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
|
혐오의 미러링 책을 읽고 인상적인 구절을 뽑아낸 것입니다.
저는 제 생각을 정리하거나 제가 쓸 다른 글에 인용을 하기 위해 이런식으로 발췌를 많이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혐오의 미러링> 책이 마음에 들었고 이에따라 제가 좋다고 생각한 부분들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 책이 대강 어떠한 책인지 판단하는데 참고하시고, 가능하다면 꼭 사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일베의 사상>과 함께 보면 더욱 좋습니다!?!!?!!)
좋은 책을 써주신 박가분 작가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혐오의 미러링> 서문 : http://blog.naver.com/paxwonik/220799909259 (블로그 '밝은 서재')
--
일베 신드롬이란 도발적인 일베식 언행과 놀이화된 혐오 발언이 비단 일베뿐 아니라 여타 커뮤니티, SNS,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 나아가 오프라인의 남성 또래문화에도 광범위하게 침투한 현상을 의미한다. – 6쪽
『여성혐오를 혐오한다(女ぎらいーニッポンのミソジニー)』의 저자 우에노 치즈코는 여성혐오가 ‘중력처럼’ 가부장제 사회구조에 만연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처럼 여성혐오가 만연해 있다는 것을 힘주어 강조할수록 여성혐오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만능열쇠가 되는 동시에, 정작 ‘약자’인 여성이 다른 여성과 소수자들에게 멸시적 언행을 쏟아내는 것과 같은 괴리적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는 무능력에 빠진다. 가령 비행기 사고를 중력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보통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간주될 것이다. – 12쪽
2016년 1월 27일 JTBC의 <탐사플러스>는 최근의 남성혐오가 여성혐오를 앞지르고 있다는 분석을 보도한 바 있다. ……비율을 보면 정치 혐오가 35%로 가장 많았고, 남성혐오는 19.6%, 여성혐오는 10.4%였다. 즉 어느 시점에서부터 남성혐오 게시물이 여성혐오 게시물을 양적으로 앞지른 것이다. 물론 이는 최근의 추세에 불과하며 지금까지는 인터넷상에 여성혐오 발언이 압도적이었다는 반론도 있다. 필자 역시 이에 동의한다. 그러나 최근 남성혐오 발언이 인터넷상에서 빠르게 유행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24쪽
(보완 :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162374)
인터넷은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할수록 과거의 자료를 집적하는 '데이터베이스'의 특성을 띠게 된다. - 57쪽
혐오 자료가 하나의 데이터베이스에 집약되면 혐오 발언을 더 이상 멈출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일종의 자기정체성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정체성 혹은 커뮤니티에 대한 애착을 인터넷 용어로 '커뮤니티부심(커뮤니티+자부심)'이라 부른다. - 62쪽
다양한 유형의 사이버폭력을 과거의 정치적 폭력에 비유하자면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바로 '백색테러'와 '적색테러'다. ... 백색테러는 자신의 신원을 숨긴 '은밀한 테러'의 방식을 차용했을 뿐 아니라 상대방의 실제 행위나 책임 여부에 개의치 않은 채 상대방의 성적.인종적.문화적 정체성과 사회적 관계만을 이유로 폭력을 가하는 이른바 '묻지 마 폭력'의 방식을 취한다. ... 반면에 적색테러는 행사 주체가 스스로의 정당성을 '과시'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보통 '인민'의 이름으로 좌익에 의해 행해지는 적색테러는 국가와 지배계급의 폭력에 맞선 '대항폭력'을 명분으로 내건다. ... 일베가 놀이화된 백색테러라면, 메갈리아/워마드는 놀이화된 적색테러라고 볼 수 있다. - 63~70쪽
인터넷 마녀사냥의 초기 국면에서는 사실관계의 짜깁기를 통한 루머의 생성이 일어난다. 대개 루머 유포의 당사자는 다른 커뮤니티에서 평범한 이용자를 가장한 채 루머를 유포한다. ... 문제는 루머와 논란이 사실관계와 부합하지 않거나 이치에 맞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도 루머의 유포자들이 '논점'을 계속 다른 방향으로 뒤튼다는 점이다. 이때부터 루머는 국민의 알 권리 등의 '공익'으로 포장되며, 루머의 유포자들은 상대방이 굴복할 때까지 정체를 바꿔가며 집요하게 괴롭힌다. - 79쪽
