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숙자, 혼자가 아니에요
숨결이 들리지 않는다고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체취마저 맡아지지 않는다고
혼자가 아니에요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오로지 한 곳을 응시하며
그림자와 한 몸으로
세월의 갈피를 헤며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요
추억의 비단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서만은 아니에요
소중한 인연이고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붓과 캔버스의 만남처럼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고 싶은 거랍니다
배은미, 가슴 안에 두고 사랑하는 일
오래도록 당신과 연락이 안 되더라도
오래도록 당신을 못 보게 되더라도
당신은 알고 있지요
굳이 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 당신이 머문 그 길가 그 어귀에
함께 머물러 있다는 것을
세상일로 하여금
때론 당신을 가슴 안에만 두고
그리워해야 할 때가 있기에
말할 수 없고 볼 수 없는 날일지언정
당신은 내 마음이 변한 거라
생각하지 않지요
굳이 다 말하지 않아도
당신이 머문 그 쓸쓸한 방 한구석에
함께 하고 있었음을
당신도 알고 있지요
그리하여 오랜 침묵 뒤에라도
끝끝내 이어질 연이라면
그때는 당신과 나 참으로 긴긴 가약으로
서럽지 않게 살아가도록 하지요
조병화, 너는 내 생각 속에 산다
너의 집은 하늘에 있고
나의 집은 풀 밑에 있다 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산다
너는 먼 별 창 안에 밤을 재우고
나는 풀벌레 곁에 밤을 빌린다 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잔다
너의 날은 내일에 있고
나의 날은 어제에 있다 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세월이다
문 닫은 먼 자리, 가린 자리
너의 생각 밖에 내가 있다 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있다
너의 집은 하늘에 있고
나의 집은 풀 밑에 있다 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산다
백창우, 그러면 좋겠다
끝까지 다
부를 수 있는
노래 몇 개쯤 있었으면
좋겠다
매일
시 한 편씩 들려주는
여자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안 가는
예쁜 시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몹시 힘들 때
그저 말없이 나를 안아 재워줄
착한 아기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바람을 노래할 때
그 바람 그치기를 기다려
차 한잔 끓여줄
고운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나해철, 사람의 별
별이여
양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사람
세상은 밤하늘과 같아 깊고도 멀리 반짝일 뿐
불러도 대답이 없다
밤 깊이 홀로 누워 먼 어둠 속 얼굴을 향해
두 손 뻗어 부르는 나도 이제 빛나는 무엇이 된 것일까
저 혼자 먹빛 어둠에 오래 있게 되면 뼈가 시리면서
점점 빛을 내게 된다는데
그렇게 해서 은빛 별이 된 것일까
그러나 나는 그보다 먼 곳에 있나 보다
나를 부르는 소리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