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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살인마 <테드 번디>
게시물ID : panic_658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나나Ent
추천 : 10
조회수 : 8940회
댓글수 : 15개
등록시간 : 2014/03/18 15:59:06
 
테드번디.jpg

테드 번디 (Ted Bundy, 1946.11.24 ~ 1989.1.24)

출생: 1946년 11월 24일 일요일
출생지: 버몬트 주의 버링톤
출생명: 디오도어 로버트 코웰 (Theodore Robert Cowell)
1970년대 미국을 경악시킨 열쇄살인사건의 주인공 <테드번디>.
정확한 숫자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가 범죄를 저지른 약 5년간 30 ~ 100여명의 여성으로 추측된다.
미국인들에게 '연쇄살인범'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테드 번디이며 이로써 그는 많은 헐리운 공포/스릴러 영화계에 모티브/영감을 주기도 했다.

예를들어 연쇄살인 영화하면 딱 떠오르는 "양들의 침묵" 중에서 한밤 중 차를 몰고 가던 여성에게 팔에 기브스를 하고 다가가 도움을 요청했던 살인마 '버팔로 빌'이 바로 테드번디에게서 따온 것이다.
아동기
미혼모로서 당시 22세의 나이로 엘레아노 루이즈 코웰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당시 미혼모라는 인식과 아들을 키울 능력이 부족해서였는지 그녀의 친부모에게 아들을 맡기고 떠난다.

조부모 역시 이를 걱정하여 테드번디를 자기 아들처럼 키웠는데 번디가 워낙 영리하고 착하게 자라 그의 조부모는 테드번디를 유난히 귀여워하며 사랑했다.
그러다 1950년 그는 그의 어머니와 함께 워싱턴주 타코마시로 옮겨 함께 살게되었는데 그 당시 그의 어머니 루이즈 코웰은 조니컬 페퍼 번디라는 이름의 군대 요리사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당시 테드번디는 조니와의 결혼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

또한 그 결혼으로인해 그는 테드 코웰에서 테드번디로 불리우게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 루이즈 코웰은 재혼 후 네 명의 다른 아이들을 낳았고, 테드는 그 아이들을 돌보느라 별로 남는 시간이 없었다.

당시 테드와 계부 사이엔 어떤 끈끈한 유대 관계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유일하게 살아 있는 목격자>라는 책에는 테드의 유소년기는 불행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어린 시절에는 부끄러움을 잘 탔고, 종종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청소년.청년기
어린시절 시애틀에서 자란 그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소심한 학생이었으나 이미 그의 한쪽에선 이중인격 혹은 다중인격체인 톰이 존재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미국 청소년들이 그렇듯 다양한 성경험(성관계)을 했다.
포르노 잡지를 손에서 놓지 않았고 이에 끝나지 않고 잡지 속의 모델들을 강간하고 살해하는 망상을 꿈꾸었다.

크게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았으나 자기쪽에서 먼저 친구를 찾아다니는 일은 없었다.
이것은 이성(여성)을 만나는것에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성을 만나고 성관계를 가졌으나 적극적인 관계를 맺진 못했다.
또한 그는 섹스보다 폭력적인 일에 더 관심이 많았고 쾌락을 느꼈던것 같다.
1965년 테드는 우드로우 윌슨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학위를 따기위해 퓌젯 사운드 대학을 다니기 시작했다.
거기서 심리학과 아시아학을 수강하다가, 겨우 두 학기를 채운 후에 시애틀에 있는 와싱턴 대학으로 전학했다.
1967년에 테드는 스테파니 브룩스라는 아름다운 젊은 여자와 만났다.
스테파니 브룩스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서로 사귀며 친밀감을 느꼈고 이내 뜻이 통했다.
테드가 어떤 여성에게 친밀감을 느낀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으며 <내 옆의 낯선 사람>이란 책에 의하면 이때가 테드가 성적 행위에 연관된 최초의 시기라고 한다.
1968년 가을에 테드는 다시 캘리포니아 주의 팔로 알토에 있는 스탠포드 대학으로 이적했다.
그 직후 스테파니 브룩스는 와싱턴 대학을 졸업했고, 갑작스럽게 둘의 관계도 끝이 났다.
부유하게 자란 그녀이기에 목표의식 뚜렷한 성공 가능성이 있는 남성을 원했고 그에비해 테드번디는 뭔가 부족함이 있다고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테드는 첫사랑을 잃어 상심했고, 다른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 없게 되었다. 급기야 성적도 떨어져서 그는 할 수 없이 학교를 자퇴하기로 결심한다.
테드는 다시 자신의 인생을 정상궤도로 올려 놓으려고 애쓰면서 지방을 떠돌아 다니기 시작했다.
1969년 테드번디는 버몬트에 위치한 자신이 태어난 마을에 이르렀고 거기서 테드는 자신의 출생기록을 살펴보다가 또 한 번 더 가슴 쓰린 상처를 입었다. 자신의 누이가 진짜 엄마였고, 현재의 엄마가 실제로는 할머니라는 사실을 알아냈던 것이다.

