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결과만 기억할 뿐, 과정은 잘 모르는 것 중에 하나가 김선일 납치 사건과 샘물교회 교인 납치 사건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 정부의 대북 강경책을 무마하기 위해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날, 이라크 파견 근로자 김선일이 '알 자르카위' 소속 그룹에 납치됐다. 이때는 피랍 사실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한국군이 파견된 이틀 후 납치범은 "24시간 안에 한국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참여정부는 주무부처인 외교부에 긴급대책반을 꾸리고 비상체제를 가동함과 동시에 현지로 협상팀을 급파해 알 자르카위 측과 협상을 시도했다. 당시 외교부장관이었던 반기문은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 파견된 한국군이 전투 지원이 아닌 평화 재건 지원을 목적으로 파견됐음을 집중 홍보했지만, 최영선 외교부 차관(당시 장관은 반기문)이 "김선일씨 피랍에도 한국군 파병 원칙은 변함없다"고 천명함으로써 협상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날 밤 김선일씨는 죽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노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테러리스트와는 대화하지 않는다'는 외교부의 주장 때문에 김선일씨를 구하지 못했다며 크게 격노했다(박근혜로부터 욕도 바가지로 먹었다). 노 대통령은 '외교부의 주장이 그들만의 공론일 뿐 절대적 정의'가 아니어서 국민의 목숨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인 《성공과 좌절》에서 김선일을 살리지 못한 자책과 부담감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외교부의 행태가 원래 이렇다. 국제적인 인맥으로 얽혀있는 외교관들은 그들만의 규범과 관례를 신앙처럼 떠받들며, 견고한 이너서클을 구성한다. '테러리스트와는 대화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공론은 수없이 많은 납치 사건에서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었음에도 공식적으로는 늘 그렇게 떠들어댄다. 이런 외교부의 특권적 행태는 아프카니스탄에서 일어난 집단 인질(샘물교회 목사와 교인들, 총 23명) 사태가 발생했을 똑같이 되풀이됐다.
송민순 외교부장관은 "정부가 전면에 나설 경우 테러단체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으므로 외교부 담당자나 외교부장관 성명으로 대응 수위를 낮추자"며 '조용하 외교적 해법'을 제안했다. 반면에 김만복은 아프간 내부 사정에 밝은 CIA 자료를 근거로 아프간 상황과 탈레반 체제, 부족 지도자급 인맥, 협상 방향 등을 깊이 있게 분석 보고했다. 그러나 초기 대응 기조는 여전히 외교부가 제시한 '아프간 정부를 통한 탈레반과 간접 접촉'이 핵심이었다. 정부가 7월 22일 조중표 외교부 1차관을 아프칸에 급파한 것도 이런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7월 31일 탈레반이 (배형규 목사에 이어) 심성민씨를 추가 살해하자 청와대 분위기가 바뀌었다…청와대에서 '직접 협상론'이 고개를 들었지만, 외교부는 "테러단체와 협상은 없다"는 국제 관례를 거스르는 건 외교적 부담과 함께 국격만 손상한다며 반대했다. 그러자 국정원은 김선일씨 살해사건 뒤 새로 확보한 중동전문가를 직접 협상에 투입하겠다며 청와대의 '직접 협상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격론 끝에 정부의 직접 협상 방침이 확정되었다.(김당의 《시크릿파일 국정원》에서 인용)
이후 김만복 국정원장이 현장으로 파견돼 협상을 주도했고, 우여곡절 끝에 '아프간에 파병한 동의·다산 부대를 3개월 연장 주둔 후 철수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19명의 인질 석방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2,000만 달러(국정원의 예비비에서 마련)의 몸값을 지불한 것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국민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노 대통령은 협상 반대를 주장했던 송민순 외교부장관이 아닌 김만복 국정원장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노 대통령은 절대적 정의도 아니며, 국민만 희생시키는 국제관례만 내세울 뿐, 소극적인 자세와 반대만 일삼는 외교부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다.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다 내 책임 같았다. 