특정인을 겨냥한 인터넷 마녀사냥은 ... 이런저런 대의명분을 내건 적색테러에 유형적으로 더 가깝다. 그러나 적색테러의 대의명분은 사실상 겉치레에 불과했다. 외부의 관찰자들이 애초에 그것을 '테러'라고 인지하기 어려운 것은 논란이 일어난 후에 논란은 추동했던 최초의 이유는 은폐되고 이미 논란 자체가 '공익'으로 포장되기 때문이다. ... 공익으로 포장된 마녀사냥이 더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그것이 대외적으로는 차별 반대, 혐오 반대를 내세우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차별과 혐오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 91~93쪽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것은 놀이화된 백색테러다. 물론 놀이라고 해서 일베 유저들의 그러한 행동에 변호의 여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목적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더 반사회적 성향으로 기운다. 차라리 현실의 극우 정치세력은 다수의 표를 얻기 위해 제도적인 민주적 절차에 적응할 여지라도 있다. … 그러나 일베와 같은 부류는 애초에 그 같은 현실적인 정치적 욕망조차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갱생의 여지가 없다. - 114쪽
공론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참여자들 간에 ‘이해 가능성’과 ‘진리성’ 그리고 ‘정당성’과 마지막으로 ‘진실성’이라는 규범이 충족되어야 한다. 즉 상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고, 사실에 기초해야 하며, 같은 도덕 규범을 공유해야 하고, 무엇보다 그 표현에서 상대방을 존중하며 절충점을 찾아가려는 의욕을 보여야 한다. – 144쪽
네트워크 이론가 로런스 레식은 『코드2.0』이라는 저서에서 이 같은 제3의 권력 유형을 ‘아키텍처’라고 부른다. 레식은 이러한 아키텍처가 사용자의 내면을 묻지 않은 채 일정한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으로의 몰입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권력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한다. … 즉 애플리케이션과 플랫폼의 설계에 의해 사용자들의 의식과 언어를 특정 방식으로 동기화하고 반응을 유도해가는, 그 행사 주체와 출처가 불분명한 신종의 ‘환경권력’이 대두했다는 것이다. – 148~149쪽
인터넷 공간은 유저들의 일상적인 윤리적 감각의 변용을 초래한다. 이 때문에 커뮤니티 간 분쟁에서 이루어진 막말에 대해 누구도 일말의 죄악감을 내비치지 않는다. 저들이 과거에 그런 짓을 했기 때문에 내가 하는 행동은 전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이다. 한편 일베와 메갈리아/워마드는 인터넷에서 반복된 커뮤니티 간 전쟁을 아예 ‘축제화’, ‘놀이화’했다. – 155쪽
우리는 인터넷상에서 상대방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만큼 아무에게나 나의 상상 속에 있는 적대적 이미지를 상대 집단에 무차별적으로 투사하곤 한다. 바로 거기서 ‘미러링’의 논리가 나오는 것이다. 나는 네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네가 나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과 같은 집단(인종, 성별, 지역, 커뮤니티 등등)이므로 너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논리다. – 139쪽
SNS와 인터넷은 ‘또래압력’이 작용하는 주요한 공간이자 또래집단 사이에서 형성된 ‘뒷담화’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티나 로젠버그는 『또래압력은 어떻게 세상을 치유하는가』라는 책에서 이러한 ‘또래압력’에 주목한다. 또래압력이란 또래 간의 경쟁, 선망, 질투 등 수평적인 관계에서 형성되는 사회적 ‘압력’을 의미한다. –186쪽
뒷담화는 무리 지어 생활하는 호모 사피엔스를 사회적으로 결속시키는 힘이었다. 마찬가지로 SNS는 현대 사회의 호모 사피엔스들이 즐겨 찾는 뒷담화의 온상이다. – 190쪽
발달심리학자 피아제에 따르면 성공적인 발달 과정 끝에 성인이 공유하는 도덕은 황금률의 도덕이다. 즉 내가 싫은 것은 남에게도 하지 않는다던가, 내가 바라는 대로 남에게도 하라는 도덕적 원칙 말이다. 그러나 인간이 처음부터 황금률을 습득하는 것은 아니다. …아동기 때 서로 갈등하고 경쟁하고 결국 화해하면서 아이들은 비로소 기존의 인과응보의 논리를 포기하고 황금률의 도덕에 진입하게 된다. ‘저 아이가 때렸기 떄문에 나도 때린다.’라는 인과응보의 정의를 따르면 ‘끝이 없다’는 인식이 어느 순간 아이들 사이에도 공유되기 때문이다. – 193~194쪽
한국 사회의 경우 입시 경쟁과 취업 경쟁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에게 SNS와 인터넷은 현실에 결핍된 또래문화의 거의 유일한 대체재다. 그럼에도 그곳은 언제나 “자율적인 동기 관계의 영역”을 구축하는 데 거의 대부분 실패한다. 특히 인터넷에서는 면대면의 또래집단에서처럼 갈등을 중재하고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멀쩡한 성인도 인터넷에서 논쟁에 심취할 때, 자기도 모르게 다시 아동기로 퇴행한다. - 195쪽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타인이나 낯선 상황과의 원치 않는 조우 자체를 개인을 무력화하고 질식시키는 심각한 폭력으로 체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든 거기에 대해 분노를 표출할 준비가 되어있다. 외국인 이민자에 대한 점증하는 혐오 정서와 SNS의 여성주의 담론도 이와 원리적으로 다르지 않다. – 202쪽