자신의 누나가 사실은 어머니이고 부모라고 믿었던 사람이 조부모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심리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첫사랑-어머니-할머니, 테드에게서 이들 세 여자는 자신의 심리적 고통의 원인으로 간주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에게 느끼는 자신의 성적 욕망과 여자에 대한 증오심 사이에서 테드는 인격의 균열이 이른 것이다.
그래서 그런걸까 그는 특히 어머니를 유달리 증오했고 여성에 대한 존재가 부정적이고 증오의 대상으로 인식되었을것으로 판단되며 그 안에서 존재한 검은 그림자가 깨어나게 된것이다.
1969년 가을 테드는 와싱턴 대학에 재입학하여 모든 과목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테드는 첫사랑을 되찾고 싶다는 목적의식이 분명한 청년이 되었다.
그렇지만 스테파니는 그에대한 어떤 흥미도 없었다.

여기에 기죽지 않고 테드는 열심히 공부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선거 운동을 뛰어다니며 지방 정치에 점점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남는 시간도 아까왔던지 테드는 시애틀 클라이시스 병원에서 전화 봉사 활동을 했으며,
거기에서 테드는 얼마 안 있어 앤 룰이란 여자와 친해졌는데, 그녀는 수년 후에 <내 옆의 낯선 사람>이란 제목의 베스트셀러를 쓴 장본인이다.
또한 그곳에서 비서로 일하던 멕 앤더스라는 이혼녀도 만났다.
둘은 이내 데이트를 시작했고 앤더스는 얼마 후에 깊은 사랑에 빠졌다. 테드는 그녀에게 깍듯하게 대해 주었고 그녀의 어린 딸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무관심하게도 테드는 앤더스와 결합해 정착할 의사가 없었고,
앤더스 모르게 편지와 전화로 첫사랑 스테파니와 계속적인 연락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후 2년간 테드는 정치 운동을 했으며 여러 법률 학교 수업을 들었다.
테드가 익사 직전의 세 살난 꼬마애를 구해줘 시애틀 경찰서로부터 "영웅" 대접을 받은 것도 이 시기에 일어난 일이다.
정상적인 궤도에 올라 전도양양한 미래를 꿈꾸며 테드는 1973년 여름 와싱턴 대학을 졸업했고 이내 유타 대학 법률 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앤더스와 지속되는 관계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와싱턴 주 공화당 정치 운동 때문이었는지 확실치는 않으나 그 다음해까지 테드는 유타 대학에 출석하지는 않았다.
공화당 업무차 여행을 하는 중에 테드는 옛날의 로맨스를 기억하며 스테파니와 다시 만날 결심을 했다.
새로워진 테드는 스테파니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다시 한 번 사랑의 불길이 불붙었다.
두 사람은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함께 하는 많은 시간을 보냈고, 결혼 얘기도 심심치 않게 나누었다.
반면에 이혼녀 앤더스는 테드가 비밀스럽게 스테파니를 만나고 다닌다는 것을 전혀 눈치챌 수 없었는데, 테드는 스테파니와 뜨거운 재회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그 이혼녀를 향한 사랑을 다짐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스테파니는 테드가 이제는 자신이 꿈에 그리던 남자로 다시 나타났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함께 열어가는 미래를 희망하게 되었다.
이 두 여자가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동안 불행히도 테드가 마음에서 겪고 있는 '변형' 또한 알지 못했다.
테드는 조용히 각각의 희생자들은 치밀하게 선택되었고 스테파니의 호리호리한 몸매와 헤어스타일을 떠올리게 하는 이들을 목표로 삼았다.