아홉 시 뉴스를 보고 있으면 어느 것 하나 대통령 책임 아닌 것이 없었다'고 생각한 노 대통령이었니 국제관례에 따르는 것보다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시종일관 간접 협상이나 타협 불가를 외쳤던 송민순은 이때 마음의 상처가 컸던 모양이다. 국제관례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외교부장관으로써 특유의 자존심에도 심각한 상처를 입었을 것이란 짐작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국정원 공채 출신으로 최초의 국정원장에 오른 김만복과 통일부장관 이재정 등에게 밀렸으니 평생 엘리트의 길만 걸어온 송민순으로서는 당시의 상황이 평생의 치욕으로 남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송민순의 치욕은 'UN의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한 찬성과 반대, 기권을 놓고 김만복과 이재정 등과 첨예하게 부딪쳤지만 기권으로 결정난 것에서 또 한 번 반복됐다. 송민순으로서는 연속된 좌절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며, 이번에 출간한 회고록을 통해 회심의 반격을 가한 것인지도 모른다. 노 대통령은 고인이 됐으므로 반격의 타겟을 반기문의 최대 적수인 문재인 전 대표로 잡은 것도 어떻게든 치욕을 씻으려는 의도가 강하게 엿보인다.
송민순이 회고록에서 밝힌 것에 대해 참여정부 인사들이 일제히 반박에 나선 상황이지만, 필자가 송민순에게 분노하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을 끌어들인 교활함에 있다. 송민순은 회고록을 통해 노 대통령이 자신과 단 둘이 남았을 때 "북한한테 물어볼 것도 없이 찬성 투표하고 송 장관한테 바로 사표를 받을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는데…그냥 기권으로 갑시다. 묻지는 말아야 했었는데"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정말로 교활하지 않은가? 송민순은 문재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노무현을 끌어들였고, 그것도 백종천이 잠시 자리를 비워 자신과 단 둘이 있을 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는 것으로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실었으니, 이것을 확인할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만복의 경우 북한에 물어보지도 않았으며, 이재정의 경우 문재인이 처음에는 찬성을 표하다 나중에 기권으로 돌아섰고, 백종천 안보실장은 자신이 노 대통령에 건낸 것은 북한으로부터 받은 쪽지가 아니라 북한의 동향이 담긴 팩스문서였다고 했지만, 송민순은 노 대통령과 단 둘이 있을 때의 말을 근거로 제시했으니 이것에 관해서는 반박할 방법도 없다.
더욱 교활한 것은 노무현은 자신과 생각이 같았고 문재인은 달랐다는 점인데, 문재인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대통령지정기록물을 또다시 공개한 뒤 송민순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밝혀져도 노무현과 단 둘이 있을 때 들었다는 말은 부정할 수 없다. 필자가 친노고 문재인을 지지하기 때문에 편향적 시각에서 벗어나기 힘들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끌어들여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실어 문재인을 공격한 송민순의 차도살인지계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비열하고 교활하다.
반기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송민순도 (외교부 출신의 공통점으로 회자되는) 기름장어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미국이 주도한 UN의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해 북한에게 물어보고 결정할 바보천치 같은 정부란 상식의 수준에서도 존재할 수 없다. 송민순의 주장이 교활함을 넘어 너무나 형편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에게 기권을 알려줬을 수는 있지만 북한에 물어보고 기권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부끄러울 따름이다.
외교관료들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전체 회고록 중 단 한 줄로 처리한 송민순의 노무현 악용이 바로 그러하다. 이로써 반기문이 대통령 후보로 나오면 박살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지만 참여정부 인사들을 믿기 때문에, 내가 할 일에만 집중해야 할 것 같다. 해서, #그런데 최순실은? #게다가 차은택은? #그리고 우병우는? #무엇보다도 정유연의 출생비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