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게시물ID : lovestory_767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1
조회수 : 1370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5/11/30 21:15:12
용혜원, 가을비를 맞으며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얼마만큼의 삶을
내 가슴에 적셔왔는가
생각해본다
열심히 살아가는 것인가
언젠가 마음 한구석에
허전한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훌쩍 떠날 날이 오면
미련 없이 떠나버려도
좋을 만큼 살아왔는가
봄비는 가을을 위하여 있다지만
가을비는 무엇을 위하여 있는 것인가
싸늘한 감촉이
인생의 끝에서 서성이는 자들에게
가라는 신호인 듯 한데
온몸을 적실만큼
가을비를 맞으면
그대는 무슨 옷으로 다시
갈아입고 내일을 가야 하는가
배월선, 괜찮아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
소중한 일은 아닐진대
어쩌다가 서로 눈 마주치기 무섭게
바쁘다고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는지
언젠가는
마주 보며 행복했던 날처럼
표정이 환했던 날처럼
그런 날이 맘속에 가득하니까
괜찮아
그래
지금은 바빠도 괜찮아
나중에 시간이 아주 많이 남는 날에
전화 줄래
기다려 줄게
이장욱, 오해
나는 오해될 것이다
너에게도
바람에게도
달력에게도
나는 오해될 것이다
아침 식탁에서
신호등 앞에서
기나긴 터널을 뚫고 지금 막 지상으로 나온
전철 안에서
결국 나는
나를 비껴갈 것이다
갑자기 쏟아지는 햇빛이 내 생각을 휘감아
반대편 창문으로 몰려가는데
내 생각 안에 있던 너와
바람과
용의자와
국제면 하단의 보트피플들이 강물 위에 점점이 빛나는데
너와 바람과 햇빛이 잡지 못한 나는
오전 여덟 시 순환 선의 속도 안에
약간 비스듬한 자세로 고정되는 중
일생을 오해받는 자들
고개를 기울인 채
다른 세상을 떠돌고 있다
누군가 내 짧은 꿈속에
가볍게
손을 집어넣는다
박준,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이외수, 연말 결산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지나간 날들은 망실되고
사랑한 증거도 남지 않았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자폐증에 빠져 있는 겨울 풍경
속으로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리면 시간이 깊어진다
인생은 겨울밤
얼음 밑으로 소리 죽여
흐르는 강물이다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