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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논쟁에서 공정한 척을 하려는 메향신문
게시물ID : sisa_7619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나두선생
추천 : 4
조회수 : 111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9/22 23:55:53

[시대의 창]혐오의 상승작용



내 작은아들은 여남 성비가 3 대 1인 고등학교에 다녔다. 몇 해 전 어느 날 집에 온 녀석이 아주 분개하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그 학교의 공식 교육 프로그램 중에 ‘미스 ○○○ 선발대회’라는 게 있다는데, 남학생들을 여장시키고 여학생들로 하여금 심사하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참가 여부에 대한 본인의 의사는 전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다행히 자기는 강제 출전당하는 ‘굴욕’을 겪지 않았지만, 강제로 ‘여장’당하며 민망해하는 친구들을 보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단다.

나는 “너희 학교 여자애들이 사회에 나가면 그런 일을 종종 겪게 될 거다. 이 사회가 여자들에게 얼마나 부당하고 불편한지 체험해볼 필요도 있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녀석은 “그래도 여자들은 자기가 원해서 하는 거잖아요. 강제로 나가라고 시키는 사람 없잖아요”라며 항변했다. 나는 다시 “여자들이 스스로 원해서 미인대회에 나가는 것도 사회가 남자들 중심으로 짜여 있어서 그런 거야”라고 설득했으나 녀석은 수긍하지 않았다. 인간의 총체적 상품화를 당연시하는 담론의 홍수 속에서 자라온 녀석은, 이런 것조차 여성만이 쌓을 수 있는 특권적 스펙으로 여겼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녀석이 살아온 세계는 내가 살아온 세계와 달랐다. 집에서 아들이라고 대우받은 적도 없고 학교에서는 언제나 여자 선생님들에게 순종했으며, 여자아이들에게 종종 ‘타자화’ 대상이 되었으니, ‘사회가 남자 중심으로 짜여 있다’는 주장에 공감할 수 없었을 게다. 결국 설득에 실패했고, 오히려 내가 반성했다. 남자아이들에게 굴욕감과 분노를 느끼게 하고 즐기면서 여자아이들이 배운 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인터넷 여성 커뮤니티 메갈리아, 워마드를 둘러싼 논란이 좀체 식지 않는다. 당장 추석 연휴 중 군인을 무료로 태워준 버스기사와 관련해서도 ‘여성혐오’ 논란이 뜨거웠다. 이 사건이 일부 여성들의 과민반응에 따른 것이든, ‘미러링’ 수법으로 ‘여성혐오’를 조장하려는 역공작에 따른 것이든, 앞으로 이런 일은 무수히 되풀이될 듯하다.

“미러링은 현실 사회가 여성들에게 얼마나 부당한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는지를 폭로하고 남자들에게 역지사지의 공감능력을 키워주기 위한 것”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기획자의 의도대로 사태가 진전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저 고등학교의 ‘교육 프로그램’도 미러링에 해당하지만, 역효과가 더 컸다. 질 나쁜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쓰는 온갖 추잡한 말들을 그대로 복제해서 남자 일반에게 돌려주면, 남자들이 회개할까? 이런 행위는 오히려 여자들로 하여금 ‘폭력적인 남성성’을 내면화하게 하여 여성주의가 그토록 혐오하는 ‘폭력성’의 저변을 확대 강화하는 결과만을 낳을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으로는 ‘남자 중심으로 짜인 사회’가 해체되면 더 ‘인도적이고 도덕적’인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줄 수 없다. 이런 주장과 방식은 혐오를 억압하기보다는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것은 정당하다’는 태도를 확산시킬 가능성이 높다. ‘혐오의 정당성’이 공인되면, 여성들이 맞서 싸우기가 한결 수월해질까?

“남자들은 현실세계에서 늘 성희롱과 성폭행을 일삼고 있다. 그러니 여자들이 사이버세계에서 남자들을 대상으로 가상의 성희롱과 성폭행을 즐기는 걸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이런 행위로 현실세계의 성희롱과 성폭행을 줄일 수 있을까? ‘모든 범죄는 사회적 권력관계의 반영’이라는 말은 진실의 일부만 표현한다. 신분제 사회에서도 주인집 딸을 성폭행하는 노비가 있었다. 이런 범죄를 줄이려면 성희롱·성폭행에 관한 담론 전반을 억압해야지 ‘쌍방 성폭행 담론’으로 세상을 덮어서는 안 된다. 사이버세계와 현실세계 사이의 장벽이 생각만큼 견고하지 않다는 건 모두가 익히 경험한 바다.


사이버 공간에서 온갖 패륜적 망상을 패륜적 언어로 공유하며 노는 게 습관이 된 젊은 남녀들이 누가 말린다고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서로가 서로를 비추며 계속 확산하도록 방치할 일도 아니다. 어느 쪽에서 발화된 것이건, 패륜적 언행은 모두 비난하는 게 옳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공감하는 것과 그런 마음을 패륜적 언행으로 표출해도 좋다고 부추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지금 많은 젊은 남자들이 분노하는 것은 일부 젊은 여자들이 추잡한 욕설을 되돌려주어서만이 아니다. 그들의 더 큰 분노가 향하는 곳은, 똑같은 짓을 하는데도 남자는 ‘패륜 쓰레기’ 취급하고 여자는 ‘여성해방 전사’인 양 치켜세워주는 우리 사회 일각의 지독한 편파성이다.


전우용 교수의 칼럼입니다.

참고로 원문이 실린 메향신문은 광고투성이이기 때문에 들어가지 않는걸 추천합니다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922210903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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