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다 내리지 않았는데 눈이 내린다. 길을 가득 채웠던 은행잎들을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해야할지 쓸쓸하다고 생각해야할지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는데 그 위로 눈이 내린다.
작년 여름, 함께 첫눈을 보자고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첫눈이 내리는 날, 홀로 앉아서 다음 해엔 첫비가 언제 내렸는지 기록하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첫눈이 내리는 날에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첫비가 내리는 날까지 기다리겠다는 혼자만의 다짐이었을까.
작년엔 12월의 첫째날에 첫눈이 내렸다. 그리고 올해엔 11월 26일, 오늘 첫눈이 내린다. 그간 많은 것들이 내렸음에도 첫비는 기록하지 못하고 첫눈을 기다렸다.
첫비가 언제 내린진 모르지만 이번 가을엔 오늘이 오기까지 수차례 비가 내렸다. 비에 젖어 뭉개졌던 낙엽 위로 다시 낙엽이 졌다. 그리고 다시 비가 내렸고 다시 낙엽이 졌다. 다시 내린 낙엽들을 위해서라도 가을을 아름답다고 생각해야겠다. 다음 해에 내릴 첫비를 위해서라도. 내겐 쓸쓸하게 내리는 첫눈 때문에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