 가진 데다 수행까지 되면 큰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이런 수요가 열려 있다는 겁니다. 


사회적인 진출도 그냥 개인이 욕심으로 하면 막혀 있어서 소위 흙수저에 그치지만 흙수저가 뭉치면 금수저가 됩니다. (청중 모두 감탄, 웃음과 박수)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크게 보세요. 힘든 건 사실이니 인정합니다. 


그러나 힘이 들어야 훈련이 됩니다. 


군대에서 일부러 사다리를 오르고 장애물을 넘도록 시키는 것도 힘이 들어야 훈련이 되기 때문입니다. 


힘이 드는 건 당연한 거예요. 이걸 이겨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들의 활동이 무엇이든 도움이 되려면 우선 매일 수행정진해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자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게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거예요. 




다음으로 여러분들이 이런 비전을 가져야 해요. 


회사에서 승진하는 게 비전이 아니에요. 승진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건 그것대로 올라가더라도 여러분들의 비전은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사회처럼 더 큰 곳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게 지금 당장은 회사에 별 도움이 안 돼요. 


직장 상사들에게 잘 보이고 프로젝트 열심히 하는 게 더 눈에 띄는 도움이 됩니다. 


러나 지금 대기업들도 20년 뒤에는 기업 자체가 존속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변화의 때는 언제 올지 몰라요. 그때 여러분은 그 변화에, 새로운 길에 동참해야 합니다.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기업도 사회도 어떤 변화를 추구하려면 젊을 때 변화를 추구했던 사람이 필요해요. 


그래서 장기적으로 보면 지금의 활동이 기성 사회에서도 별로 손해 볼 일이 아닙니다. 


다만 당장은 학습비가 들어야 하니 단기적으로는 손해일 수 있지만요. 


그러니 너무 ‘지금’만 쳐다보지 마세요.


앞으로 우리에게 전개되는 미래는 안주가 아닌 변화가 기회입니다. 


새로운 세상의 변화에 우리가 미리 대비해 나가는 거예요. 


많은 사람이 다 좌절하고 절망할 때 여러분들은 오히려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이끌어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방향을 잡아 나아가기 바랍니다.”

출처 http://m.jungto.org/view.php?p_no=74&b_no=71435&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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