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이성을 마비시킨 집단최면의 주술, 쇠말뚝
게시물ID : history_76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etraisol
추천 : 5/4
조회수 : 155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2/18 09:50:32

나른한 주말 오후에 네이트온 메인을 보다가 잠을 확 깨게 만드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일제 끊은 기맥을 뚫어라..안양 삼막계곡서>

 기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야말로 말도 되지 않는 광대놀음을 검증된 사실인양 기사화해준 것이다. 소위 일제 쇠말뚝에 대한 신화는 여태껏 주요언론까지도 무비판적으로 반복을 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객관적 검증은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태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일제 쇠말뚝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는『월간 말』지의 「이성을 마비시킨 집단최면의 주술, 쇠말뚝」(2005.12)를 발췌요약하여 소개할 것이다.

 위의 기사에도 나오고 있지만, 쇠말뚝과 관련하여 언론에 이름이 가장 자주 회자되는 사람이 바로 민족정기선양위원회의 소윤하 회장이다. 그에 따르면 일제 쇠말뚝 신화의 유래는 일제 사령관이었던 야마시타 도모유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 사령관이었던 야마시타 도모유키가 처형당하기 전에 조선 땅 전역에 모두 365군데의 혈침을 박았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그의 통역관으로 일했던 신세우라는 사람이 직접 들었다는군요. 이 사람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쇠말뚝을 뽑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신세우씨의 아들인 신동식이라는 사람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와 같은 소윤하 회장의 증언은 1999년『신동아』8월 호에 「일제의 '쇠말뚝 풍수침략' 은 고도의 심리전이었다」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바 있으며 이 기사에서는 신세우와 야마시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영어가 유창했던 신세우씨는 전범재판 때 야마시타 등 일본군 장성들의 변론을 맡기도 했다. 재판 2심에서 야마시타는 세우씨의 변론 덕에 총살형에서 교수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사체나마 깨끗이 보존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 선고 며칠 뒤 야마시타는 감옥에서 죽기 직전 은인인 세우씨에게 놀라운 비밀을 고백했다고 한다. 한반도 산 곳곳에 혈침을 박아놓았다는 것과 수탈한 보물들의 행방에 관한 것 등이었다."

 하지만 월간 『군사세계』의 김능화 논설위원이 전범재판기록 등 역사적 사료를 분석해 작성한 「야마시타 육군대장의 최후」라는 글에 따르면, 야마시타의 통역관은 '하마모토' 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일본인이었으며, 1946년 당시엔 A급 전범 일부만 극형인 교수형을 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물론 야마시타의 변호인단에 조선인 통역관이 포함되었다는 이야기도 어불성설이다. 당시 변호인단은 승전국인 미군 장교들이 맡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윤하 회장의 증언은 그것을 사실로 간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야마시타의 풍수침략설에 근거하여 남해안의 무인도인 백도에서 1984년 일본이 명성황후 시해를 도모하기 위해 가토마루 소장을 시켜 백도에 박아놓은 쇠말뚝-1936년에는 야마시타가 상부의 지시를 받아 혈침 12개를 더 박았다고 한다-을 뽑았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연대측정을 제시한다.

 "해안 절벽에 매달려 26개의 쇠말뚝을 뽑았지요. 28개를 찾았는데 두 개는 무인등대의 물탱크 안에 박혀 있어 아직도 뽑지 못하고 있습니다. 백도에서 뽑은 쇠말뚝은 서울대에 연대측정을 의뢰했는데, 일제 시대 것이 맞았습니다."

 "방사성 탄소연대측정 결과, 탄소의 연대가 3만 년으로 나왔어요. 3만 년이라는 것은 석탄이라는 이야기거든요. 일제시대에 우리 측은 숯을 사용해 쇠를 제련한 반면, 일본은 석탄을 사용해 쇠를 제련했습니다. 결국 일본에서 제련한 쇠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박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지요."

 해방 이후 한국에서 석탄을 이용해 제련한 철의 존재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소 회장이 연대측정을 의뢰한 서울대 AMS 연구실 윤민영 박사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2001년 쯤에 그런 의뢰를 받은 적이 있는데 연대측정을 할 수 없었습니다. 탄소를 추출해 연대를 측정하려고 했는데, 당시의 쇠말뚝은 연철로 탄소량이 극히 적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최근 공업적으로 제강된 철, 즉 화석연료를 통해 만들어진 철은 탄소연대 측정이 거의 불가능하지요. 가령 조선 전기 이전에 숯 등으로 제련된 철일 경우 거기에 함유된 탄소를 통해 연대 측정이 가능하지만, 용광로에서 녹여 만든 철일 경우 연대측정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와 더불어 윤 박사는 "현재까지 알려진 방법으로 쇠말뚝이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것인지 그 이후에 만들어진 것인지 구별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희박하다" 면서 "굳이 연대를 측정하려면 쇠말뚝에 포함된 다른 불순물을 분석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마저도 쉽지는 않을 것" 이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결국 소윤하 회장은 자신의 사이비 과학을 옹호하기 위해 과학의 이름을 빌려 거짓증언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문화재연구소 연대 측정실 이현주 연구원의 이야기 역시 정확한 연대측정의 어려움과 함꼐 소윤하 회장의 거짓증언을 드러내주고 있다.