많은 남성들은 여성들 위에 군림하고 싶어하지만 보통은 자제심을 발휘하게된다.
하지만 테드번디는 그런 자제심이 부족했고 언제부턴가 이로인해 강박관념에 시달리기 시작했을것이다.
그가 다 성장하여 법률공부를 선택하고 이를위해 솔크레이크 시로 이주,
테드 번디는 잘 생긴 청년으로 사건이 발생할 무렵 미국 솔크레이크 시(市)에서 법률가를 지망하고 있었다.

그가 이러한 살인사건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촉망받는 변호사나 검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테드 번디는 엘리트 청년으로 주위에 평판이 좋았고 머리도 수재였다.
번디는 매력적인 법대생이었다. 그는 옆집 이웃이었고 이웃의 소년이었다.

범죄자의 시기
테드번디는 관음증을 즐겼다.
여자들의 집앞을 서성거리며 여자들이 옷을 벗는 것을 훔쳐보며 강간하는 망상을 즐겼고 결국 범죄자가 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훔쳐보는걸로 시작하여 여자들의 자동차에 다가가 타이어에 바람을 빼거나 간단한 부품을 조작한 다음 몰래 숨어서 여자의 반응을 살피는 비교적 가벼운 장난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에게 커다란 쾌감을 주지 못했고 결국, 번디는 여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가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동전을 줍던 여자의 머리를 곤봉으로 후려친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비명을 질러댔고 테드번디는 당황하여 그 자리를 서둘러 도망쳤다.
경험부족에서 일어난 실패...이런 시행착오 끝에 그는 점차 대담하고 과격해진다.
1974년 1월 4일 18살의 소녀 조니 렌츠의 방으로 그는 들어간다.

조니는 시애틀에서 여러 명의 룸메이트와 커다란 집을 함께 쓰고 있었는데 그들 중 아무도 조니가 아침 식사 때 내려 오지 않는다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의심조차하지 않았다. 시간이 점점 낮에 가까워지자 친구들은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 그녀의 방으로 갔다.
조니는 자고 있는 듯이 보였으나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조니가 흥건한 핏물 속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고 그들은 경악했다.
이불보를 끌어내렸을 때 그 상황은 침대 옆 난간에서 부러진 막대기가 조니의 음부 깊숙이에 쑤셔 박혀 있는 것으로 심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니는 아직까지도 숨이 붙어 있는듯 보였고 친구들은 재빨리 응급실과 경찰에 연락했다.
구급 의료 요원이 도착했을 때 조니는 뇌사 상태였지만 기적적으로 폭행 후에도 살아 남았다.
그로부터 4주후, 테드의 다음 피해자는 린다 앤 힐리였다.
그녀는 21살로 와싱턴 대학 법률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자 일기예보 아나운서였다.
린다 할리는 현관문을 열어 놓은채 옷을 갈아입고 있었고 그 집을 우연히 지나다가 그녀를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가서 목을 졸랐다.

린다 할리는 맹렬하게 저항하면서 발버둥을 쳤으나 이내 혀를 길게 빼어 물고 축 늘어졌다.
곧장 그는 그녀를 자신의 폭스바겐에 태우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 옷을 벗기고 성폭행했다. 이어서 그는 린다 할리를 살해하고 시체를 버렸다.