폭력이라는 용어의 인플레이션은 이렇듯 일상적인 관계에서 문제 해결 능력의 상실과 무능력이 점점 심화되어가는 징후이다. – 202쪽
계약과 권리 담론에 기초한 자유주의적 인권 규범은 개인을 완전히 무력화하는, 말 그대로 날것의 폭력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서 발명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타인과의 불쾌한 경험은 전제 군주 내지는 독재자의 폭압과 성격이 다르다. 그러한 정치적 관계 외에, 서로가 원치 않거나 예기치 못한 관계와 상황에 휘말리는 것에서 ‘완충 지대’ 역할을 해온 것은 본래 ‘계약’이 아니라 ‘문화’였다. – 203쪽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피해자의 분노에 대한 공감이 일상적인 도덕과 법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동시에 “분개의 과도함은 가장 혐오스러운 감정으로 보이고,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와 분노의 대상이 된다.”라고 말한다. 공감할 수 없는 형태의 분노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또 다른 피해의식을 자극하고 분노를 낳는 것이다. – 216~217쪽
아무리 공익을 목적으로 한 것이더라도,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것이라도, 공포심에 호소하는 전략(충격요법)의 남용은 이념을 떠나 대중집단 전반의 도덕적∙심리적 퇴행 현상을 일으켰으며, 궁극적으로는 공익에 호소할 수 있는 기반(공론장) 자체를 훼손시키고 말았다. – 217~218쪽
특히 강남역 살인사건은 범죄의 사각지대에 노출된 여성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관리망의 부재를 드러낸 사건이기도 했다. 사건을 둘러싼 복합적인 맥락을 짚기보다는 이를 남성 대 여성의 가해자/피해자 구도로 몰며 집단적 반성을 요구해대는 것은 문제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태도다. – 222쪽
범죄의 알레고리화(사건사고를 무언가의 전형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인간의 공감 능력이 도구화되고 변질되는 것이 문제다. … 공감의 영역이 한번 정치적으로 도구화된 이후에는 특정 집단의 견해에 따르지 않으면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낙인이 찍히고 만다. – 224쪽
워마드는 사회와 남성 전체에게 피해자에 대한 절대적 공감을 요구했던 강남역 추모 시위의 주최 사이트였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피해자에 대한 공감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제멋대로 투사한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일 뿐이다. 공감의 절대화가 역으로 타자에 대한 공감의 마비로 이어지는 슬픈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229쪽
일부 진보 진영의 선량들은 메갈리아/워마드의 혐오 발언이 그동안의 여성혐오에 대한 불가피한 방식의 문제 제기였다고 말한다. 이들이야말로 혐오 발언을 동반한 충격요법을 통해서만 대중을 교화할 수 있다는 선민의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작 일반 대중보다 메갈리아/워마드의 실상에 대해 더 잘 아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 234쪽
‘혐오의 시대’를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은 단순히 특정 세력의 음모나 사회경제 구조(각종 불평등과 격차)만은 아니다. 수평적인 또래문화의 결핍, 또래 집단 간 그리고 세대 간의 문화적 단절이라는 문화적 구조에 더해 ‘대항폭력’에 대한 긍정론, ‘혐오 발언’에 대한 명확한 정의의 부재, 현실 인식이 부재한 규범적 담론의 범람, 여론을 단기간에 확보하기 위해 ‘충격요법’을 남용하는 정치 관행 등 무의식적인 정치적 집단사고 역시 지금까지의 혐오 발언을 방조하고 재생산하는 데 일조했다. – 238쪽
아즈마 히로키가 말하는 ‘동물화된 포스트모던’이란 각자 자신이 선택한 매체에서 각자의 관심 있는 작은 이야기에 몰입하는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의미한다. 아즈마 히로키는 이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각자의 작은 이야기들 (혐오 담론)이 서로 격투를 벌이며 증오하는 전쟁 상태가 초래되면 수습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모두가 더 큰 공공성을 표상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가 필요하다. – 245쪽
출처 |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