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님이 쓰신 내용 보고 문득 또 하나의 풍수지리 관련 떡밥이 하나 떠올랐다.
엊그제 연합뉴스 기사로 이런 걸 봤더란다.
안양 삼성산 삼막계곡서 일제 쇠말뚝 10개 발견
내가 보기엔 암만 보아도 저건 그냥 어딘가에서 공사하다가 중간에 중단되어 버려진 철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언론 보도에서는 심심치않게 저딴 식의 일제 쇠말뚝이 어쩌고 하는 얘기를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서길수 그 개XX가 1990년을 전후해서 "쇠말뚝 연구가"로 자처하던 시절에 시작되었다. 자기 말로는 1980년부터 조사를 했다고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 시기에 등산이나 좀 다녔을지는 몰라도 쇠말뚝 연구를 하지는 않았을 게다. 그가 쇠말뚝 관련해서 처음 글을 쓴게 1991년 전후다. 그 때 그는 북한산 백운대의 쇠말뚝이라는 것을 여러개 뽑아서 독립기념관에 기증했었다. 독립기념관에서는 처음에 이걸 전시실에 전시했었지만, 나중에 과학적 조사를 거쳐 이것이 일제시대에 제작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결론에서 이걸 전시 대상에서 치워버렸다. 하지만 서길수는 여기에 식민사학자들의 음모가 있다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어쨌든, 1991년 이후부터 이 떡밥은 나타나기 무섭게 타오르기 시작했고, 이전에는 나타나지도 않던 증언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왔다. 여기에 육관도사 사기꾼 손석우가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자기 책 "터"에서 개드립을 쳤고.
그리고, 김영삼 정부의 개떡같은 '민족 정기 회복 노력'에 의해 이것이 정부 차원에서 본격화되었다. '김영삼 정부 국정 5년 자료집’에 따르면 당시 정부는 전국 명산에 박혀 있는 쇠말뚝 제거를 범국민 운동으로 추진하면서 1995년 2월부터 전국 규모의 실태조사를 실시, 180개의 쇠말뚝을 확인하고 제거 작업을 추진했다. 일제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전국의 명산 이곳저곳에 쇠말뚝을 박아 지맥을 차단했기에, 이를 복원하고자 벌인 사업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총독부 건물 철거만큼이나 (개인적으로 총독부 건물의 철거란 상징성은 있겠지만, 최소한 과거의 흔적을 파괴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들 정권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행위는 이성적인 짓은 절대 아니었다고 본다.) 헛돈을 낭비한 병신같은 짓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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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서 잠시, 생각 좀 해보자.
이 모든 것은 기껏해야 10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날조된 떡밥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일단, 네이버 옛날 신문 검색을 해봐도, 아무곳에서도 쇠말뚝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단, 1979년 2월 5일자 경향신문 '여적' 코너에 비슷한 얘기가 하나 있기는 한데, 그나마도 명나라 이여송이 그런 짓을 했다더라는 소리에 지나지 않고, 기사 자체가 완전히 주관적으로 쓰여진 엉터리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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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도대체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지관'이 몇 명이나 된단 말인가? 아니, 그런게 있기는 하던가?
물론 일본에서도 에도 시대에 약간 이런 걸 연구한 유학자들이 있었고, 90년대 이후에 간헐적으로 풍수 관련 서적이 나왔지만, 그나마도 풍수의 진짜 원론적인 이론에 대해 소개하는 글에 지나지 않을 뿐, 양기니 음혈이니, 이를 집짓고 무덤 쓰는데 어떤 식으로 써야 한다는 소리는 눈 씻고 찾아봐도 거의 없다.
일제 강점이후 민속학자들이나 인류학자들에 의해 진행된 구관조사연구에서도 풍수지리에 대한 대목은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가끔씩 "지형에 대한 미신"이라고 폄하하는 내용이 담긴 글은 나타나지만. 그 어디에서도 일본인들이 풍수지리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
요즘에는 사태를 이렇게 키워놓은 장본인 서길수가 고구려 역사왜곡(동북공정 맞장구)에 앞장서서 나돌아다니고 있는지라, 상대적으로 이런 일에 무심한 듯 하다. 대신 이번에는 소윤하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민족정기 선양회라는 조직과 함께 또다시 개드립을 치고 있다. 이 사람은 일제의 쇠말뚝 사례로 이런 것들을 제시한다고 한다.
자, 하나 하나 까보자고.
★ 일단 인왕산의 '仁旺山'표기는 승정원일기에서도 10차례 이상 나온다네.
★ 총독부 건물이 '日'자였던 건 사실이지만 그런건 中庭形 건축물이라고 해서 오늘날에도 실컷 지어지고 있는 건물 형태지.
★ 옥녀봉에 박혀있던 것이 80kg짜리 진짜 로켓 포탄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셨나?
★ 창경궁이 공식적으로 창경원으로 이름이 바뀐 건 경술국치 1년 전인 1909년이었다네.
★ 덕수궁은 조선 초기에도 용례가 등장한다네.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인듯. (덕을 쌓으면 장수한다니 이건 뭔소리?)
★ 덕수궁 석조전은 최소한 1905년부터 짓기 시작했고, 설계자와 시공자 전부 영국인이라네. 이때는 영일동맹도 맺기 전이라고.
★ 침강원은 어디서 굴러먹다 온 소리인지. 한의학의 침강원 얘기를 갖다 붙인게 아닐런지. 분수대도 1960년에 놓은 것이라네.
★ 백운대 정상 쇠말뚝 얘기부터 강화도 마니산 얘기까지는 서길수의 정신분열증적 '통계'를 그냥 갖다 썼을 테고.
★ 창덕궁의 수라간에는 장독대가 처음부터 없다네. (이 수라간은 1920년에 지어졌고, 순종 임금은 거의 洋食만 먹었거든.)
★ 마지막에 제시한 이순신 얘기는 1999년에 어떤 정신병자 무속인이 저질렀던 일이지. 일제의 에스퍼 능력이라고 할텐가?
여기서 잠깐, 근본적인 풍수지리 이론은 이런 혈이니 뭐니 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네. 물론 그런 얘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디선가 요즘 연구 결과를 읽은 내 기억이 맞다면, 그런 건 우리나라에서 특히 19세기 이후에 기존 풍수지리 이론에 한의학 이론이 섞여들어가서 갑작스레 강조된 얘기일 뿐이지. 전통 중국의 풍수지리 이론서를 제대로 본다면 아마 요즘 지관입네 하고 설치는 인간들의 8-90퍼센트는 다 뭔소린지도 못알아먹을 얘기지.
아니 그리고, 박정희 시대 이후 국토개발사업 동안 산 깎고 부수고 폭파하고 한 건 지맥 끊기가 아닌가?
하여간, 이딴 거에 낚이는 인간들아, 제발 정신 좀 차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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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러나, 이건 여담인데 (기왕 풍수 얘기 꺼낸 김에 얘기한다), 어떤 미친 놈이 김영삼 정권 때 풍수지리를 영어로 "The Theory of Configuration of the Ground"라고 사용하라며, 해괴망측한 번역어를 제시하는 바람에 ('Feng Shui'라는 멀쩡한 영어 단어를 못 써서) 한국 민속연구가들의 영어 논문이 해외 민속연구가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는 악영향이 생겼다. 이밖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수도 없이 많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차차 말하기로 하고.
어쨌든. 이딴 것도 세계화라고 할텐가? 하여간 답답한 꼬락서니하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