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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BGM)착각, 혹은 진실
게시물ID : humorstory_4134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휘현
추천 : 1
조회수 : 80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3/11 16:47:56

<embed src="http://player.bgmstore.net/N3v3N" allowaccess="always" allowfullscreen="true" width="422" height="180"></embed><br><a href="http://bgmstore.net/view/N3v3N" target="_blank">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N3v3N</a>



소주 한잔이 목구멍을 넘어가자, 묘하게 흥분되기 시작했다. 안주가 필요했다.

여자 이야기야 남자들 서너명 둘러 앉아서 소주 한잔 들어가고 안주로 까둔 새우깡 반이 사라지고 나면, 당연한듯 등장하는 안주거리인지라 친구들하고 하는 대화들의 내용은 항상 자신이 이번에 갈아치운 여자에 대한 이야기, 혹은 자신이 경험했던 여자 이야기를 마치 전쟁용사가 받은 훈장을 자랑하듯 떠벌리는게 사실이니 변명은 하지 않겠다.

 

나 역시 여자 이야기 라는 안주를 즐기는 편이고, 내 친구들 역시 뻔한 남성 이라는 성별을 가진 생물체였으므로 여자 이야기는 돈없던 아버지 젊은 시절, 대포 한잔에다 안주로 삼은 주인아줌마 입담처럼, 빈주머니에 날리는 먼지를 달래기 위해 마시던 깡소주에 안주로 자주 등장했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나 같은 안주에 소주 두병 펼쳐놓고 침튀어 가며 자랑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일하다 잠시 볼일있어서 고향에 왔다며 연락온 이녀석은 고향에 진짜 무슨 화장실 볼일 보러 왔는지 오자마자 골목으로 향했고, 다음날 반쯤 죽은 목소리로 술사달라며 연락이 왔다.

 

"내 그래서 그대로 드리대뿌끄든?"

 

적당히 취하니 서울물 먹었다고 어색하게나마 구사하던 서울말이 어느센가 사투리다.

같이 모여앉은 몇몇 동창녀석들은 눈이 빠져라 그녀석의 말에 집중해서, 다음에 이어질 내용은 무엇일지를 상상하며 흥분하기 시작했고, 없는돈 탈탈털어서 산 소주 두병역시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거 그냥 콱 밀어삐가 침대에서 눌러뿌이 가시나 조아 디질라카데? 그대로 그냥..."

 

말하는 녀석도 어느센가 흥분했다. 몇분이나 더 지났을까? 이건 자기 한달 생활비라며 누런 봉투를 점퍼속주머니에 꽁꽁 숨겨두고 있던 친구 한놈이 기분이라며 더 시킨 소주 5병 역시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말하는녀석도, 듣는 녀석들도 흥분하기 시작하니 빈 소주병이 늘어가는 속도도 빨라졌다. 그리고 한 30분이 더 지나자 했던말 또하고 했던말 또하던 그녀석이 슬슬 지친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고, 다른 녀석들도 슬슬 자리에서 죽어가기 시작했다.

 

대충 쓰러진 녀석들은 그나마 멀쩡한 녀석들에게 떠맞겨서 집으로 배달 보내고, 아직도 했던말 또 하며 중얼거리는 녀석을 대충 들쳐엎고 자취방으로 향했다. 띄엄띄엄 밝힌 가로등이 생각보다 우울하게 만들었다.

 

'내 나이가 몇갠데 남자새끼 엎고 집엘 들어가야 하는 처지라니..'

 

괜히 억울해졌다. 이제 스물의 절반을 넘어섰는데 해둔게 하나도 없었다. 친구들은 슬슬 취업도 되서 멋진 양복입고 자기 여자친구라고 이쁜 여자들 소개도 시켜주는데 자긴 이런날 전화할 여자인 친구도 없다. 괜히 억울해졌다.

 

"젠장, 니는 가시나 사귀지 마래"

 

취한놈이 등에서 꿈틀거리더니 한숨섞인 한마디를 뱉었다.