린다 할리를 성폭행하고 살해하면서 테드번디는 그 여자와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린다 할리를 다만 여자, 자신의 망상을 실행하는 도구로만 생각한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양심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았고 고귀한 생명체나 인격은 관심조차 없었다.
그는 성욕을 해소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잔인한 짐승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1974년 1월 31일, 린다의 룸메이트 한 명이 린다가 아직 직장에 출근하지 않았다는 직장 상사의 전화 연락을 받았다.
룸메이트는 린다의 지하실 침실로 갔다. 침대는 깔끔히 정돈되어 있었고 그녀의 자전거는 구석에 놓여 있었다.
밤이 되어도 아무도 그녀의 소식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걱정하던 부모는 경찰에게 딸의 실종을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조사의 한 순서상 경찰은 형식적으로 린다의 방을 조사했다.
경찰관 한 명이 마침내 침대보를 벗겼을 때 베갯잇과 시트가 피에 흠뻑 젖어 있는 광경을 보고 기겁했다.
경찰관들은 이내 린다의 잠옷을 찾아냈고 그 옷의 네트라인에는 마른 피가 묻어 있었다.
그런데 경찰관들은 이 핏빛 현장의 주인공의 사체와 그 내막을 암시할 만한 단서조차 하나도 찾아내지 못했다.
이로인해, 그 지방 경찰관들이 부지런히 린다와 그 범인의 행방을 추적하는 가운데서도
테드는 자신이 잡힐 지도 모른다는 것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일상 생활에 눈코뜰새없이 바빴다.
테드 번디는 폭스바겐을 타고 다니며 여자들을 유혹했다.

그가 유혹한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나이 어린 소녀들이라는 것은 그가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 폭력적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이 사건을 저지르고 얼마지나지 않아, 1974년 2월 테드번디는 특별한 이유없이 결혼이야기까지 오고가던 스테파니와 이별을 한다.
수년전 첫사랑 스테파니가 자신을 걷어찼던 것처럼.. 그리고 그이후 스테파니는 테드를 만나기는커녕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다.

내 생각이지만 테드번디는스테파니를 굉장히 사랑하고 증오했을것이라 생각된다.
증오했기에 어쩌면 스테파니를 자신을 버린 어머니 루이즈 코웰과 동일시! 그리하여 그녀와 닮은 젊고 여린 여성을 타겟으로 범죄를 저질렀고
그녀를 사랑했기에 스테파니를 죽이지 않고 그녀와 헤어진것 같다. 아마 이때가 인간적이고 신사적인 테드번디의 마지막 모습이 아닐까 한다.

어쨌든 이 때를 기점으로 그의 강간과 살인은 계속된다.
하루에 두 여자를 폭스바겐으로 유혹하여 납치한 적도 있었다.
1974년 8월 삼마미쉬 호수로부터 대략 6킬로미터 남짓 떨어져 있는 와싱턴에서 싸늘한 시체 두 구가 발견되었는데 두 피해자는 꼭지 돌아간 광란의 섹스가 벌어지고 있는 동안에 살해당한 듯이 보였다.
이때 테드는 한 여자를 납치한 뒤에 다른 여자를 납치하여 첫 번째 여자 앞에서 능욕한 뒤에 살해했다.
이 실종 사건을 통해 사건의 의미가 슬슬 드러나기 시작했다. 현장에는 증거가 없었지만,
와싱턴과 오레곤 주 살인 사건 사이에 보이는 유사점들이 곧 유타 주 수사관들의 관심을 끌었다.
세 개 주 수사관들은 합동으로 조사를 벌여 나가게 되었고 이윽고 이 모든 살인은 한 사람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것이라는 데 결론을 맞췄다.
테드 번디는 여러 가지 방법(특히, 깁스를 하여 여성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방법)으로 여자들을 납치했지만 결말은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종자들은 모두 호리호리한 백인 여자에 머리 중간쯤에 가름마를 탄 머리를 하고 있었고 모두 저녁 시간에 실종되었다.
실종 사건 수사가 강화되자 사건이 일어나던 시간에 폭스바겐을 운전하며 팔이나 다리에 깁스를 한 잘 생긴 남자가 목격되었다는 정보가 차례차례 입수되었다.
그 의문의 사나이가 접급했던 여자들은 그가 자신의 이름을 테드라고 밝혔다는 사실을 기억해 낼정도로 테드가 매혹적인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 후, 1974년에서 1975년 8월까지 미국의 유타주에서는 약 8건의 강간살인사건이 발행했다. 경찰은 바짝 긴장했고 미국은 공포에 떨었다.
유타주에 이어 워싱턴주에서도 섹스와 관련된 연쇄살인사건이 잇달아 발생했고 몇 번인가는 여자를 유혹하려는 순간에 기회를 놓친 적도 있었다.
1974년 11월 8일, '캐롤 다론치'는 쇼핑센터에서 쇼핑을 하다가 잘 생긴 청년의 유혹을 받았다.
그녀는 그의 폭스바겐까지 동행했다. 그러자 테드 번디가 수갑을 채우고 연장으로 머리를 때리려고 했다.
캐롤 다론치는 비명을 지른 뒤에 수갑 찬 손으로 차문을 열고 달아났다.
경찰은 폭스바겐을 운전하는 남자가 솔트레이크시의 어느 쇼핑몰에서 18살의 캐론 다론치라는 소녀를 납치하려고 했었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어렵사리 그를 잡을 수 있는 최초의 기회를 잡았다.
그 젊은 여자는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고 형사들에게 납치범의 인상착의와 차에 대해 증언하였기 때문이다.
솔트레이크시의 수사관들이 그 용의자를 찾는 동안에 유타 주 바운티 당국은 17살의 데비 켄트가 고등학교에서 실종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었다.
한 목격자가 그 학교 주차장에서 황갈색 폭스바겐 차가 재빨리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살인은 넉 달 동안 주춤하다가 콜도라도 주에서 적어도 네 명의 여자가 실종되면서부터 다시 재개되었다.

