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오랜친구가 생기게 된 바탕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하나를 꼽자면 인간관계에서 좌절한 경험이 반복되고 고착 돼 버린 두려움이 있다.
어머니와 사별하고 사촌들 틈에서 자라면서 나는 누군가의 삶의 이물감이 됐다는 느낌을 가졌다. 여느 어린아이가 생각하듯, 똑같이 사랑받기를. 그런 생각이 곧 외로움을, 모두가 가지고 있는외로움을, 이제는 온전히 내게도 포함되게 만들었다.
젋고 엄격한 삼촌의 훈육은 관심이라는 이름아래 이루어 졌지만 나는 그것에 많은 오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잘못된 행동의 원천이 영악함으로 생각되어지곤 했다. 혼자 집에 있는것에대한 무서움, 혼날때 흘리는 눈물, 흐리멍텅하게 뜬 눈, 작은 목소리로 들리지 않는인사. 서있을때 짝다리를 짚는 버릇. 등등. 나는 내행동을 설명할 능력이없었다. 내가 진짜로 영악했다면, 얼마든지 그들의 죄책감을 자극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들은 내가 그럴 능력도, 무엇이 나쁘고 좋은것인지 알만한 수준에도 오지 못했다는것을 '본능적'으로 알고있었을것이다. 10살무렵에 느꼈던 삼촌은 그냥 폭군과도 같이 무서웠다.
웃을때, 인사할때, 티비를 볼 때 나는 좀더 보기 좋아야했다. 집을 잘 치우지 못해 할머니와 내가 살고있는 공간에 들어 올때면 견딜수 없다는 표정으로 둘러보고 물건들을 발로 걷어내곤했다. 그럴때면 항상 나스스로를 쓰레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집치우는 교육을 받았다. 삼촌이 집 검사하러 온다고하면 시간안에 집을 허둥지둥 치웠었다. 검사받는 도중에 양말하나를 서랍장밑으로 발로 밀어 숨겼는데 고개를 돌리다가 그 모습을 본 삼촌이 머리를 손바닥으로 더 이상 밀려날곳이 없을때까지 사정없이 때린적이있다.
꽤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는것을 알았다. 그런 일을 당해도 말 할 곳이없었다. 내가 청소를 완벽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혼나서 할머니에게 슬프다 말하면 삼촌이나 숙모에게 혼이났기때문이다.
한번은 혼나다가 그 사람들 앞에서 우니, 아픈할머니 할아버지를 쓰러뜨리려고 일부러 우는것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말을 그대로 이해해 나는 내가 슬퍼서 우는것까지도 이기적이게 보인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 일은 아주 과거에 있었던 일이고, 그들의 본심도 그런게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종류의 경험을 유년시전에 몇번씩이나 반복하면서 마음에 새겨버리고야 말았다. 나는 아직까지도 다른 사람앞에서 울때, 상대방이 내가 울었기때문에 비난 한다는 두려움에 압도되고있다.
지금생각해보니 '니가 울면은 안그래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아픈데 쓰러질까 걱정이된다.'라고 말하고 싶었던것 같다.
10살배기 아이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든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에대한 신뢰, 확신이 들어서지 않아서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잘 흔들린다. 그런것을 이용하는 어른들이 있다. 아주 원초적인 '나쁜'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아이들이 보는앞에서 아무런 거리낌도없이 아이들을 후려치는 유치원교사들 뉴스를 보고 있으면 그런생각이든다.
어른이 되서도 자기확신이 없는사람에게, 정신적으로 군림하고싶어하는 본능적인 행동을 보곤한다. 그런이들은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하다.
할머니는 항상 삼촌이 내가 잘되기를 바라기때문에 때리는것이라고 했다.
머리를 얻어맞고 얼마동안은 삼촌이 내옆을 지나갈때면 다시 머리를 맞고 벽으로 튕겨나갈것같은 공포가 계속됐다.
일관된 무관심과 ..그리고 꾸중이 반복됐다. 내가 관심받을때라고는 부정적인 행동을 할 때 뿐이었다.
늘 무서웠던 기억만 있는것만은 아니다. 삼촌네 아이들이 다니는 합기도장을 지나는데 합기도 사범이 내가 누구냐고 삼촌에게 물어보니 딸이라고 하는것이었다.
그리고 운동회때 양념통닭을 들고 찾아온적도 있었다. 생각도 못했지만 아버지가 나를 찾고있다 방송 하기에, 나는 우리 아빠를 생각치도 않고 삼촌을 떠올렸다. 나도 여느 가족처럼 조회대 옆 화단에 들어가 양념통닭을 먹고있으니 너무 행복했었다.
사실 운동회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해도 별로 외로운것은 잘 몰랐다. 익숙했기때문에.
운동회는 늘 즐거웠다. 시끌벅적한 가족들의 풍경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초등생시절 내내 친구는 별로 없었지만 외롭지 않았다. 그땐 혼자있는 두려움도 잘 알지 못던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