 

"꿈틀거리지마라. 새끼 서울가서 살은 디룩지룩 쪄가지고... 무겁다 새끼야."

 

괜히 한마디 퉁명스럽게 뱉고는 발길을 재촉했다. 녀석이 피식 웃더니 한동안 잠잠히 있었다.

몇발자국 더 옮겼을까, 그녀석이 한숨을 푸욱 쉰다.

 

"내 입사 딱 하이.. 내 옆자리에 앉은 여직원이 얼마나 이뻐보인동 아나? 잘보일라고 미친짓좀 했다. 양복있제? 여자들은 남자 양복 메이커부터 일단 등급을 낸다카데. 그거 듣고 돌아가 잘 알도 모하는 듣도보도 모한 메이커에서 120에 양복 한벌 뽑았다. 처음엔 살떨리데? 근데 이짓도 한두번 하이 카드 긁는것도 별거 아이드라. 한두번 긁다보이 빚은 느는데... 뭐 이 여직원이 내 잘봐주는동 커피도 타주고 밥도 같이먹어주고 카드라."

 

뻔한 스토리. 이 뒤로는 안봐도 훤한 이야기라 그만 들어도 대충 짐작이 가능했다. 하지만 난 입을 열 수 없었다. 친구놈의 목소리엔 후회가 묻어 있었다.

 

"같이 밥먹고.. 쉬는날 영화한편 보고.. 드라이브 한번 가고.. 어느날 술사달라 카길래 나갔는데 눈뜨니까 여관이더라? 내옆에 이 여직원 다 벗고 누워있는데.. 아무생각 안들더라. 그냥 웃음만 나데.. 난 내가 성공한줄 알았다."

 

친구놈이 이쯤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한숨을 한번 더 쉬었다. 한숨때문인지, 엎혀있는 친구놈이 더욱 무거워졌다.

 

"다음날 정식으로 사귀자 캐따. 조타카데.. 인생 별거 있나 싶드라. 카드도 한 네장씩 들고다니게 되고.. 어느날 내한테 부모님이 뭐하시냐고 물어보데? 그냥 촌에서 농사짓는다 카이 표정 잠깐 이상해지드라고. 난 그래도.. 우리집 며느리 되면 고생하겠구나 싶어서 그러는동 알았다. 근데 그게 아이데.. 다음날부터 좀 이상하드라고. 우리집 우편물도 좀 유심히 보고.. 카드 영수증 숨기느라 진짜 씨껍해따. 근데.. 봤나보데? 몇일 결근하더니.. 일주일 전에 그러더라 헤어지자고."

 

친구놈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눈에도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억울했다. 땡전한푼 없어서 먼지만 달고 사는 내 처지가 분했다.

 

"허탈하드라. 집에 와서 카드내역서 하나씩 보는데... 다 그사람 사준거데? 눈물만 나더라. 허탈하더라."

 

어깨가 축축해졌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하지만 나도 녀석도 닦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염없이 울었다.

 

"내가 착각한거가? 내가..착각한거가?"

 

말을 잊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다. 엎힌채로 오열했다. 그리고 나도 울었다. 하염없이 울었다.

착각한것이었을까? 친구놈이 착각한것일까?

세상 산다는게 참 분했다.

 

"새끼야! 닌 착각 한거 아냐! 닌.. 진실을 본기다!"

 

억울해서 외쳤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억울했다.

그래, 이게 진실이다. 세상사는 진실이다.

 

그녀석과 나는 더이상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그자리에서 부둥켜 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먼동이 틀때까지 울었다.

 

세상은, 착각 투성이지만.. 그게 진실일지도 모른다. 그날 난 이 한가지를 배웠다.

착각은 진실이 될 수 있다는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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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에 글 가는거 보고

저도 제 블로그에 있는 고전 하나 투척!



이 글을 오유인에게 바칩니다 -_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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