약 한달 후, 실종된 여자들 중의 하나가 실종 장소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되었다.
검시 결과, 피해자는 성폭행을 당했고 뭉툭한 둔기에 의해 살해되었음이 밝혀졌다.
이어 와싱턴에 있는 테일러 산맥은 그 살인자가 애용하는 매장지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는데 하나하나씩 여러 명의 여자들 유해가 발견되었으며 그들 중 하나는 나중에 21살의 린다 앤 힐리로 신원이 밝혀졌다.

1975년 8월 16일, 경찰은 유타주의 고속도로 순찰원이 폭스바겐을 몰고 있는 낯선 사람을 발견하여
마침내 고대하고 고대하던 기회를 잡게 되었다. 순찰원이 번호판을 보려고 불을 비출때쯤 그 운전자는 도망치고 있었다.
추적 끝에 몇 블록을 가지 못하여 폭스바겐은 도로 옆에서 정차당했고
운전자에게 신분증을 요청하자 그는 디어도어 로버트 번디라는 이름이 적힌 운전면허증을 꺼내 주었다.
운전자가 수상쩍다고 생각한 경찰은 차를 조사하였고 그 안에서 한 쌍의 수갑, 기다란 끈, 쇠지레, 스키 마스크, 얼음 송곳과 나일론 스타킹을 찾아냈다.
희대의 살인마 테드 번디가 그 자리에서 강도 혐의로 체포되었다.
테드 번디는 기소되었다.
그는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고 해박한 법률 지식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미국인들, 특히 배심원들은 그의 뛰어난 말솜씨에 감탄했다.

체포된 테드번디와 납치 미수 캐롤 다론치 사건의 용의자 사이의 유사점을 알아채는 데 오랜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캐롤 다론치가 그를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관들은 혐의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더 필요했다.

테드는 납치 미수와 살인에 대해 모든 혐의 사실을 부인했지만,
경찰은 그가 범인임을 확신하고 용의자의 배경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여러 주일에 걸쳐서 삼마미쉬 호수의 목격자들이 불려 와서 팔이나 다리에 깁스를 한 채 그 지역을 배회하며 테드라고 밝힌 남자가 용의자와 일치한다고 증언하고 있었다.
테드의 아파트를 수사하는 과정 중에 수사관들은 깁스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인 석고반죽을 찾아냈다.
게다가 테드가 여러 피해자 시신이 발견된 테일러 산을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과 피해자들 몇 명이 처음으로 실종된 마을들에서 가스를 구입하는 데 신용 카드를 사용했다는 사실도 속속들이 밝혀졌다.
테드에게 불리한 증거들이 쌓여 갔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1976년 2월 23일 테드가 납치 미수 혐의로 법정에 섰을 때 수사관들은 그를 살인사건과 연관지으려고 노력했다.
테드와 사귄 여성이자 그를 알고 있었던 베스트샐러 작가 앤 룰이 쓴 <내 옆의 낯선 사람>이란 책에 따르면 항상 공손한 자세와 잘 생긴 외모로 매력을 발산했던 29살의 테드는 유타 법정에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만만했고 동요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그에게 씌여진 혐의 때문에 심한 공격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여 일부 동정심이 넘치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의 물결로 넘실거리게 만들었다.

