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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이 들려주는 군대 썰. '전설의 행정병'
게시물ID : military_402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알라믿는교황
추천 : 2
조회수 : 183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3/23 17:11:23
터지는 박력과 오지는 가라력으로 행정병의 신기에 달한 인물이 있었다. 군수행정병으로 오랜 기간 복무했던 그는 분실하기 쉬운 군수품을 관리하는 데에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고, 없으면 뽀려 쓰고 남으면 숨겨 쓴다는 기본수칙 위에 능수능란한 처세술과 담이 구렁이 넘어가듯 하는 기상천외한 임기응변을 탑재하여 군수품에 관해서라면 한신과 장량의 듀얼코어조차 구세대의 CPU처럼 보이게 하는 공전의 구라를 선보였다. 그에게 모자란 군수품의 행방을 두고 연대가 책임을 추궁하면 대대가 재산정리를 안했기 때문이었고, 대대가 책임을 추궁하면 연대가 폐품반납을 받지 않은 탓이었으니 연대와 대대가 서로를 노려보고 칼춤을 추는 동안 우리의 전설께서는 대대로부터 삥땅친 침대에 누워 연대로부터 뽀려온 팝콘을 자시며 방관자적 시점을 유지하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단두대의 칼날은 중력의 힘을 빌어 연직하방으로 자유낙하하고 있었으니 다가오는 사단급 부대의 일제사열은 열락과 환희의 무릉도원에 바야흐로 비글과 코카스패니얼을 태어나게 하려 하시었다.
직감적으로 불길함을 느낀 그는 휴가를 핑계로 몸을 빼려 하였으나 군경력 삼십년에 빛나는 관록의 행정보급관님은 한발 앞서 그의 휴가에 오함마를 내리꽂으셨고 산산이 부서진 닷지의 꿈에 그는 담배를 꺼내 태우며 한자락 살길을 도모하기 시작하였다.

"**(내 이름)아"
"옙 일병 ***"

일전에 그의 블링블링한 금빛 혓바닥과 은빛 이빨에 홀려 존경과 충성을 맹세했던 내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는지 그는 평소답지 않은 은근함과 함께 당시 일병 애송이였던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최신형 야삽을 쥐여주며 내 손을 이끌었다. 이번한탕만 제대로 마무리되면 너의 탄띠도 새것으로 바꾸어줄게 하는 약속도 덧붙였다. 6.25전쟁에서 그 주인은 비록 살아돌아오지 못했으나 탄띠만은 어떻게 존나게 질긴 생명력으로 버티고 버텨 두 세대를 건너 나에게 전달된 듯한 유물급 탄띠를 갖고 있었던 나에게 그말은 마치 돈 코를레오네의 교섭조건처럼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하여 달이 저물은 그믐밤 은밀히 튼튼한 더블백을 메고 그를 따라나선 나에게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조차 불분명하지만 다른 중대의 창고에 난 조그만 개구멍을 날렵하게 빠져나가는 그의 폼새는 절대 하루이틀 연습한 그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분명 타중대 창고이기에 낯설을 테지만 놀랍게도 그는 불조차 켜지 않은 암흑 속에서 마치 한석봉의 어머니가 떡을 노려보고 칼춤을 추듯이 원하는 물건만을 쏙쏙쏙 빼담는 것이었다. 동태눈알을 보물인양 안구에 넣고 다니는 내가 보기에도 이사람은 결코 초범이 아니었다 아니 초범일 수 없었다. 필시 행정보급관님의 조지심과 부소대장님의 갈구심이 중대장님의 닦으심에 삼위일체를 완성하사 이 가련한 병사가 짬찌이던 시절부터 도벽의 신을 점지해 주셨으리라.

다음 날 악행와 타락의 소돔에 주님께서 친히 심판을 오시었다. 그분의 찬란한 눈송이계급장은 후광이시었고 그분의 고매하신 세심함은 아가페였으니 어느 누구도 주님의 강림하심을 믿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런데 그중 단 한명, 우리의 가롯 유다, 우리의 전설께서는 은밀히 비릿한 미소를 흘리시었다. 아니나다를까 옆 중대에서는 재산보다 부족한 침낭의 수와 반합의 수를 두고 살벌한 기운이 번지기 시작했다.
물론 사라진 군수품의 행방을 어리숙한 타중대 신참 행정병이 알 리가 없었다. 중령님의 모습을 빌어 현신하신 주님께서 신참 행정병을 노려보며 칼춤을 추시는 동안 나는 최신형 야삽에 누워 최신형 탄띠를 먹으며 방관자적 시점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후로 어디에 가서 무엇을 잡든 손만 대면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그의 손을 나는 경탄과 찬미의 눈으로 감격과 존경을 담아 '마이꺼스의 손' 이라고 부르기를 마지않았다.

1. 칼춤.
2. 칼춤.
3. 칼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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