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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하면 통일운동 남이 하면 내통?ㅋㅋㅋㅋ
암튼
이참에 박근혜가
방북 당시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했는지
안했는지 확인해보자고 하면 뭐라할지...
문재인이나 박원순이 금수산기념궁전 방문하면
하면 수꼴들이 보안법핑계로 친북이적행위라며 긴급체포 총살할거같은데..ㅡ
http://media.daum.net/politics/president/newsview?newsid=20130607104412210
김정일과 면담서 '7ㆍ4 공동성명ㆍ이산가족ㆍ서울답방' 논의 2002년 만찬 함께한 장성택, 이번 대남제의 밑그림 '역할론' 관측연합뉴스 입력 2013.06.07. 10:44........(중략)..........
특히 조평통이 지난 1972년 박 대통령의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주도로 체결된 7ㆍ4 공동성명 발표일을 공동 기념하자는 제안이 눈길을 끈다.
박 대통령이 방북 당시 북측과 논의했던 7ㆍ4 공동성명 문제가 부활해서다. 북한이 이번 제안을 하면서 박 대통령의 2002년 방북 때 논의됐던 내용을 다분히 의식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02년 5월11일부터 3박4일간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 및 유럽-코리아 재단 이사 자격으로 평양을 전격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직접 만났다.
당시 박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이산가족 정례 면회소 설치와 6ㆍ25 전쟁 당시 행방불명된 국군의 생사확인, 금강산댐 남북 공동조사, 북한 축구국가대표단 초청 등을 제의했고 김 위원장은 전부 흔쾌히 수용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면회소 설치 장소는 금강산 관광길의 적당한 곳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당시 박 대통령이 언론에 밝힌 바 있다.
박 대통령은 또 당시 김 위원장에게 "(서울) 답방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고,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 "적절한 시기에 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또 당시 김 위원장에게 7ㆍ4 남북공동성명의 의미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생략)........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60330100242360
주간경향 입력 2016.03.30. 10:02 ..(중략).......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 방북과 관련해 경위 등을 밝히고 있는 것은 방북 직후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 그리고 2007년 출간한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 한 챕터로 실린 내용이 거의 전부였다.
북한을 방문한 박근혜 유럽-코리아재단 이사이자 한국미래연합 대표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2년 5월 13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박 대통령의 2002년 방북 경위가 1차 논란을 일으킨 때는 2006년이다. 시기적으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당시 후보 측과 경쟁이 시작될 시점이었다.
당시 개설되었던 박근혜 의원 개인 홈페이지에 게재되어 있던 방북기에는 “오찬 뒤 ‘평양 8경’ 중 2경이 있는 모란봉과 김일성 주석 생가가 있는 만경대 관광길에 나섰다. 비는 계속 오고 있었다”고 적혀 있었다. 2001년 방북한 강정구 당시 동국대 교수가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를 방문해 ‘만경대 정신’ 방명록을 남긴 사건과 대비해 만약 박 당시 이사가 만경대를 방문했다면 어떤 글을 남겼을지 논란이 일었다.
이 문구는 “오찬 뒤 ‘평양 8경’ 중 2경이 있는 모란봉을 찾았다. 비는 계속 오고 있었다”로 수정되었다. 당시 박근혜 의원 홈페이지 관리자는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았다. “위의 내용 중 논란이 되었던, “오찬 뒤 ‘평양 8경’ 중 2경이 있는 모란봉과 김일성 주석 생가가 있는 만경대 관광길에 나섰다”고 되어 있던 기사는 잘못 작성된 것이었습니다. 기자에 의해 당일 수정되었던 (수정) 기사의 내용으로 수정하였습니다. 관리자가 처음 작성되었던 기사를 그대로 인용하였는데, 수정된 기사의 내용을 반영하지 못해 논란을 제공한 점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2006.11.7.”
금수산궁전 방문 논란 지속되는 이유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의 방북 행적은 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이번에는 방북 당시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했는지 여부를 두고 벌어졌다.
2002년 방북 당시 박근혜 이사와 동행했던 3인 중 한 명이었던 신희석 아태정책연구원 이사장은 한 비공개 친목카페에 2002년 방북이 이뤄진 경위와 방북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만찬에서 오간 대화 내용 등을 공개했었다. 회고담 형식으로 된 이 방북기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다음 부분이다. “우리들 두 사람(박근혜 당시 의원과 신 이사장)은 그들의 안내를 받고 최고인민회의, 인민문화궁전, 금수산기념궁전(?)(편집자 주: 물음표나 이하 xx는 신 이사장이 남긴 것), 주체탑, 모란봉 소년소녀xx?, 김일성대학, xx병원, 봉제공장 등 다양한 시설을 견학·시찰하였다.” 이 ‘회고담’에 적힌 방북 행적은 지금도 수정되지 않고 남아 있다.
비록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과거 남북 정상 간의 접촉에서 금수산기념궁전의 방문은 남북 간 의전에서 초미의 논쟁점이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펴낸 회고록 <피스메이커>를 보면 2000년 김대중-김정일 남북 정상회담 당시에도 금수산기념궁전의 방문을 두고 막후에서 팽팽한 논란이 벌어진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두 정상의 감격적인 상봉을 지켜보면서도 나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난제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하나는 바로 대통령의 금수산궁전 방문 문제이다. 영빈관으로 오는 길 내내 나는 혹시라도 김 위원장이 갑자기 금수산궁전으로 방향을 바꿔 김 대통령도 어쩔 수 없이 김일성 주석의 유해에 참배하도록 만들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임동원, <피스메이커> 81쪽)
금수산기념궁전 방문 문제는 임 전 장관의 책에 따르면 협상 마지막 날까지 걸림돌이었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직후, ‘목란각’에서 진행된 김대중 대통령 주최의 만찬장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임동원을 불러 귓속말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그는 책에서 적고 있다. “…지금 이곳으로 오는 차 안에서 대통령께 ‘금수산궁전에는 안 가셔도 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임 원장이 이겼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해 방북 남측 관계자, 그리고 2002년 박근혜 방북단 일행이 묵은 장소는 백화원초대소다. 평양 미암동에 자리 잡은 금수산기념궁전 바로 옆에 붙어 있다. 구글이 제공하고 있는 인공위성 지도를 보면 금수산기념궁전 왼쪽에는 김일성 종합대학의 캠퍼스가 있고, 우측 바로 아래에 백화원초대소가 있다. 실제 2000년 방북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도 백화원초대소에 묵으며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했다. 김정일이 사망해 이곳 1층에 안치된 뒤(김일성의 시신은 2층에 있다) 금수산기념궁전은 금수산태양궁전으로 이름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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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60330100242360 http://media.daum.net/politics/president/newsview?newsid=20130607104412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