테드는 납치에 실패한 다론치를 만났다는 사실조차 부인했지만
납치가 벌이진 시간의 행적에 대한 뚜력한 알리바이를 제시하진 못했다.
테드는 혐의 사실을 벗어 버릴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쳤지만 법정은 납치죄를 인정하여 그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1976년 10월 22일,
콜로라도 경찰은 테드에게 23살의 카린 캠벨 살인 혐의를 추가 걸었다.
강간당하고 구타당한 시신이 1년 전 2월 17일에 발견되었고 경찰측은 테드가 그 범죄와 연관지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1977년 4월, 테드는 콜로라도의 가필드 카운티 감옥으로 이송되어 그 해 11월 14일 캠펠의 살해 혐의로 예정된 공판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다른 재판을 견뎌내고 싶지 않았고 탈옥을 계획한다.
1977년 6월 7일, 아스펜에 있는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던 테드는 감시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창문 밖으로 뛰어 내렸다.
그는 훔친 차를 타고 마을을 벗어나려고 하다가 8일 만에 다시 붙잡혔다.
그후 거짓 7개월 후 무렵인 12월 30일 테드는 재탈출을 감행했다.
탈옥을 준비하는 동안 번디는 거의 먹지 않으며 자신의 체중을 14킬로그램 정도를 줄였다.
독방 천장에 전기비품 설치차 뚫어놓은 작은 구멍을 통해 빠져나갈 셈이었다.
천장 안으로 들어가 환기통을 통해 전진하여 간수가 사용하는 방의 벽장 속으로 숨어 들었다.
거기서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 아무렇지도 않게 정문을 통해 빠져 나왔다.

탈옥 사실은 15시간 후에야 드러났고 테드는 그 시각 시카고로 가서 플로리다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미국은 경악했으나 희대의 살인마 테드 번디는 검거되지 않았다.
수사관들은 난처한 지경에 빠져 들었고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 다음해인 1978년 1월 13일까지 테드는 따뜻한 남쪽 지방인 플로리다의 탤러해시 지역의 플로리다 주립 대학 근처에서 아파트를 얻어 살아가고 있었다.
생활은 좀도둑질로 때울 수밖에 없었고 그 지역에선 크리스 하겐이란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외모를 바꾸기위해 턱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목격자>라는 책에 보면 이 기간 중에도 테드는 새로 얻은 자유가 그닥 못마땅한것 같고, 이제는 살인 충동을 억제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상태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1978년 1월 14일 토요일 밤에 치 오메가 여대생 기숙사에 침입하였다.
피해자들의 방에 몰래 들어가 실신할 때까지 곤봉으로 때리는 방법으로 한 번에 4명의 여자들을 차례차례 폭행했다.
한 여생은 구타하다가 옷을 벗긴 뒤에 능욕을 하고 이빨로 온 몸을 물어뜯었다. 다른 여학생은 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두 여학생은 숨졌으나 두 여학생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 당시 해부를 담당한 검시의가 생생한 증언을 말해주었는데, 피살자 가운데 한 명은 곤봉으로 두들겨 맞고 강간당한 다음에 목졸렸으며 피살자의 엉덩이와 젖꼭지에서 이빨로 문 자국을 발견했다고 했다.

또한 이에 그치지 않고 한 여성은 헤어스프레이 금속깡통으로 성폭행당했음이 추가로 증명되었고 다른 이 역시 곤봉으로 구타당했고 목이 졸렸다 했다.

