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게시물ID : lovestory_763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3
조회수 : 135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11/03 18:45:49
이승훈, 무수한 너
길을 가다가
문득 살펴보면
이 팔도
이 머리도
무수한 너로 덮인다
그렇다 내가
걷는 게 아니다
무수한 네가 걷는다
거리를 걸어가는 너
시장을 보러 가는 너
운전을 하는 너
친구들 속에서 더욱
외로워지는 너
해질 무렵 유리창에
물고기를 그리는 너
기다리는 너
돌아눕는 너
그런 네가
나를 이룬다
나를 이루고
나를 부수고
다시 이루는
끝없이 돌아가는
무수한 너
오봉옥, 꽃
아프다, 나는 쉬이 꽃망울을 터트렸다
한때는 자랑이었다
풀숲에서 만난 봉오리를 불러 모아
피어봐, 한번 피어봐 하고
아무런 죄도 없이, 상처도 없이 노래를 불렀으니
이제 내가 부른 꽃들
모두 졌다
아프다, 다시는 쉬이 꽃이 되지 않으련다
꽁꽁 얼어붙은
내 몸의 수만 개 이파리들
누가 와서 불러도
죽다가도 살아나는 내 안의 생기가
무섭게 흔들어도
다시는 쉬이 꽃이 되지 않으련다
류시화, 자살
눈을 깜빡이는 것마저
숨을 쉬는 것마저
힘들 때가 있었다
때로 저무는 시간을 바라보고 앉아
자살을 꿈꾸곤 했다
한때는 내가 나를 버리는 것이
내가 남을 버리는 것보다
덜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무가 흙 위에 쓰러지듯
그렇게 쓰러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당신 앞에
한 그루 나무처럼 서 있다
안도현, 간격
숲은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천상병, 달
달을 쳐다보며 은은한 마음
밤 열시경인데 뜰에 나와
만사를 잊고 달빛에 젖다
우주의 신비가 보일 듯 말 듯
저 달에 인류의 족적이 있고
우리와 그만큼 가까워진 곳
어릴 때는 멀고 먼 곳
요새는 만월이며 더 아름다운 것
구름이 스치듯 걸려 있네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