 "안 그래도 쇠말뚝과 관련해 문화재청이나 관련 단체에서 문의전화가 와서 몇 차례 답변한 적이 있어요. 그러나 실제로 연대 측정을 해본 사례는 없습니다. 다만 쇠말뚝의 연대를 측정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연구소의 장비로는 불가능합니다. 서울대 AMS 연구소라면 가능할지 모르겠는데요. 물론 쇠말뚝 하나만 가지고 곧바로 연대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구요. 사학자나 고고학자 등과 공동연구를 해야 가능하겠지요."

 이연구원 역시 난색을 표명한 셈이었다. 미술사학 등의 뒷받침 없이 탄소성분만으로 쇠말뚝의 연대를 추정하기 곤란할 뿐만 아니라, 오차범위가 50년이나 되는 만큼 일제시대 것이냐 그 이후의 것이냐를 판가름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최종적으로, 쇠말뚝과 관련된 여러가지 가설들은 '기억과 증언' 에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무비판적으로 언론에서 다루어져서는 안되는 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나온 기사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언론사의 기사는 단순한 도시전설 수준의 소문을 검증된 사실인양 보도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할아버지에게 들었다" 는 말 한마디에 어떤 쇠말뚝은 일제의 소행으로 결론 내려지고, "내가 그랬다" 는 말 한마디에 어떤 쇠말뚝은 무속인의 소행으로 판가름났던 것이다. 물론 증언에도 설득력 있는 증언이 있을 수 있으며, 다수의 중복증언이 뒷받침된다면 그만큼 증언의 신빙성은 높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소윤하 회장이 50여개의 쇠말뚝을 발굴하였고 "동네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남한산성 인근의 주민들은 쇠말뚝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 경우에 KBS 아침뉴스에 출연해 쇠말뚝이 일제의 소행임을 증언하였던 유일한 증언자는 남한산성 북문 인근에서 마트를 운영하고 있는 김병갑씨인데 그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제 나이가 쉰한 살인데, 30년도 훨씬 더된 이야기에요. 당시 동네 어르신들이 일제시대에 맥을 끊기 위해 일본사람들이 쇠말뚝을 박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단지 그렇게 들은 내용을 (KBS 측에서) 말해 달라고 해서 이야기해 줬을 뿐이에요.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는 아니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몇몇 분들만 알고 있는 이야기지요. 구체적으로 누가 언제 어디서 그랬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없고, 동네 어르신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얼핏 들었을 뿐입니다."

 결국, 남한산성에서 발견된 쇠말뚝이 일제의 소행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근거는 오로지 "동네 어르신들에게서 얼핏 들었다" 고 밝힌 김씨의 증언에서만 찾을 수 있었던 셈이다. 또한 소윤하 회장에게 "쇠말뚝을 뽑을 수 있는 장비와 인력을 지원했다" 고 밝힌 하남시청 관계자는 "고리 모양의 쇠말뚝이 규칙적으로 박혀있는 것으로 보아 일제의 소행이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이 중론" 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공영방송의 뉴스 진행자가 "일제가 민족정기를 끊겠다며 남한산성에 심어 놓은 것" 이라고 설명하며 들고 나온 쇠말뚝의 실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일제 쇠말뚝' 을 기증받아 보관하고 있다는 독립기념관의 공식적인 입장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독립기념관의 한 연구원은 "독립기념관이 기증받은 쇠말뚝은 일제시대의 것이 분명하다" 고 단언했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풍수지리 전문가들이 풍수학적으로 봤을 때 쇠말뚝이 박혀 있었던 자리가 기가 모이는 자리라고 하더라" 는 답변을 하고 있다. 일제의 침략행위에 대한 기록을 남한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는 독립기념관 역시 쇠말뚝이 걸어놓은 최면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풍수지리와 같은 사이비 과학에 편승한 쇠말뚝 신화가 황색지가 아닌 국내 유수의 대형언론사들에 의해 무비판적으로 다루어지는 것은 남한의 민족주의가 북한의 그것과 별로 수준차이가 없다는 것을 방증해줌과 동시에, 남한 사회의 근대화의 지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는 마치 NYT나 CNN에서 프리메이슨 음모론을 주장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사건이며, 사이비 과학을 유포시키고 광신적 민족주의의 독을 강화시키는 기사를 쓴 기자들은 사표를 내던가 해고를 시켜야 마땅하다. 심각한 문제는 언론에 의해 비판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쇠말뚝 뽑기라는 위험한 광대짓을 정당화되다 보니 다음과 같은 한심한 작태까지 벌어진다는 점이다.


 대구시에서는 팔공산 체천단 쇠말뚝 뽑기행사라는 담당 공무원에게 징계를 먹여 마땅한 잉여스러운 짓까지 하는 것 같다. 물론 소윤하 류의 귀신떨거지들이 입을 모아 나팔을 분 것에 장단을 맞추어 준 것이지만, 최소한 국가기구가 저런 바보짓에 장단을 맞추어주면 안된다. 일제 쇠말뚝 뽑자고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군부대 및 통신시설 구역을 개방하는게 제정신 박힌 국가기구가 할 짓인가?


 이러한 잉여짓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중의 반일 내셔널리즘을 선동하는 언론들은 모두 반성하고 쇠말뚝 신화에 대한 검증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