여학생 기숙사를 나온 테드 번디는 근방에 있는 다른 여학생의 집을 습격했다.
여학생이 비명을 지르려고 하자 곤봉으로 머리를 후려쳤다. 여학생은 두개골이 부서져 죽었고 그때 전화벨이 울리는 바람에 테드 번디는 현장에서 달아났다.
그리고 이제 테드는 재범하는 데까지 채 한 달도 기다릴 참을성이 없었다.
1978년 2월 9일, 12살의 킴벌리 리치 소녀 실종 사건이 부모에 의해 접수되었다.
민첩하게 경찰은 광범위한 조사에 착수했지만 실종자의 위치를 파악해 내는 데에는 끝내 실패했다.
킴벌리의 실종 6일 후,
펜사콜라주의 한 경찰관은 주거지역을 순찰하다가 오렌지색 폭스바겐을 타고 주택지역을 살펴보는 한 사내를 보았다.
요식 절차상 경찰은 번호판을 확인하다가 그것이 도난 차량임을 알게 되었고 경찰관은 재빨리 라이트를 켜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용의자는 도망치다가 얼마 못가 길 한켠으로 정차당했다.
경찰관은 운전자를 차에서 나오라고 명령을 내린 다음 바닥에 엎드리게 했다.
경찰관이 수갑을 채우려고 했을 때 용의자와 짧은 몸싸움이 이어졌고 용의자는 도망치려 했다.
경관은 총 한 방을 쏘았고 용의자는 땅에 쓰러졌다.
경관이 가까이 접근했을 때 용의자는 튀어올라 공격해 왔다. 또 짧은 몸싸움이 일어났지만,
이번엔 경관이 용의자를 제압 수갑을 채울 수 있었다.
그렇게 테드 번디는 훔친 차를 가지고 다니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매혹적인 말솜씨로 자신이 살인사건 현장에 있었던 것은 우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치과의사가 희생자의 둔부에 있는 이빨 자국과 번디의 이빨 자국이 동일하다는 감정을 하는 바람에 유죄가 인정되어 10년에 이르는 항소 소동도 소용 없이 1989년 1월 24일에 사형을 당할것을 선고 받았다.

테드 번디는 사형이 확정된 뒤에 '톰'이 범죄를 지시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이중인격, 혹은 다중인격을 주장하는 범죄자들은 자신의 범행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또 다른 인격체가 저지른 범행을 자신은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대부분의 이중인격, 혹은 다중인격 소유자들이 자기 안에 존재하는 인격체를 인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1989년 1월 24일 테드 번디는 전기의자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테드 번디가 체포될 때 살인사건을 총지휘했던 로니 앤더슨 형사는 테드번디의 차를 사서 창고에 보관하다 1997년 테드번디의 폭스바겐을 경매에 붙이는 바람에 그 사건을 기억하는 온 미국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테드 번디 살인사건은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살인광들의 상투적 특성들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범인이 무지막지한 살인마가 아니라 법률에 해박한 수재이고 엘리트적인 청년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는 공화당에서 그를 고용한 적이 있을정도로 사회의 주류 문화에 속해 있었다.
공화당 안에서 테드는 눈부시게 활약했고 교활할 정도로 영리한 인간이었으며 붙잡혀 들어간 감옥을 2번씩이나 탈출하는 성공 기록도 있다.
법정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살인마 이전에 전형적인 미국의 인텔리였고
그의 사건보도는 버라이어티쇼가 되어 사형 당할 날을 기다리며 독수공방하는데도
수많은 여성들의 팬레터와 결혼신청이 쏟아졌으며 급기야 테드번디는 옥중에서 자신의 팬과 결혼한다.
이 사건에서 악마는 우락부락한 범죄형이 아니라 천재형의 부드럽고 미남형의 얼굴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교훈을 남겼다.
한가지 흥미로운것은 형사들은 테드 번디 사건에서 희생자의 둔부에 있는 치열을 채취하는데 성공하여 그를 기소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지금으로서는 간단한 일이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어려운 과학수사였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가 살아생전에 있었던
마지막 인터뷰에서 한 소름끼친 고백으로 끝을 맺고자 한다.
 
 
 
 
테드 번디.gif
 
 
"난 짐승이 아니야.
난 미치지 않았고 다중인격도 아니지.
우리들은 너네들의 아들이고 남편이야.
우리는 어디에나 있어.
내일은 더 많은 아이들이 죽어있을 거다."
 
 
 
 
 
- 출처 - 내 블로그 http://blog.cyworld.com/irresistible3/6818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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